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장이 민주주의 역사가 되고, 연극이 혁명적 행위가 됐다

문학수 선임기자

71일간의 여정 끝낸 ‘광장극장 블랙텐트’ 평가와 전망 좌담회

‘광장극장 블랙텐트’ 관계자들이 지난 22일 서울 대학로의 한 카페에서 블랙텐트에 대한 평가와 향후의 계획을 이야기하고 있다. 왼쪽부터 김소연 연극평론가. 전인철 연출가, 이해성 블랙텐트 극장장, 조재현 연출가, 임인자 독립기획자, 홍예원 배우, 이양구 극작가. 강윤중 기자 yaja@kyunghyang.com 사진 크게보기

‘광장극장 블랙텐트’ 관계자들이 지난 22일 서울 대학로의 한 카페에서 블랙텐트에 대한 평가와 향후의 계획을 이야기하고 있다. 왼쪽부터 김소연 연극평론가. 전인철 연출가, 이해성 블랙텐트 극장장, 조재현 연출가, 임인자 독립기획자, 홍예원 배우, 이양구 극작가. 강윤중 기자 yaja@kyunghyang.com

‘광장극장 블랙텐트’는 한국연극사에, 또 촛불혁명의 과정에 어떤 의미를 남겼으며 향후 과제는 무엇인가. 블랙텐트 운영위원들이 해단 이후 처음으로 모여 의견을 나눴다. 극장장 이해성과 평론가 김소연, 극작가 이양구, 독립기획자 임인자, 연출가 조재현, 배우 홍예원, 블랙텐트에서 공연된 연극 <노란봉투>의 전인철 연출가가 참여했다. ‘블랙텐트의 의미와 과제’라는 주제로 이뤄진 좌담은 지난 22일 밤 대학로에서 2시간 동안 진행됐다. 또 다른 운영위원 김성구, 나희경, 송경동, 이사라, 이정훈은 개인 일정이 겹쳐 참석하지 못했다. 설치에서 해체까지 71일간의 여정을 기록한 블랙텐트는 1월16일 첫 공연 이후 8주간에 걸쳐 모두 72개 공연을 올렸다. 약 400명의 공연예술가들이 참여했고 3373명의 관객이 다녀갔다. 해단식은 지난 18일에 있었다.

김소연 = 지난해 12월 탄핵소추안이 가결된 이후, 날씨가 점점 추워지면서 촛불집회가 소강 국면에 접어드는 느낌이 없지 않았다. 그런 상황에서 광화문광장에 극장이 들어섰다는 것, 천막극장이라는 물리적 구조물이 세워졌다는 것 자체로도 주목을 끌었다. 그 추운 날씨에 사람들이 텐트에서 공연을 보고, 특히 박근혜 정부가 배제했던 이야기들을 만날 수 있었다는 점에서 많은 이들이 공감했다고 본다.

전인철 = 저는 운영위원이 아니라 연출가로 참여했는데, 처음에 블랙텐트 이야기가 어떻게 나왔는지 궁금하다.

임인자 = 지난해 11월4일 블랙리스트 예술가와 노동자, 시민들이 ‘박근혜 퇴진’을 촉구하면서 광화문광장에 캠핑촌을 만들었다. 연극인들도 그곳에 ‘연극인텐트’를 마련하고 방혜영 연출가가 1대 방장으로 텐트를 지켰다. 이후 이해성 연출가가 2대 방장을 맡아 아예 ‘동안거’를 결심했다. 그 텐트촌에서 수많은 예술행위들이 있었다. 우리는 연극인으로서 뭘 할 수 있을까 고민하던 와중에 ‘천막극장’ 이야기가 나왔고, 캠프를 총괄하던 송경동 시인이 “천막을 구해올 수 있다”고 하면서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극장이 민주주의 역사가 되고, 연극이 혁명적 행위가 됐다

김소연 = 광장을 점거한 이후 다양한 실천 행동들이 있었다. 텐트촌이 장기화되면서 새로운 프로그램들이 계속 생겨났다. 광장토론회가 생기고 신문도 만들고 미술관도 등장하고. 그러다가 “극장만 들어서면 완벽하겠다”는 이야기가 나왔다(일동 웃음). 실제로 블랙텐트가 들어서면서 광장의 예술행동이 다양해졌다. 그동안 광장의 예술행동이 외치고 발산하는 쪽이었다면, 블랙텐트를 세우고 여러 공연들이 들어오면서 광장에서 사유하는 상황이 펼쳐졌다.

임인자 = 거기서 주목할 것이, 연극 혹은 극장이 원래 지녔던 ‘회합으로서의 기능’이 광장에서 되살아났다는 점이다. 권력에 의해 빼앗기고 지워졌던 목소리들을 다시 불러일으키고, 우리 모두의 목소리, 공공의 목소리라는 화두가 들어와서 극장의 본질을 되살렸다.

이양구 = 블랙텐트는 ‘블랙리스트 사태’를 감각적으로 보여줬다. 광장에 극장이 딱 들어서니까, 이건 극장도 아닌 것이 극장이고, 텐트는 바람에 펄럭이면서 날아갈 것 같은데, 공연은 감동적이고, 그렇게 블랙리스트 사태가 무엇인지를 예술가들에게 실제적으로 느끼게 해줬다. 텐트는 비록 초라했지만 위용이 있었다. 박근혜 정부가 운영하는 공공극장에서 볼 수 없었던 세계, 그들이 진짜 ‘블랙’으로 만들어버린 세계가 무엇이었는가를 감각적으로 보여줬다.

조재현 = 블랙리스트의 실체가 세상에 알려지면서 처음에는 우리끼리 모여 ‘나도 블랙리스트다’라고 외쳤다. 사실 그 이상으로 연극인들이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자기 것을 가지고 뭔가 하고 싶다는 욕망은 다들 있었는데도 말이다. 그러다 블랙텐트가 들어서면서, ‘아, 나도 저기서 작품을 할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을 갖게 됐다. 그 추운 날씨에 펄럭이는 텐트에서, 단지 외치는 것이 아니라 나의 예술행위를 보여준다는 것 자체가 숭고한 의식과도 같았다. 배우들이 추위에 떨면서도 에너지를 낼 수 있었던 이유다.

지난 18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블랙텐트 해단식에서 문화예술인들이 환호성을 지르며 활짝 웃고 있다. 나은정씨 제공

지난 18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블랙텐트 해단식에서 문화예술인들이 환호성을 지르며 활짝 웃고 있다. 나은정씨 제공

김소연 = 텐트를 처음 준비할 때는 굉장히 반대가 많았다. 그 벽을 이해성 연출가가 뚫어냈다.

이해성 = 사실 텐트를 광장으로 가져오기 하루 전까지도 확정이 안됐다. 촛불을 이끌었던 ‘박근혜정권 퇴진 비상국민행동’(퇴진행동)에 블랙텐트 안건을 올렸다가 거절당했다. 워낙 텐트가 크고, 또 대형 스크린을 가려서 안된다는 얘기도 나왔다. 결국 심사에서 떨어졌다. 송경동 시인이 “그래도 하겠다”고 주장했지만 캠핑촌 사람들은 거의 반대했다. 열린 광장에 왜 ‘폐쇄된 극장’을 가져오냐는 반대도 있었다. 그날 송 시인이 혼자 술을 마시면서 울었다. 결국 내가 텐트촌 새벽회의에 들어가 설득전을 펼쳤다. 텐트에서 사고가 날 수도 있고, 누가 불을 지를 수도 있고, 관리가 안돼 광장의 애물단지가 될 수 있다는 반대들이 계속 나왔다. 나는 “시민들이 우리를 지지할 거고 관객들이 미어터질 것”이라며 설득했다. 텐트 관리도 내가 하겠다고 답했다. 그래서 결국 하기로 결정했다. 곧바로 텐트를 가지러 경북 청송으로 내려갔다. 아침 7시였다. 설치하면서도 우여곡절이 많았다. 텐트가 바람에 흔들려 다급하게 모래주머니를 수배했다. 다행히 어떤 후원자가 모래주머니를 보내왔는데, 모래는 없이 빈 주머니 100개만 도착했다. 아, 그 황당함이라니!(일동 웃음) 그래서 또 모래 구하느라 난리를 치고.

임인자 = 그런 순간에도 이해성 극장장이 끝까지 해낼 수 있던 것은 대학로X포럼을 시작으로 검열에 저항하면서 2년 넘게 싸워온 연극인들의 신뢰가 있어서다.

이해성 = 텐트를 가지러 가면서도 계속 불안했다. 일할 사람이 없어서 텐트를 치기 어려우면 어쩌나 해서. 한데 연극인들이 50명 가까이 모였다. 텐트촌 노동자들도 20명 정도가 발벗고 나서줬다. 정말 감동이었다. 줄을 죽 서서 텐트 장비들을 나르는데, ‘아, 이게 연대의 힘이구나’라고 느꼈다.

전인철 = 그때 나는 독일 동베를린 지역에 있었다. 그곳에는 폭스뷔네 같은, 과거의 사회주의가 만든 극장들이 있다. ‘우리는 정치·사회적인 연극을 한다’는 슬로건들을 내걸고 있다. 그런데 내가 보기에는 정치적인 공연이 하나도 없더라. 그러다가 블랙텐트를 설치했다는 소식을 접하고, ‘아, 광화문광장의 블랙텐트야말로 지금 세계에서 가장 정치적인 극장이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그러던 차에 연락이 와서 연극 <노란봉투>로 참여했다.

홍예원 = (민중연극론으로 유명한) 브라질의 연출가 아우구스또 보알이 ‘연극은 정치의 리허설’이라고, ‘정치 혹은 혁명의 일부’라고 한 글을 얼마 전에 읽었다. 그걸 보면서 블랙텐트도 그런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연극 자체가 혁명적 행위를 해내는 걸 두 눈으로 처음 봤다. 그런 개념이 형체를 갖고 피부로 다가와 놀랐다. 사람은 자기가 정말 좋아하는 일을 해도 어떤 날은 그냥 집에서 한숨 잤으면 싶은 날이 있지 않은가. 그런데 블랙텐트에 나오면서 ‘오늘은 가기 싫다’고 생각한 날이 단 하루도 없었다. 내게 정말로 중요했던 지점은 그 누구도 뺏을 수 없는 우리의 가치를, 나의 가치를 온전히 지키고 있다는 것이었다.

전인철 = <노란봉투>를 광장에서 공연하면서 또 다른 느낌을 받았다. 광장(현실)과 예술(이상)의 접점을 블랙텐트가 만들어줬다. 이게 현실인지 연극인지 잘 구분되지 않았다. 기존의 극장 혹은 노동현장에 가서 공연할 때보다도 광장에서 할 때가 훨씬 뜨거웠다.

홍예원 = 블랙텐트가 세워지는 과정에서 가장 감동적이었던 것은 해고노동자들이 우리가 마련한 야광조끼를 입고 조용히 일하다 가는 모습이었다. 예술가들의 투쟁 현장에 노동자들이 연대하러 오는, 바로 그 지점 말이다.

조재현 = 이제 앞으로의 숙제를 논해야 할 것 같다. 광장의 블랙텐트는 연극 현장으로 가야 한다. ‘대학로’로 대표되는 우리의 연극 현장에서 블랙텐트의 정신을 이어가야 한다. 그 터를 닦는 작업을 시작하는 거다. 그와 관련해 더 많은 논의가 필요하다. 광장에 나오지 못했던, 함께 얘기를 나누지 못했던 사람들까지도 참여하는 구조가 필요하다. 지금까지는 한시적 공간에서 운영위원 11명이 중심이 돼 해왔다면, 앞으로는 새로운 사람들이 참여해 이어가야 한다.

이해성 = 블랙텐트 포럼을 열어 논의해보자. 지금까지 산발적으로 여러 얘기들이 나왔지만, 블랙텐트 이후의 과제는 차기 위원회를 구성해 꾸려갔으면 좋겠다고 총론이 모아진 상태다.

김소연 = 지금부터는 더 구체적 절차를 갖고 의견과 힘을 모으는 게 중요하다. 광장에 기습 퍼포먼스처럼 텐트를 쳤던 것과는 차원이 달라졌다. 일단 현재의 운영위가 ‘블랙텐트 포럼’을 조직하는 것까지 해보자. 그 포럼은 구체적 실천을 해낼 수 있는 포럼이 돼야 한다.

조재현 = 어차피 광장은 임시적인 것이었고 다시 현실로 돌아와야 한다. 이 경험을 해소하지 말고 이어가야 하는데, 솔직히 아직은 잘 모르겠다. 우리는 상황이 터졌을 때 그에 반응해왔지만, 이제는 뭔가 밀고 나가면서 개척해야 하는 시점이다. 앞으로의 과제는 참으로 지난하다. 대학로는 여전히 달라진 게 없다. 광장에서는 서로 도우며 같이 싸웠는데, 대학로에 다시 와보니 또 혼자다. 여전히 같은 이들이 권력을 휘두르고 있다. 광장에서 내가 꿈을 꾸다가 왔나, 그런 생각이 든다.

임인자 = 텐트에서 노숙하면서 왜 연극인들이 많이 찾아오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러다가 어느 새벽에 추워서 텐트 문을 열고 나왔는데 어떤 배우가 주변에서 서성이고 있었다. 왜 그런가 봤더니, 광화문 주변에서 새벽까지 아르바이트를 하고 미안한 마음에 들렀다고 했다. 그 순간, 광장에 오지 못한 많은 연극인들에 대한 원망을 버려야겠다고 생각했다. 그게 우리 연극인들의 현실이다. 그럼에도 정부는 검열로 억압해왔다. 우리는 극장을 빼앗겼다. 먼저 연극계의 적폐 청산이 필요하다. 송수근 문체부 차관, 박명진 문예위원장은 당장 사퇴해야 한다. 대학로에는 우리 모두가 공유할 수 있는 창작 환경이 만들어져야 한다. 개인적으로는 언젠가 공연예술재단을 만들고 싶다는 소망이 있다. 예술가들에게 적재적소에 맞게 손을 내밀어줄 수 있는 재단을 만들고 싶다.

이양구 = 블랙텐트를 통해 극장이 민주주의의 역사가 되는 특별한 경험을 했다. 김서령 무용프로듀서가 말한 게 기억난다. 필요한 현장이 생기면 그때마다 블랙텐트가 가는 방식을 제안했다. 일종의 ‘블랙텐트 운동’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것이 기본이 됐으면 좋겠다. 블랙텐트를 하나의 극장으로 설립하는 것은 시민사회가 주도하는 게 맞다. 어떤 정부하에서도 눈치보지 않고 어떤 목소리도 배제하지 않는 공공극장, 그것을 시민사회가 설립하는 것이다. 시민들의 모금을 통해서. 그다음에 공공기관의 추가적 지원이 들어오더라도 말이다.

김소연 = 지금까지 우리 사회에서는 공공 재원으로 운영되는 곳을 공공극장이라고 불렀다. 그러나 블랙텐트는 공공극장의 공공성이 재원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극장이 구현하는 가치에 있다는 메시지를 강하게 남겼다. 공공의 가치를 구현해내는 과정에 예술가가 참여해서, 프로그래밍부터 운영까지 해내는 그런 공공극장이 가능하다는 상상력이 생겼다.

이해성 = 한 마리 고래가 바다에서 올라오듯이, 거대한 고래가 눈에 보이는 순간 모두가 환호했다. 그게 블랙텐트였다. 그 고래가 보이지 않았다면 관념적으로 설왕설래하다 끝났을 수도 있었다. 광장에 극장이 들어서고 공연이 올라갔던 그 실제적 현존이 많은 사람들을 움직였다고 본다. 그 고래 한 마리가 다시 물속으로 들어가서 헤매지 않게, 블랙텐트를 이어가려면 가시적인 무엇인가가 꼭 필요하다. 대학로든 어디든 그 고래가 계속 우리 눈에 보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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