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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8년생 김지영, 2017년생 김지영을 위하여

입력 2017.04.09 20:57

“1998년생 김지영이 태어난 해는 외환위기 사태의 여파로 온 나라가 패닉상태에 빠져 있었다. 기업들은 도산했고 공장과 가게들은 문을 닫았다. 구조조정의 칼날은 매서웠다. 김지영의 엄마가 다니던 회사에도 강제 무급휴직 등 구조조정 바람이 일었다. 엄마의 직장에서는 ‘쌍벌이’(당시는 맞벌이를 그렇게 불렀다) 상태인 여성이 제일 먼저 잘릴 거라는 소문이 돌았다. 왜 그래야 하는지는 아무도 설명하지 않았고 서로 묻지 않았다. 사람들은 직장을 그만둬야 한다면 남성이 아닌 여성이 먼저여야 한다고 했다.

[아침을 열며]98년생 김지영, 2017년생 김지영을 위하여

당시 김지영의 출산을 앞두고 있던 엄마는 눈치가 보이고 더 불안했다고 한다. 다행히 김지영의 엄마는 구조조정 대상에서 벗어났다. 하지만 출산하기 전날도 밤 10시까지 담배 연기를 마시며 평일과 같이 야근을 했다. 출산휴가는 고작 두 달이었다. 그나마 엄마의 상사는 출산휴가가 끝나기 전에 전화를 해와 업무 지시를 내렸다. 김지영의 엄마는 흘러내리는 모유로 블라우스가 젖어 모유패드를 덧대고 부기가 덜 빠져 맞는 옷이 없자 임신부 때 입던 옷을 걸치고 일하러 나가야 했다. 그러나 아무 말 못했다.

김지영의 친가와 외가 조부모는 손녀의 탄생을 모두 기뻐했다. ‘맏딸은 살림밑천’ ‘동생을 돌봐줘 좋다’ ‘딸-아들이면 120점이다’…. 하지만 김지영이 돌이 되기 전부터 집안 어른들은 지영의 남동생에 대한 바람을 노골적으로 내비쳤다. 양가 할머니들은 어린 지영의 기저귀를 갈아주며 아랫도리를 유심히 살피면서 ‘모양이 필히 남동생’이라고 확신했다. 할머니들의 남아선호는 그 자체로 비극적인 모순일 수밖에 없다. 평생을 여성으로서 억압받고 차별받았던 할머니들의 선택은 남성 제일주의였다.”

김지영이 태어난 해 출생성비(여아 100명당 남아수)는 110을 기록했다. 훗날 정부는 김지영을 포함한 가임기 여성(15~49세)의 수를 집계해 지자체별 등수를 매긴 ‘대한민국 출산지도’를 발표하기에 이른다. 여성을 출산 도구화하고 저출산의 책임을 여성에게 떠넘긴다는 맹비난을 받으며 출산지도는 자취를 감췄지만 여성에 대한 사회적 인식의 수준을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98년생 김지영’의 얘기는 요즘 출판계에서 역주행으로 불리는 소설 <82년생 김지영>의 형식을 빌려 쓴 어느 이의 개인사다. 지난해 10월 출간된 조남주 작가의 <82년생 김지영>이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주목받고 있다. 지난달 말 기준 인터넷서점 알라딘에서 3주간 종합 판매순위 10위권 안에 들며 베스트셀러로 자리 잡았다. 남성 정치인들은 여성정책을 세우는 데 알아야 한다며 돌려가며 읽는다고 한다.

출판사는 책에 대해 ‘한국사회에서 여자로 살아가는 이들의 공포, 피로, 당황, 놀람, 혼란, 좌절의 연속에 대한 인생 현장 보고서’로 장황하게 설명하고 있지만 사실 소설 내용은 평범하기 그지없다. 1982년생 김지영이 자라나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생활을 하며 결혼해 아이 낳고 살아온 얘기다. ‘시시하기만 한데 이 얘기들이 뭐 어떻다는 거야?’ 할 수도 있을 정도다. 소설 속 30대 중반의 김지영이 살아오면서 겪은 여성 차별과 혐오는 우리가 모르는 척, 문제시하지 않았을 뿐 비일비재해 대수롭지 않기까지 하다. 과거든 현재든, 한 시대를 거쳐온 여성들에게, 아직 성인이 되지 않은 98년생 김지영에게, ‘소설 속 김지영과 같은 경험담을 써보라’고 한다면 그들은 눈 깜짝할 사이 수천편의 이야기를 들려줄 것이다. 그나마 소설 속 김지영의 얘기는 현실과 견줘보면 덜 잔혹스러운 게 아닐까.

올해 성년이 되는 98년생 김지영들이 사는 세상은 얼마나 달라졌을까. 현실은 녹록지 않다. 지난해 ‘강남역 사건’이 벌어진 후 노래방마저 마음놓고 갈 수 없는 게 현실이다. TV에선 여전히 남성 출연진이 여성을 대상화해 즐기는 장면들이 나온다. 노동시장에서의 불평등도 여전하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최근 발표한 2012~2015년 기준 국가별 성별 임금격차 통계를 보면 한국이 가장 큰 격차로 꼴찌다.

이런 와중에 <82년생 김지영>이 화제가 돼 반갑다. 굳이 ‘페미니즘’이라 부르지 않더라도 사람들이 일상에서 무엇이, 어떻게 잘못된 것인지 자각하며 얘기한다는 증거일 것이다. 미국의 페미니즘 작가인 벨 훅스는 최근 국내 출간한 <모두를 위한 페미니즘>에서 “(페미니즘은…) 우리가 있는 그대로 자기 자신으로 살아가게끔 우리를 해방하는 것이다. 얼마든지 정의를 사랑하고, 평화로운 삶을 누릴 수 있도록 말이다. 페미니즘은 모두를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82년생 김지영, 98년생 김지영, 2017년생 김지영들은 분명 다른 세상을 만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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