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지…’ 난감한 공화당, ‘이때다!’ 몰아붙이는 민주당
미 법무부, 특검 수용…공화당 장악 의회서 탄핵 ‘험로’
결정적 증거와 여론 흐름이 관건…트럼프 “마녀사냥”
미국 공화당의 1인자 폴 라이언 하원의장이 17일(현지시간) 의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의회가 추측과 풍자를 다룰 수 없다”며 제임스 코미 전 연방수사국(FBI) 국장에게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러시아 관련 수사 중단을 압박했다는 의혹에 대해 증언하라고 촉구했다. 워싱턴 | AFP연합뉴스
미국을 흔든 ‘트럼프 게이트’가 대통령 탄핵의 출발점이 될 특검 정국으로 넘어갔다.
미국 법무부는 17일(현지시간) 러시아의 지난해 미국 대선 개입 여부와 도널드 트럼프 대선캠프와 러시아 측의 내통 의혹을 수사할 특별검사를 전격 임명했다. 로즈 로즌스타인 법무부 부장관은 로버트 뮬러 전 연방수사국(FBI) 국장을 특검에 임명했다.
특검 임명은 궁극적으로 트럼프 대통령의 탄핵을 전제로 한 것이다. 트럼프가 자신이 해임한 제임스 코미 FBI 국장에게 러시아 게이트 수사 중단을 요구했다는 메모의 존재가 드러나면서 파문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자 법무부가 특검 요구를 수용한 것이다. 하원 법사위를 비롯한 의회에서도 자체적인 조사에 착수했다. 트럼프가 무시해 온 미국 민주주의의 기성 제도들이 반격에 나선 것이다. 하지만 탄핵이 실현되기까지는 갈 길이 녹록지 않다.
트럼프는 18일 오전 트위터에 “힐러리 클린턴 캠프와 버락 오바마 정부에서 온갖 불법행위를 저질렀지만 특검이 임명된 적은 없다”며 “역사상 전례 없는 정치인에 대한 마녀사냥”이라고 반발했다.
■ 공화당 손에 넘어간 트럼프 탄핵
특검은 트럼프 정부의 입김에서 벗어나 독립적으로 수사할 특권을 갖는다. 문제는 활동 기간이 해를 넘길 수도 있다는 점이다. 특검의 조사가 끝나도 상·하원 본회의 탄핵안 가결은 쉽지 않다.
미국 헌법 2조는 탄핵 사유를 ‘반역과 뇌물수수 또는 다른 중죄와 비행’이라고 적시했다. 정족수는 하원 과반수, 상원 3분의 2 이상 찬성이다. 다른 것은 법적으로 입증돼야 하지만, ‘비행(misdemeanor)’은 의회가 해석하기 나름이다. 빌 클린턴은 거짓말이 탄핵 사유가 됐다. 의회의 또 다른 권한은 탄핵 사유를 입증할 필요가 없다는 점이다. 다만, 여론이 납득할 근거가 필요하기 때문에 특검을 활용하는 것이다.
문제는 공화당이다. 리처드 닉슨과 빌 클린턴은 모두 여소야대 상황에서 탄핵 위기에 몰렸다. 공화당이 상원(52명/100명)과 하원(238명/435명)에서 모두 다수당인 상황에서 민주당 의원들이 전원 찬성할 경우 공화당 하원의원 최소 24명, 상원의원 최소 19명이 찬성해야 탄핵안이 가결된다.
의회 표결이 어렵기에 1967년 존 F 케네디 암살 이후 갑작스러운 대통령 궐위에 대비해 만든 수정헌법 25조가 대안으로 등장했다. 수정헌법 25조는 행정부 고위 장관급 15명 중 과반수(8명 이상)가 “대통령의 업무수행이 어렵다”고 판단하고 마이크 펜스 부통령도 찬성할 경우 부통령이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을 수 있다. 역시 녹록지 않다.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을 비롯해 일부 소신파가 있지만 장관 다수는 트럼프의 사람들이다.
■ ‘젖은 장작’에 불 때기
미국 하원 정부개혁감독위원회 소속 일라이자 커밍스 민주당 하원의원(오른쪽에서 두번째)이 17일(현지시간) 의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러시아 커넥션’ 의혹을 조사할 독립적 위원회를 구성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워싱턴 | AFP연합뉴스
상·하원을 모두 장악한 공화당을 움직이는 것은 결국 여론이다. 그러나 미국 민주주의가 갖고 있는 또 다른 특성을 고려해야 한다. 미국에선 전국적인 여론의 바람이 쉽게 불지 않는다.
1968년 흑인민권주의 운동의 격랑 속에서 마틴 루서 킹 목사가 피살된 뒤 흑인들의 잇단 폭동과 백인들의 도시 탈출(white flight) 이후 전국적인 현상이 없었다. 2000년대 초 이라크전 반전 시위가 있었지만 지역풍에 그쳤다. 지난 1월 트럼프 취임 전부터 온라인 청원운동을 벌여온 ‘지금, 트럼프를 탄핵하자(impeachdonaldtrumpnow.org)’에 첫 2주 동안 40만명이 서명했지만 넉 달이 지난 17일 기준 97만여명에 불과한 것이 방증이다. 한국 민주주의의 시민운동이 들불이라면, 미국 시민운동은 젖은 장작에 불 붙이기다. 지난 16일 공공정책조사기관(PPP)이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 트럼프 탄핵에 찬성한 응답자는 48%였다. ‘코미 게이트’가 반영된 것이지만, 같은 기관이 지난 2월10일 발표한 수치(46%)에서 불과 2%포인트 늘었을 뿐이다. 이론적으로 트럼프 탄핵이 가능하려면 2018년 11월 중간선거 결과를 기다려야 하기 때문이다.
유일하게 가능성이 높은 시나리오는 특검이 코미 전 국장의 메모를 비롯한 ‘스모킹건(결정적 증거)’을 입증하는 것이다. 증거가 밑바닥 여론을 움직여 공화당 주류가 거부할 수 없는 상황이 돼야 한다. 물론 트럼프 스스로가 묘를 판다면 시기를 앞당길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