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80주년 경향신문

내 친구 피터의 인생담



완독

경향신문

공유하기

  • 카카오톡

  • 페이스북

  • X

  • 이메일

보기 설정

글자 크기

  • 보통

  • 크게

  • 아주 크게

컬러 모드

  • 라이트

  • 다크

  • 베이지

  • 그린

컬러 모드

  • 라이트

  • 다크

  • 베이지

  • 그린

본문 요약

인공지능 기술로 자동 요약된 내용입니다. 전체 내용을 이해하기 위해 본문과 함께 읽는 것을 추천합니다.
(제공 = 경향신문&NAVER MEDIA API)

내 뉴스플리에 저장

내 친구 피터의 인생담

입력 2017.04.09 21:00

수정 2017.04.09 21:03

펼치기/접기

내 친구 피터, 그는 목소리가 정말 컸다. 말하는 게 사자후를 토하는 듯했다. 은유 작가는 그를 두고 ‘아이를 낳듯’ 말한다고 했는데 정말 그랬다. 그가 온몸을 비틀어 내보내는 말들은 울음을 터뜨리며 세상에 나오는 아이들 같았다. 그 목소리는 노들야학 첫 수업 때 분위기에 눌려 백기투항 직전에 있던 나를 살려준 지원군이기도 했다. ‘야, 이거 골 때리네!’ 그가 간간이 넣어주던 추임새가 내게는 참으로 고마운 환영사였다.

[고병권의 묵묵]내 친구 피터의 인생담

내 친구 피터, 그가 제일 힘들어 한 과목은 한글이었다. 복지관에서 시작해 20년을 배웠다는데 여전히 글 읽는 것이 신통치 않았다. 낱글자는 소리내서 읽을 수 있는데, 단어가 되고 구절이 되면 처음 읽은 글자들이 궁둥이를 슬슬 빼기 시작하고, 문장 끝에 이르면 앞서 읽어둔 단어와 구절들이 다 도망치고 없다고 했다. 지독한 난독증이었다. 그런 그가 철학을 공부할 수 있었던 것은 탁월한 듣기 능력 덕분이다. 그는 읽을 수 없지만 들을 수 있었다. 귀를 통해 들어온 것들은 신통하게도 기억에 뿌리를 내리고 튼튼하게 자랐다. 그러니 누군가 소리를 내서 읽어만 준다면 철학책도 거뜬히 읽어낼 수 있었다.

내 친구 피터, 그는 작가가 되고 싶어 했다. 사실 그는 좋은 작품을 하나 썼다. ‘국회의원들에게 드리는 보고’라는 글인데 참으로 명문이다. 카프카의 소설 <학술원에 드리는 보고>를 차용한 것으로 원고지 20장 분량의 짧은 인생담이다. 뒤늦게 이 인생담을 읽었을 때 나는 그가 ‘빨간 피터’임이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가 그 이름으로 불러야겠다고 다짐했을 때 그는 이미 그 글만큼의 짧은 삶을 마감해버렸다.

내 친구 피터, 그는 술을 참 많이 마셨다. 그건 두 방의 총탄 때문이다. 그 점에서도 카프카의 피터와 같았다. 원숭이 피터는 사냥꾼에게 두 방의 총탄을 맞았는데, 한 방은 얼굴을 스치며 붉은 흉을 남겼고, 다른 한 방은 둔부에 박혀 평생 다리를 절뚝거리게 만들었다. 첫 총탄이 ‘빨간 피터’라는 이름을 주었고(사람들이 그 붉은 자국만을 주목했기에), 두 번째 총탄은 그를 절뚝거리며 살아가게 했다. 내 친구 피터도 두 방의 총탄으로 ‘장애인’이라는 이름과 ‘절뚝거리는’ 인생을 얻었다. 다만 그는 카프카의 피터와 달리 두 방 모두 가슴에 맞았다고 했다. 장애인인 주제에 성깔까지 못돼먹었다고 한 방 맞았고, 절뚝거리는 주제에 큰 소리로 웃는다고 또 한 방을 맞았다. 가슴이 그렇게 뚫렸으니 술을 마셔도 고이는 것 같지가 않았다. 그래서 계속 부어댄 모양이다.

내 친구 피터, 그가 총 맞은 후 깨어난 곳도 카프카의 피터처럼 궤짝이었다. 열아홉 살이 되어서야 정신이 들었는데 그때까지는 궤짝 같은 방구석에만 갇혀 지냈다. 겨우 정신을 차린 후 복지관에도 나가고 했는데 궤짝 크기만 달라졌지, 가두다 풀어주다 하는 식의 삶은 달라지지 않았다고 한다. 안전하다며 궤짝 같은 곳에 가두었다가, 장애인의날이 되면 올림픽공원에 잠시 풀어놓고, 다시 버스를 태워 복지관에 풀어놓고, 그런 식이었다.

내 친구 피터, 그에게는 출구가 필요했다. 세상을 여기저기로 날아다니는 자유 같은 것에는 관심도 없었다. 곡예사처럼 공중그네를 구르고 날아서 상대방의 품에 뛰어드는 그런 기예 같은 자유는 필요하지 않다고 했다. 자기 마음대로 행동하는 자유를 바란 것도 아니다. 그놈의 ‘함부로’ 하는 자유가 무엇인지는 몸서리치게 잘 알고 있었다. 그것은 자신이 숱하게 당해온 폭력의 다른 이름이었기 때문이다. 자유보다 소중한 것은 출구였다. 절박한 사람, 숨 막히는 사람에게는 출구만이 자유의 제대로 된 이름이었다.

내 친구 피터, 그는 마침내 야학에서 출구를 찾았다. 공부도 시위도 신통치는 않았지만 확실한 것은 술맛이 달라졌다고 한다. 그는 궤짝 같은 집과 복지관에서 나와버렸다. 집 밖으로 나간다는 게 두려웠지만 마구 ‘개겼다’고 한다. 활동보조인도 없던 때였는데 좀 무모한 탈출이었다. 그러다가 야학수업에서 나를 만났다. 정확히 말하자면 니체를 만났다. 그는 니체를 읽고는 ‘야, 이거 골 때리네’를 연발했다. 내가 미국에서 지낼 때 야학교사 한 분이 그의 근황을 전해주었다. “딴 건 안 해도 반드시 철학공부는 하고 싶다고 술주정하신다”고.

내 친구 피터, 그는 스스로 공부하며 출구를 찾아갔다. 정부가 거지 취급한다면, 이참에 당당한 거지근성도 발휘해보고 싶다고. 정부를 상대로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얻어내서, 뭘 좀 하는 장애인이 되어야겠다고. 그리고 예전에는 잘살든 못살든 혼자 살다갈 거라고 생각했는데, 공부를 하고 나서 구체적으로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어울린다는 것이 무언지는 알게 되었다고. 그리고 언젠가 자신이 뛰고 날고 춤추겠지만 지금은 일어서는 법, 걷는 법부터 배우겠다고. 그는 그걸 동화로 써보고 싶어 했다.

내 친구 피터, 그는 모난 성질을 죽이지 않았고, 술도 계속 마셔댔으며, 무엇보다 꿋꿋했다. 술자리에서 그의 불편해 보이는 몸짓을 의식하는 사람에게는 이렇게 일침을 놓기도 했다. “음식은 흘리면 닦으면 돼. 근데 왜 내가 내 손으로 먹을 수 있는 것을 그만둬야지 되냐.”

작년 이맘때였다. 내 친구 피터, 그는 가슴의 흉터가 더 이상 저리지는 않은지, 동화는 어느 정도나 진척되었는지, 어울려 산다는 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해주지 않고 그냥 훌쩍 떠나버렸다. 내 친구 피터, 그의 이름은 김호식이다.

  • AD
  • AD
  • AD

연재 레터를 구독하시려면 뉴스레터 수신 동의가 필요합니다. 동의하시겠어요?

경향신문에서 제공하는 뉴스레터, 구독 콘텐츠 서비스(연재, 이슈, 기자 신규 기사 알림 등)를 메일로 추천 및 안내 받을수 있습니다. 원하지 않는 경우 [마이페이지 〉 개인정보수정] 에서 언제든 동의를 철회할 수 있습니다.

레터 구독을 취소하시겠어요?

뉴스레터 수신 동의

경향신문에서 제공하는 뉴스레터, 구독 서비스를 메일로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원하지 않는 경우 [마이페이지 > 개인정보수정] 에서 언제든 동의를 철회할 수 있습니다.

※ 동의를 거부하실 경우 경향신문의 뉴스레터 서비스를 이용할 수 없지만 회원가입에는 지장이 없음을 알려드립니다.

  • 1이메일 인증
  • 2인증메일 발송

안녕하세요.

연재 레터 등록을 위해 회원님의 이메일 주소 인증이 필요합니다.

회원가입시 등록한 이메일 주소입니다. 이메일 주소 변경은 마이페이지에서 가능합니다.
이메일 주소는 회원님 본인의 이메일 주소를 입력합니다. 이메일 주소를 잘못 입력하신 경우, 인증번호가 포함된 메일이 발송되지 않습니다.
뉴스레터 수신 동의
닫기

경향신문에서 제공하는 뉴스레터, 구독 서비스를 메일로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원하지 않는 경우 [마이페이지 > 개인정보수정] 에서 언제든 동의를 철회할 수 있습니다.

※ 동의를 거부하실 경우 경향신문의 뉴스레터 서비스를 이용할 수 없지만 회원가입에는 지장이 없음을 알려드립니다.

  • 1이메일 인증
  • 2인증메일 발송

로 인증메일을 발송했습니다. 아래 확인 버튼을 누르면 연재 레터 구독이 완료됩니다.

연재 레터 구독은 로그인 후 이용 가능합니다.
경향신문 홈으로 이동
뉴스레터 구독
닫기

전체 동의는 선택 항목에 대한 동의를 포함하고 있으며, 선택 항목에 대해 동의를 거부해도 서비스 이용이 가능합니다.

보기

개인정보 이용 목적- 뉴스레터 발송 및 CS처리, 공지 안내 등

개인정보 수집 항목- 이메일 주소, 닉네임

개인정보 보유 및 이용기간- 원칙적으로 개인정보 수집 및 이용목적이 달성된 후에 해당정보를 지체없이 파기합니다. 단, 관계법령의 규정에 의하여 보존할 필요가 있는 경우 일정기간 동안 개인정보를 보관할 수 있습니다.
그 밖의 사항은 경향신문 개인정보취급방침을 준수합니다.

보기

경향신문의 새 서비스 소개, 프로모션 이벤트 등을 놓치지 않으시려면 '광고 동의'를 눌러 주세요.

여러분의 관심으로 뉴스레터가 성장하면 뉴욕타임스, 월스트리트저널 등의 매체처럼 좋은 광고가 삽입될 수 있는데요. 이를 위한 '사전 동의'를 받는 것입니다. 많은 응원 부탁드립니다. (광고만 메일로 나가는 일은 '결코' 없습니다.)

뉴스레터 구독
닫기

닫기
닫기

뉴스레터 구독이 완료되었습니다.

개인정보 수집 및 이용
닫기

개인정보 이용 목적- 뉴스레터 발송 및 CS처리, 공지 안내 등

개인정보 수집 항목- 이메일 주소, 닉네임

개인정보 보유 및 이용기간- 원칙적으로 개인정보 수집 및 이용목적이 달성된 후에 해당정보를 지체없이 파기합니다. 단, 관계법령의 규정에 의하여 보존할 필요가 있는 경우 일정기간 동안 개인정보를 보관할 수 있습니다.
그 밖의 사항은 경향신문 개인정보취급방침을 준수합니다.

닫기
광고성 정보 수신 동의
닫기

경향신문의 새 서비스 소개, 프로모션 이벤트 등을 놓치지 않으시려면 '광고 동의'를 눌러 주세요.

여러분의 관심으로 뉴스레터가 성장하면 뉴욕타임스, 월스트리트저널 등의 매체처럼 좋은 광고가 삽입될 수 있는데요. 이를 위한 '사전 동의'를 받는 것입니다. 많은 응원 부탁드립니다. (광고만 메일로 나가는 일은 '결코' 없습니다.)

닫기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