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립지 붕괴 사고’ 목숨 잃는 제3세계 빈민들

에티오피아 수도 아디스아바바 외곽의 쓰레기매립지 코시에서 12일(현지시간) 쓰레기산이 무너져내리며 빈민촌을 덮쳤다. 이 사고로 최소 46명이 사망했다. 아디스아바바 | AFP연합뉴스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필리핀 마닐라까지, 제3세계 빈민들이 향하는 최후의 장소는 ‘쓰레기 산’이다. 거대한 쓰레기더미 곁에 누추한 집을 짓고 쓰레기를 뒤진다. 쓰레기에서 플라스틱과 유리, 깡통을 주워 팔아 생계를 잇는다. 장갑이 없어 맨손으로 쓰레기를 뒤지느라 찔리고 긁히기 일쑤다. 해충도 득실거린다.
때로는 쓰레기 자체가 생명을 위협한다. 12일(현지시간) 에티오피아 수도 아디스아바바 외곽의 쓰레기매립지인 코시에서 쓰레기 산이 무너져내려 빈민촌을 덮쳤다. 시 당국은 어린이를 포함해 최소 46명이 사망했다고 밝혔다. 아직 쓰레기 산에 묻힌 이들도 많아 사망자는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테베주 아스레스라는 주민은 “어머니와 세 딸이 집에 있다가 모두 쓰레기더미에 묻혔다”고 알자지라방송에 말했다. 이 지역에 사는 빈민은 300명 정도였다. 나무기둥에 비닐을 덮은 허름한 집 50여채에 모여 살았다.
쓰레기가 쏟아져 내리면서 이 집들은 순식간에 휩쓸려 나갔다. 코시(Koshe)는 현지 속어로 ‘더러움’을 뜻한다. 지난 40년간 아디스아바바에서 쏟아낸 쓰레기가 이리로 왔다. 사람들이 이곳에 집을 짓고 산 것은 2~3년 전부터다.
2015년 12월에는 중국 광둥(廣東)성 선전에서 비슷한 재앙이 벌어졌다. 공업단지에서 나온 100m 높이의 흙더미가 수년간 불법투기된 건축물 쓰레기와 함께 무너져내리면서 38만㎡를 뒤덮었고 73명이 사망했다. 필리핀 마닐라 주변에는 ‘바랑가이(마을)’라 불리는 슬럼들이 있는데, 그중 한 곳인 파야타스도 쓰레기 산에 주민들이 생겨나면서 만들어진 마을이었다. 파야타스는 2000년 7월 두 차례 태풍이 휩쓸고 지나가면서 폐허가 됐다.
산처럼 솟아오른 쓰레기더미가 무너졌고, 거기 살던 사람들 300명이 산 채로 폐기물더미에 묻혀 목숨을 잃는 참사가 일어났다. 이 사고 뒤 필리핀 정부는 폐기물처리법을 정비했으나 마닐라 주변의 악명 높은 쓰레기 산 ‘스모키 마운틴’ 일대에서는 여전히 빈민들이 쓰다 버린 물건들을 뒤지며 살아가고 있다.
쓰레기는 부국에서 빈국으로 쏟아져 나간다. 세계은행 2012년 보고서를 보면 부국들이 배출하는 쓰레기는 세계 전체에서 46%, 빈국은 6%에 불과하다. 부자 나라 국민 한 사람은 매일 2.13㎏의 쓰레기를 만들어내지만 가난한 나라 사람들은 0.6㎏을 내놓는 데 그친다. 그러나 1980년대 이후로 쓰레기마저 자유무역의 대상이 됐고, 잘사는 나라들이 저개발국에 쓰레기를 떠넘기는 상황이 되면서 ‘쓰레기 제국주의’라는 말까지 나온다.
유엔환경계획(UNEP)이 2015년 내놓은 ‘폐기물 범죄, 폐기물 위협, 폐기물 분야의 격차와 도전’이라는 보고서에 따르면 특히 21세기 들어서는 전자제품 폐기물 ‘e쓰레기’ 문제가 심각하다. 전 세계 e쓰레기의 90%가 넘는 4100만t이 부국에서 저개발국으로 배출된다. 미국과 유럽연합(EU), 일본, 한국 등이 쓰레기를 수출하고 가나와 나이지리아, 파키스탄, 인도, 방글라데시 같은 나라들이 수입한다. 가나 수도 아크라 외곽의 아그보그블로시에는 바닷가 습지인데 지금은 ‘e쓰레기의 무덤’으로 더 유명하다.
전자제품 폐기물 부품 중에는 유독물질이 포함된 것이 많아 주민들의 건강과 환경에 특히 치명적이다. 1989년 유해폐기물의 국가 간 이동과 교역을 규제하는 바젤협약이 채택됐지만 규제를 우회하는 쓰레기 불법거래는 빈번하다.
2015년에는 필리핀과 캐나다 사이에서 불법 쓰레기 송출을 놓고 외교갈등까지 벌어졌다. 밴쿠버의 수출업자가 쓰레기로 가득한 컨테이너를 몰래 마닐라로 보낸 사실이 드러난 탓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