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태어난 곳이자 정치적 고향인 대구·경북(TK)은 헌법재판소의 탄핵인용에 세대별로 찬반여론이 엇갈렸다. 젊은층은 “국민의 승리, 당연한 결론”이라고 반기는 반면 장·노년층은 “탄핵 인용 부당”을 외치며 반발하고 있다.
10일 오전 11시 30분 대구 중구 동성로 대구백화점 앞 광장에서 ‘박근혜퇴진 대구시민행동’이 긴급기자회견을 열고 “헌법재판소의 박근혜 탄핵소추안 인용 결정은 국민과 민주주의의 승리다”라고 밝히고 있다.|백경열 기자 merci@kyunghyang.com
10일 동성로에서 만난 정한성씨(35·회사원)는 “헌재가 헌법정신과 민심의 흐름을 제대로 반영했다”면서 “이제 정치권은 거리의 선동정치를 그만두고 적폐청산과 국가대개조 사업에 머리를 맞대야 한다”고 말했다.
취업 준비생이라고 소개한 장한주씨(28)는 “나라의 혼란과 국정시스템을 마비시킨 장본인은 누가 뭐래도 ‘박근혜 대통령’”이라면서 “기각이나 각하는 상상도 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제 국민의 뜻을 헤아리는 새로운 대통령이 들어서 청년취업, 일자리 문제등을 해결해 줬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주부 정혜은씨(34·여·구미 송정동)는 “헌법재판소 대법관들도 고민을 많이 했겠지만 국민 여론이 뜨거웠던 만큼 민심을 충분히 반영해서 나온 결과라고 생각한다”면서 “구미가 박정희 전 대통령의 고향인 만큼 박근혜 대통령을 지지하고 탄핵에 반대하는 50~60대가 많았지만, 젊은 층은 다들 나와 같은 생각을 갖고 있었다. 다만 헌재가 좀 더 일찍 판단을 내렸으면 하는 아쉬움만 있을 뿐”이라고 말했다.
학원강사인 권모씨(48)는 “최순실 게이트에서 근본적으로 박 대통령이 무능하고 무책임한 리더라는 게 입증됐다”면서 “끝까지 몽니를 부릴게 아니라 진작 스스로 물러났어야 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올해 초 대구 중구 동성로를 거닐고 있는 대구시민의 모습.|백경열 기자 merci@kyunghyang.com
하지만 노년층의 여론은 온도차를 보였다. 서문시장에서 건어물상을 운영하는 장한철씨(67) “대통령이 탄핵을 당할만큼 비리를 저지르지는 않았다”면서 “헌법재판소가 여론을 의식해 한쪽으로 몰고 갔다”고 불만을 터뜨렸다. 인근에서 노점상을 운영하는 강모씨(52)는 “대통령이 너무 억울하게 뒤집어 썼다. 국민들이 (대통령을) 지켜줘야 한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박 대통령이 4선 국회의원을 지낸 대구 달성군 주민들은 찬반이 엇갈렸다. 달성군 화원읍 삼거리에서 부동산중개업소를 운영하는 김동식씨(70)는 “설마설마 했는데 막상 탄핵이 인용되니 어이가 없다”면서 “대통령이 직접 돈을 챙긴것도 아닌데 너무 나갔다”며 흥분했다. 그는 “앞으로 좌파가 득세하면 나라가 더 큰 혼란에 휩싸일 것”이라고 우려했다.
지난 6일 오후 경북 구미 원평동 구미역 앞 4차로 도로에서 ‘대통령 탄핵 기각을 위한 국민총궐기 운동본부’ 회원 4000여 명이 참가한 가운데 박근혜 대통령 탄핵 반대 집회가 열리고 있다.|백경열 기자 merci@kyunghyang.com
박정희 전 대통령의 고향 경북 구미시민들은 탄핵에 대해 “너무한 처사”라는 반응을 주로 보였다. 다만 헌재 판결에 대해서는 승복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았다.
탄핵 반대 태극기 집회에도 꼬박꼬박 참석했다는 회사원 박모씨(55·구미 상모사곡동)는 “솔직히 기각 결정이 내려질 거라고 생각했는데, 박근혜 대통령 지지자 한 사람으로서 안타깝다. 탄핵을 당할만큼 잘못하지는 않았다”면서 “하지만 이날 헌재의 판결이 나온 마당에 이제는 박 대통령을 지지하던 사람들도 생각을 바꿔야 할 거라고 본다”고 말했다.
류호일씨(58)는 “탄핵의 방식으로 대통령을 끌어내리는 게 적절하지 못했다는 생각은 든다.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 당시에도 같은 생각이었다”면서 “사회적 비용, 특히 서민들의 피해가 클 것 같아서 안타깝다. 박근혜 대통령을 지지했지만 이번 결과에 대해서는 깨끗이 승복할 생각이다”고 말했다. 그는 “구미에는 박근혜 대통령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특히 많다. 앞으로 좀 반발이 심할 것 같아서 그게 걱정”이라고 덧붙였다.
포항에서 사과 농사를 짓고 있는 서모씨(47·여)는 “박 대통령이 정상적으로 임기를 마치고 편안하게 살았으면 좋지 않았을까 했는데, 최순실 등 민간인이 국정에 개입하면서 소신껏 해보지도 못하고 물러나게 되어서 안타깝다”면서 “민주주의 국가에서 누구나 법 앞에 평등한 거 아니겠나. 지금이라도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국민에게 인정하는 자세를 보이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지난해 12월 31일 오후 대구 중구 대중교통전용지구 일부 구간에서 ‘내려와라 박근혜 9차 대구시국대회’가 열리고 있다.|백경열 기자 merci@kyunghyang.com
하지만 인용에 찬성하는 의견도 만만찮았다. 달성공단에서 일하는 김동찬씨(37)는 “주민들이 전폭적으로 밀어준데도 대통령은 지역과 나라를 챙기기보다는 비선실세에 놀아나 나라를 거들냈다”면서 “탄핵은 사필귀정”이라고 말했다.
자신을 대구 토박이라고 소개한 이모씨(51·자영업)는 “대구·경북이 이성보다 지역정서와 감정에 치우쳐 특정정당에 몰표를 밀어준게 후회스럽다”면서 “TK 주민들은 탄핵인용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승복해야 한다”고 평가했다.
경북 안동에 사는 주부 천경숙씨(60)는 “박근혜 대통령이 취임할 때만 해도 여성 대통령이라서 기대가 컸다”면서 “인간적으로는 탄핵에 반대했지만 최근 국정농단 사태를 접하고 난 뒤 이번 헌재의 판결을 들으니 잘 된 판단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경주에서 직장 생활을 하는 이모씨(28)는 “처음 국정농단 사태가 불거졌을 때 박 대통령이 잘못을 뉘우치고 반성하는 자세를 보였다면 탄핵까지 가지 않았을 것 같다”면서 “오늘 헌재의 판결은 국민들의 뜻과 염원, 헌법적 판단까지 곁들인 민주주의의 승리”라고 말했다.
지난 18대 대통령선거에서 박근혜 후보는 대구에서는 80.1%, 경북에서는 80.8%의 득표율을 획득했다. 당시 전국평균 51.6%에 비해 30%포인트 웃돌았다.
박 대통령은 1952년 2월 대구 삼덕동에서 태어났다. 당시 육군본부 작전처장이었던 박정희 전대통령과 육영수 여사는 1950년 12월 대구 계산성당에서 결혼식을 올렸고 삼덕동에 신혼집을 마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