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리는 확장되어야 한다
민주주의는 결국 사람이다. 다양한 인간 권리의 보장이 궁극적 목표다. 민주적 정당성도 그 지점에서 생겨난다. 그리고 다양한 목소리는 권리를 향한 출발점이다.
한국 사회는 1987년 민주화 이후 수평적 정권교체와 부정한 대통령 탄핵으로 상징되는 ‘주권재민’ 원칙 확립 등 제도적 성취는 이뤘다. 하지만 사회 주체들의 기본권은 여전히 삶의 여러 곳에서 미완으로 남아 있다. ‘촛불의 목소리’에 권력을 심판하는 주권자의 정언명령과 함께 향후 한국 사회의 방향이 담긴 이유다.
한국 민주주의는 진화해 왔고, 앞으로도 진화할 것이다. 그 중심은 ‘국가’와 ‘시장’이 아니다. 그 것은 사람이며, 권리를 누려야 할 모든 존재들이다. 경향신문은 신년기획 ‘민주주의는 목소리다’의 마지막에서 아직 민주주의의 주변부에서 기본권을 온전히 누리지 못하는 이들의 목소리를 담았다. 이제 주권자들의 실질적 기본권 확대로 나아가야 한다. 그것은 한국 민주주의의 미래다.
■나도 같은 인간이며 노동자…한국 경제 돕고 있다는 점 알아줘야 - 이주노동자 권리
오자 머두수던(35)은 한국의 100만 이주노동자 중 한 명이다. 그는 2014년 12월 혈혈단신으로 네팔에서 왔다. 그도 노동자임이 분명하지만 그에게 ‘노동기본권’은 먼 나라 이야기다.
처음으로 일하게 된 인천의 한 사업장에서 그는 화장실도 없는 컨테이너에서 낯선 사람들과 살아야 했다. 60㎏이나 되는 작업 재료를 맨몸으로 들어나르다 허리에 이상이 생겨 병원에 다녀오려 했지만 한국인 작업반장은 욕을 퍼붓고 때렸다.
지난 25일 경향신문사를 찾은 머두수던은 “ ‘사업장을 옮겨달라’고 말한 뒤 아무 일도 주지 않았다”며 “월급이 들어오지 않아 돈을 모으기는커녕 가진 돈을 써야 했다”고 말했다. 이주노동자노동조합까지 가세하고 나서야 사장은 사업장 변경을 ‘허가’해 줬다. 노조 조합원인 머두수던은 “한국인이었다면 회사를 나갔을 것”이라며 “노동자로서의 직업선택권을 전혀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이후 옮겨간 경기 평택 소재 사업장의 사장은 퇴직금을 주지 않기 위해 11개월짜리 계약서를 쓰게 하고 체류기간 연장 약속을 지키지 않기로 유명했다. 사업주들은 자신의 허락 없이는 이주노동자가 회사를 옮길 수 없는 고용허가제를 이런 식으로 악용하고 있다. 그는 두 달 전 충남 천안에 새로 터를 잡았다.
주말마다 광화문 촛불집회에 참석한 그는 “박근혜 정부가 고용허가제를 통해 이주노동자들 권리를 빼앗았기 때문에 (집회에) 갔다”며 “이주노동자들도 한국 경제발전을 돕고 있다는 것을 알아줬으면 좋겠다. 사업장 변경이 자유로운 노동허가제를 도입해 인간답게 살기를 원한다”고 말했다. 사장이 동의해주지 않으면 머두수던은 올해 말 네팔로 돌아가야 한다.
■감옥 가고 비난받기 감수한 선택…‘대체복무’ 길 열어줄 순 없나 - 양심적 병역거부권
이용석씨(37)는 입영 연령 전 여느 20대 한국 남성들처럼 막연히 ‘군대 가기 싫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2000년대 초 시작된 양심적 병역거부 운동을 접하고 큰 변화가 생겼다. 긴 고민 끝에 “전쟁 준비에 동참하지 않겠다”고 마음을 굳힌 것이다. 국가의 ‘명령’을 거부한 대가로 그는 1년2개월여 감옥 생활을 했다.
지난 24일 서울 마포구 망원동 ‘전쟁없는세상’ 사무실에서 만난 이씨는 ‘병역거부’라는 말조차 낯설던 2003년 창립멤버로 활동을 시작했다. 이씨와 같은 이들의 작은 저항은 의미있는 변화를 만들고 있다. 국가인권위의 지난해 조사 결과를 보면 양심적 병역거부 허용 찬성이 50%에 육박(46.1%)했다. 그가 저항을 시작하던 10년 전(10.2%)에 비하면 5배 가까이 늘어났다. 지난해에는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한 항소심에서 처음으로 무죄가 선고되기도 했다.
하지만 이들이 감내해야 할 고통의 무게는 여전하다. 매년 400~600명이 수감되고, 사회적 비난에도 시달린다. 대체복무제 도입 필요성이 제기되는 이유다. 이씨는 “병역거부를 고민하는 많은 사람이 감옥 생활과 미래에 대한 두려움, 가족의 반대 때문에 포기한다”고 말했다.
그는 군 입대를 싫어하던 남성들이 전역 후엔 징병제를 옹호하는 데 대해 “억지로 끌려가 고생했지만 국가로부터 정당한 대우를 받지 못한 것에 대한 보상심리”라며 “어디선가는 보상을 받기 위해 군대에 가지 않는 사람들을 비난하게 된다”고 했다. 이씨는 “‘평화를 지키려는 노력’을 헌법에 꼭 명시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의료보험·신혼부부 혜택은 먼 얘기…사람을 소외시키는 법, 문제 아닌가요 - 성소수자 권리
“결혼이란 두 사람과 그의 가족이 얽혀 새로운 세계를 만드는 일 같아요. 그런데 우린 세계를 아직 반 정도밖에 못 만들었네요. 부모님도 저희가 레즈비언(여성 동성애자)인 걸 모르시고 세상도 우리 사랑을 완전히 인정해 주진 않으니까요.”
진선씨(30)와 주현씨(34·가명)는 이미 5년째 함께 살고 있는 커플이지만, 직장에서는 미혼 노처녀가 된다. 한국 사회는 아직까지 동성 간 결혼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성애자에겐 당연한 법적 권리들도 이들에겐 넘어야 할 벽이 된다. 진선씨는 “가장 시급한 건 의료보험”이라며 “저는 지금 프리랜서로 일하고 있고 주현은 정규직 연구원으로 직장건강보험에 가입돼 있지만, 법적 부부가 아니라 나를 피부양자로 등록할 수 없다”고 말했다. 공공임대주택이나 전세자금대출 신청 때 주어지는 ‘신혼부부’ 혜택도 이들에겐 먼 나라 얘기다. 누군가 아파 병원을 찾아도 이들은 서로 보호자로 서명조차 할 수 없다.
동성 결혼을 법적으로 인정해 달라고 요구한 시도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지난해 영화감독 김조광수씨와 그의 파트너 김승환씨가 혼인신고가 인정되지 않은 것을 두고 구청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그러나 법원은 헌법상 ‘결혼은 남녀 간 결합으로 해석된다’며 구청 손을 들어줬다.
제도는 이들의 삶을 사회 속에서 소외시키지만, 진선씨는 ‘나답게 사는 것’만이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2012년부터 운영 중인 인터넷 레즈비언 커뮤니티 활동도 더욱 활발하게 이어나갈 생각이다. 다만 그는 “법이 사람을 소외시키고 그로 인해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이건 문제가 아닌가요”라고 묻는다.
■非인간동물도 인간과 함께 살아가고 싶다냥~ - 동물권
나는 길고양이 ‘꼬리’(3·암컷)입니다. 서울 한 구석에서 형제들과는 세쌍둥이로 한날 태어났습니다. 가게 옆 따뜻한 환풍구 헝겊 더미 위가 우리집입니다. 가끔 고마운 사람들이 사료들을 놓고 가기도 하지만 일부러 먹이를 쏟아 놓거나 우리가 지나다니면 돌을 던져 내쫓기도 합니다.
내가 태어난 지 얼마 안돼 엄마는 먹이를 구하러 나갔다가 로드킬로 죽었습니다. 다른 두 형제는 어릴 때 병으로 죽었습니다. 혼자 몸으론 콘크리트 천국인 이곳에서 몸을 숨기기도 힘들었고, 먹이를 찾을 수도 없었습니다. 길고양이들은 흔한 스트레스성 질병인 구내염 때문에 스스로 털도 핥지 못하고, 가끔 음식쓰레기와 마주쳐도 입이 불에 덴 것처럼 아파 먹지 못합니다. 자랑이던 삼색 털은 지저분하게 뭉쳐 아이들도 내 모습을 싫어했습니다. 그러다 다행히 사람들이 저를 병원으로 데려가 아픈 입을 치료하고 TNR(중성화수술 후 방사)을 시켜주었고, 건강을 되찾을 수 있었죠.
우린 단지 ‘함께’ 살고 싶습니다. 어느 나이 많은 할아버지는 말했어요. 옛날엔 우리도 이렇게 살기 힘들지 않았다고요. 하지만 서울 곳곳에 아파트가 들어서고 길이 닦이며 주변 모든 곳은 공포가 됐습니다.
가끔 음식을 나눠주는 치킨가게 아주머니는 요새 조류인플루엔자(AI) 때문에 장사가 안된다고 슬퍼합니다. 켜져 있는 TV엔 수천, 수만마리의 닭 친구들이 병에 걸렸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생매장을 당하는 장면이 비춰졌어요. ‘쓸모없는 존재들’을 밀어내고 이익을 위해 ‘효율적’으로 관리하는 것이 과연 인간들에게 이익이 되는 걸까요? 우리, ‘비(非)인간동물’에게도 인간과 함께 살아갈 수 있는 권리를 주세요.
* 이 글은 도시 길고양이 구조 사례를 참고, 동물보호시민단체 ‘카라’의 조언을 받아 작성됐습니다.
■사회 이슈에 대한 우리의 목소리…단지 ‘학생’이라고 외면하지 마세요 - 학생권
“민주주의를 인식하기 전에, (민주주의가) 우리에게 먼저 다가온 것 같아요.”
올해 ‘고3’인 부석우군(18·성남 이우고)은 ‘민주주의’를 묻자 이렇게 말했다. 부군이 중학교 3학년일 때 세월호가 침몰했고, 고1 때엔 정부가 국정 역사교과서 행정예고를 밀어붙였다. 고2 때인 지난해엔 대통령 탄핵을 외치는 수백만명의 사람들이 광장으로 모여들었다. 모두가 학생들에게 맞닿은 이슈였고, 부군은 학생으로서 목소리를 내기 위해 세월호 집회부터 시작해 꾸준히 광장에 나섰다.
하지만 학생이 목소리를 내고, 그것이 받아들여질 권리는 인정되지 않는다. 청소년은 ‘정치적으로 미숙하다’는 인식이 가장 큰 걸림돌이다. 단적으로, 누구보다도 광장에서 자신의 문제를 외쳤던 청소년들에겐 정작 탄핵 이후 대선 투표를 비롯해 아무런 참정권도 보장되지 않는다. ‘경쟁’을 우선시하는 학교에선 ‘권리’를 가르치지 않는다. 부군은 “한국 청소년들은 문제지에 둘러싸여 친구들과도 소통하지 못한 채 세상에서 제일 고립돼 있다”며 “당장 결과가 나오지 않더라도 사회적 이슈에 관심을 갖고 이끌어갈 수 있는 힘을 학교에선 가르쳐주지 않는다”고 했다.
부군은 학생들의 ‘목소리 낼 권리’를 위해선 ‘경쟁’을 최우선시하는 학교와 사회가 바뀌어야 한다고 꼽았다. 그는 “현재 우리 학생들은 성공의 결과로 얻을 수 있는 것보다도, 실패에 대한 절망과 공포를 배운다”며 “끊임없이 남보다 나은 자리에 서야 살아남을 수 있는 생존의 공포를 몸에 새기게 되면서 경쟁에 집착하게 된다”고 했다.
이어 그는 “당사자로서 학생들은 누구보다도 (자신들 관련 이슈에) 큰 관심을 갖고 있고, 이들이 목소리를 내면 이를 사회가 받아들여 공론화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