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석씨(가운데) 제공
이용석씨(37)는 2005년 12월 입영영장을 받고도 국가의 ‘명령’에 응하지 않은 ‘양심적 병역거부자’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종교적 이유에 따른 집총 거부는 아니었다. 여느 20대 초반 한국 남성들처럼 막연히 ‘군대 가기 싫다’고 생각해 왔던 이씨는 대학생 때인 2000년대 초반에 막 시작된 병역거부운동을 접하면서 “전쟁 준비에 동참하지 않겠다, 폭력 구조에 물들지 않겠다”고 마음을 굳혔다. 명령을 거부한 대가로 이씨는 이듬해 8월 구속수감됐다가 1년 2개월여 뒤 가석방됐다.
지난 24일 서울 마포구 망원동 ‘전쟁없는세상’ 사무실에서 이 단체 상근활동가로 일하고 있는 이씨를 만났다. 전쟁없는세상은 ‘모든 전쟁은 인간성에 반하는 범죄라는 신념에 기초해 전쟁과 전쟁을 일으키는 다양한 원인을 제거하기 위해 활동하는 평화주의자·반군사주의자로 구성된 단체’다. 이씨는 ‘병역거부’라는 말조차 한국사회에서 낯설었던 2003년 창립멤버로 활동을 시작했다. 그는 “전쟁없는세상은 병역거부운동으로 시작했지만 평화운동으로 폭을 넓히고 있다”며 “병역거부 역시 전쟁에 저항하는 게 중요한 목적”이라고 말했다. 이런 이유 때문에 병역거부를 고민하는 사람들에 대한 상담뿐 아니라 전쟁이 일어나고 전쟁 위기가 고조될수록 돈을 버는 군수산업체와 같은 ‘전쟁수혜자’들을 감시하는 활동도 벌인다. ‘비폭력 트레이닝’이라고 부르는, 사회운동 안에서 평화적이고 민주적인 가치를 확산해 나가는 것도 이 단체의 중요한 활동이다.
5년간 출판사에서 일하기도 했던 이씨는 당시 ‘노동자들이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는 조직이 있어야겠다’는 생각에 동료들과 노동조합을 만들었다. 이런 움직임은 다른 출판사들로 확산됐다. 작은 노조들이 연대하자 그간 모두가 침묵할 수밖에 없었던 출판계 내부의 부조리한 모습들이 하나둘씩 드러나기 시작했다.
거대한 국가 권력에 맞선 병역거부자들의 저항도 의미있는 변화들을 만들어내고 있다. 이씨는 “친구나 가족이 병역거부를 한다고 하면 사람들이 한번 더 진지하게 이 문제를 생각해보는 것 같다”며 “평화주의까지 동의하지는 않더라도 ‘무조건 감옥에 보내는 건 옳지 않다’ ‘대체복무가 필요하다’ 정도는 생각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지난해 만 15세 이상 시민 1504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국민인권의식조사 결과를 보면 ‘양심적 병역거부를 허용해야 한다’는 응답은 50%에 육박(46.1%)했다. 10년 전(10.2%)에 비해 5배 가까이 늘어난 것이다. ‘헌법상 양심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이유로 병역거부자에게 무죄를 선고하는 하급심이 늘어나고 있고, 지난해에는 처음으로 항소심에서 무죄가 나오기도 했다. 그는 “운동 초창기에는 민주노총 집회에서 병역거부 지지 서명운동을 해도 ‘남자라면 군대를 갔다 와야지’라며 서명을 거부하는 분도 많았지만 요즘은 그런 경우는 없다”며 “병역거부운동이 폭력에 대한 성찰을 시작하는 계기가 됐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양심을 지킨 자’들이 감수해야 하는 고통의 무게가 가벼워진 것은 아니다. 해마다 400~600명이 수감되고, 이들은 가족과의 갈등과 사회적 비난에 시달린다. 대체복무 도입 필요성이 제기되는 이유다. 이씨는 “병역거부를 상담받는 사람 중 많은 경우가 미래에 대한 불안감, 감옥 생활에 대한 두려움, 가족의 반대 때문에 중도에 포기한다”며 “감옥 생활에 대한 트라우마 때문에 출소 후 굉장히 힘들어하는 사람들도 많다”고 말했다.
남북분단 상황이 낳은 강고한 군사주의·국가주의 문화는 여전히 사회 모든 곳에 깊숙히 뿌리박혀 있다. ‘개인이 국가(조직)를 위해 무조건 희생해야 한다’는 말은 ‘항진명제’가 돼 버렸다. 이씨는 “성주 사드배치 문제도 안보에 대한 입장을 떠나 주민 생존권, 재산권이 달린 문제”라며 “실상은 소수에 대한 다수의 집단이기주의”라고 규정했다. 그는 입대 전 군대에 가기 싫어하던 남성들이 막상 전역하면 징병제의 강력한 옹호자가 되는 데 대해 “열악한 환경에서 고생했지만 정당한 대우를 받지 못한 것에 대한 보상심리 때문”이라며 “국가의 필요에 의해 강제로 끌고 갔으면 국가가 합당한 대접을 해줘야 하지만 그러지 않기 때문에 어디선가는 보상을 받기 위해 여성이나 병역거부자처럼 군대에 가지 않는 사람들에게 비난이 쏟아진다”고 말했다.
그래도 ‘평화를 지키기 위한 폭력’은 용인해야 하지 않을까. 박근혜 전 대통령을 탄핵으로 이끈 촛불집회에서도 ‘평화’는 논쟁거리였다. 그러나 이씨는 모든 방식의 폭력에 단호히 반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제3세계를 보면 폭력적 방식의 사회운동으로 독재정권을 물러나게 한 독립운동가가 또 다른 독재자가 되는 경우가 많다”며 “폭력을 이용하면 폭력을 쓰는 사람이 발언권을 독점하게 되기 때문에 결코 민주적이지 않고 더 많은 사람들이 참여할 수 없게 만든다”고 말했다. 또한 “(정보통신기술 발달 등으로) 과거와 달리 더 창의적이고 민주적인 저항 방식을 고민할 수 있게 됐다”고 했다.
그는 “헌법에 ‘평화권’을 명시하면 좋겠다”며 “분단 상황이고 군사적 갈등이 일상적인 국가이기 때문에 평화를 지키기 위한 노력이 헌법에 꼭 들어가야 하지 않을까”라고 제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