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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드 ‘도둑 배치’에 전쟁터 된 성주 소성리···“옳은 일은 죽기로써 할 것이요”

입력 2017.05.02 14:03

수정 2017.05.02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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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밖에서는 잘 모르겠지만, 사드가 들어오기로 하면서부터 이 곳은 전쟁터가 됐습니다.”

30일 오전 7시30분, 아침 식사 중이던 경북 성주의 원불교 삼동연수원 김성혜 교무의 휴대폰이 울렸다.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 부지로 정해진 성주 골프장에 미군 유조차가 진입하려고 한다는 연락이었다. 김 교무는 한술도 채 뜨지 못한 숟가락을 놓고 현장으로 달려갔다.

미군 화학물질 운반차량 두 대가 경찰의 보호를 받으며 골프장으로 이어지는 소성리 초입에 서 있었다. 마을회관에 있던 주민들과 사드배치철회성주투쟁위원회 관계자들은 4월26일 새벽 한국경찰과 미군의 기습작전 때처럼 당하지 않으려고 돌아가면서 보초를 서던 중 미군 차량의 접근을 사전에 파악했다. 이들은 각자의 승용차, 트럭들을 동원해 골프장으로 이어지는 길을 막았다. 인근에 대기 중이던 수백명의 중무장 경찰이 몰려왔다. 이 차들을 치우려는 경찰과 주민들 사이에 몸싸움이 벌어졌다.

4월30일 아침 경북 성주시 초전면 소성리에 진입하기 위해 대기 중인 미군 화학물질 운반차량 주변을 경찰이 지키고 있다.  손제민 기자

4월30일 아침 경북 성주시 초전면 소성리에 진입하기 위해 대기 중인 미군 화학물질 운반차량 주변을 경찰이 지키고 있다. 손제민 기자

경찰은 ‘차량을 도로에서 치우지 않으면 도로교통법, 공무집행방해 혐의로 체포하고, 유리창을 깨고 차량을 견인하겠다’고 방송했다. 주민들은 “불법 사드 장비 반입에 불법 부지 공여까지 정부가 하는 일에 불법이 천지구만, 어디 우리의 자위적 행동이 불법이라고 강제집행하려고 하느냐”며 물러서지 않았다.

경찰은 몇 차례 더 경고한 뒤 차량 견인에 돌입했다. 주민들은 끝까지 차 문을 열지 않았고, 일부는 견인차 앞에 드러눕기도 했다. 경찰은 결국 한 차량의 유리창을 박살내고 차량 안의 탑승자를 끌어냈다. 그 과정에 물리적 충돌이 발생해 인근 김천에서 달려온 이모씨 등 시민 2명이 체포되고 2명이 병원으로 옮겨졌다.

경찰이 차량을 도로에서 옮기려고 에워싸자 마을주민, 활동가들이 반발하고 있다. 손제민 기자

경찰이 차량을 도로에서 옮기려고 에워싸자 마을주민, 활동가들이 반발하고 있다. 손제민 기자

‘아름다운 들(韶野)’이라는 옛이름에서 유래한 소성리(韶成里)에 꽃 피는 계절이 돌아왔지만 더 이상 예년의 봄 같지 않다. 겨울 봄 따는 비닐하우스 참외 농사는 이미 망했다. 4·5월 파종도 7·8월 수확도 어렵게 됐다. 이 날 본 것과 같은 주민과 경찰의 충돌이 지난 몇달 동안 일상이었기 때문이다. 지난해 9월 성주 골프장이 사드 배치 부지로 정해진 뒤 주민들은 매일같이 긴장 속에서 살아간다.

70여년 전 소성리에 시집 오며 자신의 성과 이름을 쓰지 않았다며 ‘소성할매’라고 자신을 밝힌 90세 할머니는 며칠 전 보도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사드 비용 10억 달러 한국 청구’ 얘기를 언급하며 “1조라고 캤나? 그래 좋은기면 도둑처럼 들여놓지 말고, 와 당당하게 사람 설득 못하노. 그래 못할끼면 마카 도로 갖고가라 캐라”고 말했다.

할머니는 마을사람들과 함께 하고 외지인들의 연대에 다시 용기를 얻었지만, 지난 4월26일 사드 장비 일체가 기습 반입되던 밤의 그 공포를 잊지 못했다. 자정을 전후해 경찰들이 조를 짜서 가가호호 들이닥쳤다. 마을회관 앞에서 반대 시위에 동참했다는 이유로 체포해 가는가 싶었다는 것이다. 그날 밤 경찰들의 임무는 ‘상황 종료’될 때까지 주민들이 집 밖으로 나오지 못하게 막는 것이었다.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의 한 신부가 소성리 마을회관 앞에 모인 원불교 교무, 마을주민, 활동가들을 대상으로 강연하고 있다.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의 한 신부가 소성리 마을회관 앞에 모인 원불교 교무, 마을주민, 활동가들을 대상으로 강연하고 있다.

경찰은 곤히 잠 들어있던 소성리의 야음을 틈타 며칠 전부터 주민들을 대상으로 모의연습했던 것에 기초해 작전을 개시했다. 각 가정에 있던 주민들의 외출을 차단하고, 마을회관과 상황실을 에워싸 투쟁위 관계자들을 막은 뒤 미군의 사드 장비 반입을 위한 길을 터주는 데 성공했다. 분통함을 이기지 못한 곡소리가 여기저기서 터져나왔다. 주민들은 그날 밤 군용트럭을 몰고 골프장으로 올라가는 미군들이 허연 이빨을 드러내며 웃는 모습을 잊지 못한다고 했다.

소성리는 70가구에 150여명이 사는 작은 마을이다. 투쟁위 관계자들과 원불교 교무, 천주교 사제들이 합세했지만 잘 훈련된 수천명의 경찰력 앞에서는 역부족이었다. 그날 이후 혼자 사는 노부모들이 너무 무섭다고 해서 5월 초 연휴를 맞아 객지에 나간 자녀들이 하나둘 소성리에 모여들었다. 사드 저지를 위해 전국에서 평화캠프 참가를 위해 가족 단위로 온 사람들도 많았다.

이날 오후부터 외부인들이 늘어나고, 심상정 정의당 의원과 김제동씨의 소성리 방문까지 임박하자 경찰은 썰물 빠지듯 물러갔다. 전쟁터 같았던 마을회관 앞은 잠시나마 축제의 장으로 변했다. 하지만 어둠이 내리면 또다시 경찰과 미군이 한 팀이 되어 자신들의 손발을 묶어놓고 기습작전을 벌이지 않을까 초조해 해야 했다. 아직 반입되지 않은 요격미사일 발사대 차량 4대가 언제든 들이닥칠 것이기 때문이다.

서울에 살다가 지난해 7월부터 원불교 삼동연수원 특별 봉사자로 내려온 김성원씨는 그 전에 전혀 알지 못했던 사드 문제에 관심을 갖게 돼 매일 현장을 찾고 있다. 김씨는 “저처럼 평생 보수적인 생각을 갖고 살아온 사람들이 보기에도 사드 문제는 정부가 정말 잘못 처리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그는 “군사적 효용성이 검증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주민 건강에 미칠 환경영향평가를 거치지도 않고 이렇게 막무가내로 배치하는 것이 보수의 가치인지 의심스럽다”고 했다. 이날 소성리를 찾은 김종대 정의당 의원은 “지금 부상자만 20명이 넘게 나왔는데 150명 사는 마을에 8000명의 경찰병력이 와서 가가호호 다 통제하고 사드 장비를 들여놓는 양상을 자세히 보면 누가 보더라도 정상적이라고 할 수 없다”고 말했다.

소성리 마을 입구에 붙은 플래카드. 손제민 기자

소성리 마을 입구에 붙은 플래카드. 손제민 기자

대선을 1주일 앞두고 대선주자들이 전국을 누비고 표를 호소하고 있지만 소성리를 찾은 주요 대선후보는 심상정씨가 유일하다. 인구 4만5000명에 불과한 성주를 방문하는 것이 득표 활동에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하기 때문일 것이다. 적은 인구는 국방부가 이 곳을 사드 배치 부지로 결정할 때 고려한 중요한 요인들 중 하나이기도 했다. 사드 배치 후보지가 칠곡·김천에서 성주로 옮겨오면서 대구·경북 지역의 사드 배치 반대 목소리는 줄어들었다. 성주 내에서도 작은 산골짝 마을 소성리로 최종 결정되면서 성주 내의 사드 반대 목소리도 작아지는 것 같았다. 애초 사드 배치에 반대했던 성주군수도 찬성으로 돌아섰다.

하지만 군 당국이 진지하게 고려하지 않은 요인은 성주 소성리가 전북 익산, 전남 영산과 더불어 원불교의 성지라는 사실이다. 원불교의 2대 종법사 정산(鼎山) 송규(宋奎) 종사의 생가가 이 골프장에서 직선거리 500m에 있다.

성주 골프장에서 가장 가까운 진밭재에 천막 교당을 치고 연좌기도를 하고 있는 원불교 교무들. 주변에는 경찰이 24시간 에워싸고 있다. 손제민 기자

성주 골프장에서 가장 가까운 진밭재에 천막 교당을 치고 연좌기도를 하고 있는 원불교 교무들. 주변에는 경찰이 24시간 에워싸고 있다. 손제민 기자

골프장 입구로 이어지는 길은 일반인 통행이 금지됐지만, 최전선이라 할 수 있는 진밭교 앞 삼거리에 천막이 하나 서있었다. 원불교 성주 성지 비상대책위원회가 임시로 만든 ‘진밭재 평화교당’이다. 경찰이 에워싼 가운데 이 천막 안에서는 원불교 교무들은 3월11일부터 24시간 연좌기도를 하고 있다.

김광철 교무는 “마음의 평화와 함께 외부세계의 평화를 이루는 게 종교인의 사명”이라고 말했다. 김선명 교무는 “펜스 미국 부통령의 보좌관이 한국의 차기 대통령의 결정 사항이라고 했던 것을 김관진 안보실장이 부득불 사정해서 앞당겨서 장비를 반입했다고 볼 수밖에 없다”며 “반드시 이들의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했다. 이들은 진밭재 평화교당을 24시간 지키며 기도와 좌선을 하며 골프장을 출입하는 미군과 경찰 차량, 사람들의 인상착의를 꼼꼼히 기록해두고 있다. 경찰이 ‘불법시위 채증’을 하듯이 “나중에 공권력의 죄상을 묻기 위한” 기록이다.

천막교당에는 “정당한 일이거든 죽기로써 할 것이요”라는 큰 글씨가 쓰여진 플래카드가 걸려있다. 이는 원불교 창립 당시 소태산 대종사 박중빈의 제자들이 정당하고 가치 있는 일을 위해서는 죽어도 아무런 한이 없다며 기도와 수행에 정진하면서 확립된 ‘사무여한(死無餘恨)’의 정신이다.

‘도둑배치’와 ‘사무여한’의 대결, 어느 쪽이 이길지 아직 알 수 없다. 다만 소성리의 싸움이 그들만의 외로운 싸움에 그쳐서는 안된다는 목소리가 늘어나고 있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소성리 마을 길 가에 붙은 플래카드.

소성리 마을 길 가에 붙은 플래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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