‘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계기로 뿌리깊은 정경 유착 문제가 다시 수면위로 드러난 가운데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 경선 합동토론회에서 기업 준조세 폐지 문제가 거론되면서 논쟁이 가열되고 있다.
준조세는 세금은 아니지만 세금처럼 납부해야 하는 부담금이다. 대기업들의 미르·K스포츠재단 출연에서 보듯 준조세는 정경 유착의 대표적인 수단으로 악용되고 있다는 점에서, 재벌을 대하는 정치권력의 태도를 가늠할 수 있는 잣대이기도 하다. 다만 준조세의 개념 자체도 통일된 게 없고 법정부담금부터 비자발적인 후원금까지 포괄한다. 생산적인 토론을 위해선 개념 정리부터 필요하다.
준조세 논쟁은 이재명 성남시장이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을 ‘친재벌’이라고 공격하는 포인트로 삼으면서 가열됐다. 이 시장은 3일 열린 토론회에서 “(문 전 대표는) 재벌들의 준조세인 16조4000억원을 폐지하겠다고 공약했는데 진심인지 착오인지 묻고 싶다”고 말했다. 16조4000억원 중 법정부담금은 15조원 가량이고 비자발적 후원금은 1조4000억원에 달한다. 문 전 대표는 이에 대해 “말씀대로 법정 부담금 15조원은 법에 근거한 것인데 문제 되지 않는다”며 “문제 삼는 것은 법에 근거하지 않은, 정경유착 수단으로 오가는 검은 성격의 돈”이라며 미르재단·K스포츠재단을 예로 들었다. 이 시장은 이에 대해 “준조세를 없애겠다고 발언할 때 16조4000억원이라고 콕 집었다”며 “준조세를 폐지해달라는 것은 전경련의 민원사안”이라고 반박했다.

최순실이 설립한 것으로 알려진 서울 강남구에 위치한 미르재단 입구
준조세는 법령상 근거를 두고 부과되는 법정부담금과, 법적 의무는 없지만 사실상 강제되는 기부금·후원금 등의 비자발적 부담금을 포함한다. 이번에 삼성 등 30여개 대기업이 미르와 K스포츠 두 재단에 770억원 넘게 출연한 것이 대표적인 준조세다. 대기업 총수들은 검찰 수사에서 “나라에서 추진하는 사업이고, 재계 순위에 따라 출연한다는 사후 보고를 받았다. 경제인으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의무지만 저는 (사면까지 받았기 때문에) 더 잘해야 하는 상황이었던 것 같다”(최태원 SK 회장), “청와대가 공식적으로나 비공식적으로나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기 때문에 회사에 치명적인 손해가 아니면 지원할 수밖에 없었다. 다 하는 데 안 할 수 없지 않나”(김승연 한화그룹 회장)라고 진술했다. 청년희망펀드, 창조경제혁신센터 등도 기업들의 자발적 의지가 아닌 정부 입김에 따른 강제 출연이나 지원이라는 점에서 준조세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재계에선 “준조세까지 감안하면 세 부담이 과중하다”며 법인세 인상을 반대하기도 한다.
법정부담금은 특정한 공익사업 등의 목적으로 개인에게 강제적으로 부과하는 것으로 환경개선부담금, 학교용지부담금, 과밀부담금 등을 예로 들 수 있다. 하지만 법정부담금 역시 법적으로 조세가 아니기 때문에 세법에 의해 통제를 받는 국세나 지방세보다 정부부처의 재량권이 크고, 재원의 사용처나 적정 규모에 대한 국회의 직접적인 통제를 벗어나 있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문 전 대표가 “법정 부담금도 문제가 영 없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한 배경이다.
준조세 폐지를 주장하는 목소리가 높지만 각기 의도하는 바는 조금씩 다르다. 세법 전문가들은 기업 ‘삥뜯기’ 수단으로 사용되는 모호한 성격의 준조세를 없애고 법인세를 인상해 정당하게 세금으로 걷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다만 재계에선 법정부담금까지 뭉뚱그려 준조세 폐지를 주장하고 있다. 이 시장이 문 전 대표를 공격한 것도 이 부분을 겨냥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