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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에 쌓인 이야기, 시일지 소설일지 몰라”

‘괴괴한 날씨와 착한 사람들’ 첫 시집 낸 임솔아 작가

“내 안에 쌓인 이야기, 시일지 소설일지 몰라”

임솔아 작가(30·사진)는 쓴다. 그것이 시일 수도, 소설일 수도 있다. “제 안에 언젠가 써야겠다고 생각한 이야기들이 있어요. 그 형태가 시일지, 소설이 더 어울리는지는 몰라요. 하나의 덩어리를 시로, 혹은 소설로 둘 다 써보기도 해요.”

이번달 첫 시집 <괴괴한 날씨와 착한 사람들>(문학과지성사)을 출간한 그는 15일 경향신문과의 전화인터뷰에서 “24살에 시를 처음 읽어보기 전까지 글을 장르별로 나눠 생각해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2013년 중앙일보 신인문학상에 시로 등단한 후 2015년 문학동네 대학소설상을 수상한 작가는 “원래 시·소설 구분 없이 글을 썼는데, 사람들이 장르 구분을 또렷하게 한다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됐다”고 밝혔다.

‘나는 날씨를 말하는 사람 같다. / 봄이 오면 봄이 왔다고 비가 오면 비가 온다고 전한다. (…) 종종 착한 사람 같다는 말을 듣는다. / 못된 사람이라는 말과 대체로 같고 대체로 다르다. / 나의 선의는 같은 말만 반복한다. 미래 시제로 점철된 예보처럼 되풀이해서 말한다. / 선의는 잘 차려입고 기꺼이 걱정하고 기꺼이 경고한다. 미소를 머금고 나를 감금한다. / 창문을 연다. / 안에 고인 괴괴한 날씨와 착한 사람들을 창밖으로 민다.’(‘예보’ 중)

시를 따라가다보면 누구나 한 번쯤 조우했던 느낌과 만난다. 타인의 평가에 길들여진 착함과 잘 타협하기 위해 만들어진 예의바름이 싫다, 는 마음이다. 착한 사람 같다는 말을 듣던 나는 창문 속에 갇혀 있었지만, 이제 그 창문을 열고 그 안에 고여 있던 괴괴한 날씨와 착한 사람을 밀어냄으로써 ‘내’가 된다. 예민한 감각이 담담하게 풀어지는 세계다.

“정규 코스를 밟아서 고등학교와 대학교를 간 사람들하고는 시선이 다를 수밖에 없는 지점이 있는 것 같아요. 그게 저의 문학적 가치관을 형성했고, 저를 다른 사람으로 만든 것이기도 해요.”

임솔아는 고교 시절 학교를 중퇴했다. 정확히 말하면, 집을 나가서 안 돌아갔더니 학교를 그만두게 됐다. “집과 학교, 그 그룹을 떠나 다른 세상으로 가려고 했어요. 요즘 젊은 사람들이 한국을 떠나 이민가는 거랑 비슷해요.”

23살에 검정고시를 보기 전까지 아르바이트를 하고, 혼자 글을 쓰면서 살았다. “말을 잘하지 못하는 사람이어서 친구가 없었어요.” 쓰다 보니, 누군가에게 글을 보여주고 싶어 서사창작과에 진학했다. 대학에 들어가 시를 처음 봤다. 비스와바 심보르스카의 ‘선택의 가능성’을 모작하며 문학적 쾌감을 느꼈다.

작가는 첫 시집의 출간에 뜻밖에 “우울하다”고 답한다. “책이라는 것이, 너무 얇고 작잖아요. 2013년 등단부터 3년6개월 정도 썼다고 볼 수 있는데, 제 안에 오랜 세월 축적돼 있는 감정들이 이렇게 사물화가 됐을 때 아무것도 아닌 느낌이 나요. 시집으로 나오기 전에는 저만의 것이었던, 제 안에서 가장 큰 것을 이루고 있었던 이야기들이 이제 다른 사람들에게 가는 거잖아요. 그게 우울하더라고요.”

그러나 안도감도 느껴진다. “영화에서 유리병에 편지를 담아 바다에 띄워보냈을 때처럼요. 오랜 시간이 지나 나를 모르는 누군가가 이 글을 읽을 수 있잖아요. 나한테 답이 오지 않겠지만, 지금의 내 마음이 가닿을 수 있겠지 하는 생각은 들어요.”

임솔아는 최근 문단의 굳은 병폐에 균열을 내는 작은 성과를 이뤘다. 출판사(문학과지성사)와의 계약서에 성범죄 관련 조항을 명시하는 첫 사례를 만든 것이다. 작가들의 성범죄 사실이 인지될 경우 출판사가 계약을 해지할 수 있도록 했다. 그동안의 논란에서 주로 남성 작가들이 가해자였다는 점을 감안할 때 여성 작가인 그의 이 같은 시도는 언뜻 이해되지 않을 수도 있지만 그는 “성별을 떠나 작가로서 먼저 시작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출판사 역시 이를 일반화된 표준계약서로 확대하는 방안을 논의 중이다.

그 역시 습작생 시절이었던 2011년 중견시인에게 성폭력 피해를 입은 경험이 있다. 이후 여성성을 숨기는 방향으로 움츠러드는 자신을 발견했다. 하지만 지난해 ‘문단 내 성폭력’ 이슈를 제기하고 용기를 낸 피해자들의 행동과 연대는 그와 그의 작품을 변화시켰다.

시집 속 ‘빨간’이라는 시는 달라진 임솔아가 반영된 작품이다. ‘목소리는 어디까지 퍼져나가 어떻게 해야 사라지지 않는가 눈물을 흘리면 눈알이 붉어졌다 고통에 색이 있다면 그 색으로 나는 이루어져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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