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정부에서 에너지부 장관 후보로 거론됐던 해럴드 햄(71)은 몇 년 전 거액이 걸린 이혼소송으로 이미 유명세를 치렀던 인물이다. 외도했다는 이유로 그는 2012년 아내로부터 이혼소송을 당했고, 법원은 2014년 이혼소송 합의금으로 9억9550만달러(약 1조800억원)를 지불하라고 판결했다. 이후 햄은 9억7400만달러짜리 수표를 전 부인에게 건넸다. 그러나 전 부인은 금액이 적다며 수표를 받지 않았다.
세계 셰일가스 업계의 큰손인 햄은 미국 최대 석유 굴착업체 콘티넨털 리소스 최고경영자(CEO)이다. 전 부인은 결혼 후 햄이 회사를 설립하고 경영해 막대한 부를 일궜으니 재산을 절반씩 나눠야 한다고 주장했다. 회사가 성공한 것은 90% 이상 햄의 공로라고 했다. 그러나 햄은 자신의 능력으로 회사를 일군 것이 아니라 운이 좋았을 뿐이라고 해명했다. 자신의 능력으로 기여한 부분은 기껏해야 5~10%에 그칠 것이라고 했다. 겸손해서가 아니라 위자료를 덜 주기 위한 전략이었을 것이다. 법원은 고민 끝에 햄의 손을 들어줬다. 당시 햄의 재산 180억달러 가운데 전 부인에게 돌아간 몫은 5%가량에 그쳤다. ‘성공은 운’이라는 주장을 받아들인 것이다.
미국 고액 연봉자 사이트인 샐러리닷컴 조사를 보면 2015년 햄이 받은 보수는 1154만달러(약 130억원)이다. 이 중 기본급은 102만달러로 전체의 10%도 안된다. 실적에 따라 지급하는 성과급이 90% 이상이다. 좋은 실적은 경영자의 능력이 뛰어나서가 아니고, 사실은 대외 여건이 호전된 덕분이라는데 천문학적인 보수를 지급하는 게 정당한지 의문이 든다.
한국의 주요 기업들도 지난달 말 2016년 사업보고서를 통해 등기임원의 보수내역을 공개했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을 보면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은 현대차에서 53억400만원, 현대모비스에서 39억7800만원 등 총 92억8200만원을 받았다.
기업 실적의 대표적인 기준은 영업이익과 주가이다. 현대차는 2014년 7조원대였던 영업이익이 이듬해 6조원대로 떨어졌고, 지난해는 5조원을 약간 웃도는 데 그쳤다. 주가도 2013년 하반기 이후 계속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2014년 57억2000만원이었던 정몽구 회장의 보수는 56억원, 53억400만원 등으로 해마다 소폭 낮아졌다. 실적 악화에 따른 조치인지는 확인할 방법이 없지만, 여전히 거액을 받고 있다.
현대차가 정 회장에게 거액 보수를 지급한 근거는 애매하다. 다만 사업보고서에는 ‘보수 산정기준 및 방법’에 ‘직무·직급(회장), 근속기간, 회사기여도, 인재육성 등을 고려한 임원급여 Table 및 임원 임금 책정기준 등 내부기준에 의거하여 기본연봉 53억400만원을 공시 대상기간 중 분할하여 지급하였음’이라고 명시했다. 성과급이 아니라 기본연봉이다. 내부기준이라고 하니, 곧 회사를 지배하는 회장님이 자신의 연봉을 책정했다는 것과 다르지 않다.
그나마 자신의 보수를 공개하는 총수일가는 상대적으로 양심이 남아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과 이서현 삼성물산 패션부문장(사장), 이화경 오리온 부회장 등은 등기임원이 아니라는 이유로 연봉을 공개하지 않았다. 비리 혐의가 있거나, 경영에 실패했어도 거액의 보수를 받는 총수도 허다하다. 배임 등 혐의로 재판 중인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은 지난해 롯데쇼핑과 롯데호텔 등에서 78억원을 받았다. 전년보다 많은 금액이다. 신 회장 누나 신영자 롯데장학재단 이사장은 지난해 7월 횡령 등 혐의로 구속돼 자리를 비웠어도 호텔롯데와 롯데쇼핑 등에서 22억여원을 챙겼다. 해운업 부실로 수많은 노동자가 일자리를 잃고 거리에 나앉았다. 하지만 부실의 책임자인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은 각각 66억원, 36억원을 챙겼다. 공정하지 못하다.
한국의 재벌 총수일가는 자신의 역량과 관계없이 손쉽게 부를 불려간다. 태어날 때 이미 부모가 재벌이었고, 부와 경영권을 물려받았다. 전문경영인을 수족처럼 부려 부의 증식과 후대로의 상속을 꾀하면 그만이다. 서양에서 배부른 자본가를 조롱하며 지칭하는 ‘살찐 고양이’에 해당한다.
심상정 정의당 대통령 후보가 공약으로 제시한 ‘최고임금제법’은 살찐 고양이법으로도 불린다. 민간기업 고위 임직원 월급은 최저임금의 30배, 공공부문 고위 임직원은 10배를 넘지 않도록 제한하는 법이다. 이 법대로라면 정몽구 회장의 연봉은 5억원 밑으로 떨어진다. 불평등과 양극화는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는 우리 사회의 과제이다. 강제 다이어트라도 시켜야 살찐 고양이의 건강에도 좋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