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종은 망국의 임금으로 알려져있습니다. 하기야 500년 왕조가 자기 대에서 끊겼으니 무슨 할 말이 있겠습니까. 그러나 최근에는 고종이 그나마 기울어져가는 나라를 일으켜 세우려 안간힘을 쓴 증거가 여럿 확인되고 있습니다. 그랬겠지요. 쇠락한 나라의 임금으로 사방에서 으르렁대는 열강의 틈바구니에서 그저 힘없이 나라를 바친 임금은 아니었겠지요. 그렇게 믿습니다. 그런 가운데 또 하나의 증거가 하나 발견되었습니다. 고종이 1902년 비밀정보기관을 만들어 친일파와 일제의 결탁을 감시하고, 나아가 국내외 독립·애국운동을 배후 조정했다는 증거 말입니다. 1990년대 초 이태진 서울대 교수가 확인했던 자료인데요. 그 정보기관의 이름은 ‘제국익문사’였습니다. 이 교수는 이 ‘제국익문사’의 규정집을 찾아낸 것이지요.
60여명의 요원이 매일매일 고종에게 정보사항을 보고해야 했는데, 그냥 먹글씨가 아니라 화학비사법의 방법으로 올리라고 했답니다. 뭐 특수 화학 약품을 써야 비칠 수 있는 글씨로 보고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국내외 고관대작과 각 군영의 장관들, 그리고 일본군과 헌병대의 동향까지 빠짐없이 보고하라 했습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제국익문사가 해외통신원까지 두었다는 것입니다. 물론 ‘제국익문사’가 실제로 활약했다는 기록은 없습니다. 정보기관이 어디 그렇게 쉽게 노출되는 것이 아니지요.
다만 안중근 의사의 하얼빈 의거를 중심으로 수상쩍은 인물들이 대거 러시아로 떠납니다. 이태진 교수는 바로 이런 분들을 주의깊게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 중 하얼빈 의거 직후에 블라디보스토크로 떠난 밀사 두 명, 즉 송선춘과 조병하 등이 의심스럽답니다. 제국익문사 요원이 아니었을까. 무엇보다 관심있게 바라봐야 할 인물이 있답니다. 정재관이라는 인물입니다. 이 분은 1908년 샌프란시스코에서 스티븐스 암살의거를 촉발시킨 인물인데요. 안의사 의거 두 달 전에 서울을 거쳐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로 잠입합니다. 그런데 그의 과거 직책은 시종무사였답니다. 고종의 시종무사라면 호위무사 아니겠습니까. 그렇다면 정재관은 ‘제국익문사’의 해외통신원이 아니었을까요. 고종 황제의 밀명을 받고 샌프란시스코에 갔다가 다시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로 옮겼고, 안중근 의사의 의거를 함께 모의했던 것은 아니었을까요. ‘이기환의 흔적의 역사’ 팟캐스트 127회는 ‘고종의 비밀정보기관과 하얼빈 의거의 수상한 연관성…’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