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 대해 미국 민주당은 8일 “탄핵 소추 발의안을 만드는 중”이라고 밝혔다. 이들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적용한 탄핵 사유는 ‘중대 범죄’다. 트럼프 대통령이 미 연방수사국의 수사에 외압을 행사하는 등 사법방해를 했다는 의혹이다.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탄핵 움직임이 가시화되면서 미국 탄핵 제도에 대한 관심이 많아진다. 헌법과 법률 규정만 놓고 보면 미국은 한국보다는 탄핵 절차가 복잡하다. 탄핵이 실제로 이뤄져도 그 효과는 다르다. 미국 탄핵 제도는 어떻게 규정돼 있을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7일(현지시간) 오하이오주 신시내티의 한 마리나를 방문, 인프라 재건 계획을 밝히고 있다. 이날 트럼프 대통령은 도로, 다리, 수도 등의 시설 재건에 공적자금 2천억 달러(약 225조 원)를 포함해 모두 1조 달러(약 1천120조 원)를 투자할 것이라며 “우리나라와 국민이 누려야 마땅한 ‘1등급’(first-class) 인프라를 만들겠다”고 말했다. /AP=연합뉴스
상·하 양원제의 의회를 둔 미국은 탄핵 절차도 한국보다 더 복잡하다. 미 헌법과 법률엔 탄핵 절차가 개시되려면 대통령이 ‘반역, 뇌물 수수나 기타 중범죄와 경범죄(Treason, Bribery, or other high Crimes and Misdemeanors)’를 저질렀다는 근거가 있어야 한다고 규정돼 있다. 탄핵하려면 중범죄의 혐의를 입증할 만한 증거 정도는 확보돼 있어야 한다는 얘기가 된다. 트럼프 대통령의 경우엔 정황과 의혹 정도만 있어 실질적인 증거를 확보하지 않은 상태다. 이 경우 의회가 탄핵을 제기할 수는 있지만 증거가 확실한 게 없으면 탄핵을 제기한 쪽의 부담이 커질 수도 있다.
탄핵 절차는 하원 의회가 먼저 시작할 수 있다. 하원 법사위원회가 탄핵 조사를 통해 대통령이 탄핵을 받을 만한 범죄를 저질렀다고 판단하는 게 첫번째 절차다. 이어 탄핵 결의안이 하원 전체 표결에 붙여지면 과반수 동의가 있을 경우 탄핵 소추가 결정된다.
그러나 일단 현재의 미국의 상황상 현실화할 가능성은 떨어진다. 하원의 의석 분포 탓이다. 여당인 공화당은 현재 435석 증 241석을 확보하고 있다. 민주당이 발의를 한다고 해도 과반수 동의를 얻기란 힘이 들 것이라는 분석이 많다.
탄핵안이 하원을 통과해 상원으로 올라가도 녹록지 않다. 공화당이 상원 의석 100석 중 52석을 장악하고 있기 때문이다. 상원에서는 3분의 2가 탄핵에 동의해야 한다. 최소 20명의 공화당 의원들이 탄핵에 동참해야 한다는 얘기다.
연방 대법원이 따로 탄핵을 제기할 수는 있지만 이 경우에도 탄핵의 의결은 의회가 하게 돼 있다.
이처럼 국회 의결과 헌법재판소의 결정 등 2단계로 된 한국과 달리 미국은 상·하 양원의 표결을 거쳐야 하는 식이라서 지금까지 미국 역사상 대통령 탄핵은 단 한번도 이뤄진 적이 없다.
‘성추문’이 있던 빌 클린턴 대통령이나, 상원 동의 없이 국방장관을 해임했던 앤드루 존슨 대통령 때에도 하원에서 탄핵안을 발의했지만, 상원의 반대로 이뤄지진 않았다. ‘워터게이트’ 사태를 일으킨 리처드 닉슨은 탄핵 소추 전 스스로 사임했다.

제임스 코미 미국 연방수사국(FBI) 전 국장이 7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게서 ’러시아 스캔들‘에 관한 수사 중단을 요구받았다고 폭로했다. 코미 전 국장은 이날 상원 정보위 청문회를 앞두고 정보위 웹사이트에 공개한 ’모두 발언문‘을 통해 지난 2월 14일 백악관 회동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자신에게 마이클 플린 전 국가안보보좌관에 대한 수사 중단을 요구했다고 공식 확인했다. 사진은 트럼프 대통령(왼쪽)과 코미 전 국장. /AP=연합뉴스
한국은 대통령을 탄핵하면 곧바로 60일 내에 대통령 선거를 다시 해야 한다. 하지만 미국에선 탄핵을 하더라도 정권은 바꿀 수 없다. 대통령을 탄핵하면 부통령이 그 자리를 이어 받게 된다. 부통령도 궐석일 경우 장관들이 순번에 따라 자리를 맡게 된다. 트럼프 대통령이 물러나게 되면 강경 보수 성향의 마이크 펜스 부통령이 그 자리를 맡게 된다. 정권은 그대로 유지되는 셈이다.
이 때문에 미 민주당 입장에선 탄핵에 따른 득실을 놓고 골머리를 앓고 있는 분위기라고 한다.
국제사회도 트럼프 탄핵에 따른 정치적 혼란을 원하지 않고 있다. 지난 18일 워싱턴포스트(WP)는 20여명의 유럽 국가 장관과 의원, 외교관, 군장교 등 각 부처 전·현직 고위관료들을 인터뷰한 결과 트럼프 행정부의 각종 스캔들이 세계 최강국 미국의 위협대처능력을 약화시키고 있다는 데 입을 모았다고 전했다. 이들은 미국이 테러위협부터 러시아와 북한의 군사활동을 견제하고 빠르게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이 정치적 혼란으로 위협받고 있다고 밝혔다.
유럽 각국 정부는 미국의 정치상황이 더 혼란스러워지지 않도록 최대한 조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유럽 정보국의 한 장교는 트럼프 대통령이나 그의 측근들의 범죄행위를 증명하는 정보를 확보한다고 해도 미국의 보복과 정치적 혼란이 두려워 이를 공개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마이클 로저스 미국 국가안보국(NSA) 국장이 7일(현지시간) 워싱턴 상원 정보위 청문회에 출석해 증언하고 있다. 정보기관 수장들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서 트럼프 캠프와 러시아의 내통 의혹 수사를 막아달라는 지시를 받았다는 의혹이 제기된 가운데, 이날 로저스 국장은 “3년이 넘는 재임 기간에 불법적이고 부도덕하고 비윤리적이고 부적절하다고 믿는 어떤 지시도 받은 적이 없다”면서 “이 기간 그런 일을 하라는 압력을 느낀 적이 없다”고 말했다./AP=연합뉴스

댄 코츠 미국 국가정보국(DNI) 국장이 7일(현지시간) 워싱턴 상원 정보위 청문회에 출석해 증언하고 있다. 미국 정보기관 수장들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게서 트럼프 캠프와 러시아의 내통 의혹 수사를 막아달라는 지시를 받았다는 의혹이 제기된 가운데, 이날 코츠 국장은 “수사에 개입하거나 방해하라는 압력을 단 한 번도 느낀 적이 없다”면서 “잘못된 일을 하라고 지시받은 적 없다”고 증언했다. /AP=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