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미 “트럼프, 내 명예 훼손…FBI 엉망이라는 말은 거짓말”
‘사법방해 근거’ 평가 엇갈리지만 탄핵 언급 의원 점점 늘어

세계의 눈이 쏠린 증언 현장 제임스 코미 전 미국 연방수사국(FBI) 국장(가운데)이 8일(현지시간) 상원 정보위원회 청문회에 출석해 증인석에 앉아 있다. 워싱턴 | AP연합뉴스
“놔두라, 충성심, 구름.”
미국이 이 세 마디 때문에 풍파에 빠졌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제임스 코미 전 연방수사국(FBI) 국장에게 했다는 얘기다. 코미가 8일 ‘러시아 스캔들’ 수사와 관련해서 트럼프에게 수사를 중단하라는 압력을 받았다고 의회에 나와 증언하면서, 워싱턴 정가에 핵폭풍이 일고 있다. 코미는 상원 정보위 청문회 전날 정보위 홈페이지에 미리 7쪽의 모두 발언문을 공개하고, 지난달 9일 해임되기 전까지 트럼프와 나눈 대화를 공개했다. 두 사람은 3차례 대면하고 6차례 통화하는 등 총 9차례 대화했다고 밝혔다.
청문회에 출석한 코미는 “트럼프 정부가 내 명예를 훼손했고 FBI가 엉망이라는 트럼프 주장은 거짓말”이라고 말했다.
그가 증언한 트럼프 발언의 핵심은 3가지다. 러시아와 몰래 접촉해 국가안보보좌관에서 경질된 마이클 플린 수사를 중단하고 “놔두라(Let this go)”라고 했다는 것, 대통령이 정보기관 책임자에게 “충성심을 원한다(I need loyalty)”고 했다는 것, 그리고 트럼프 본인이 수사 대상인지 추궁하며 자신 앞의 “구름을 걷어내라(Lift the cloud)”고 했다는 것이다.
■ ‘사법방해’인가
트럼프는 지난 2월14일 백악관 대통령 집무실에서 정보 브리핑을 받은 후 코미만 남게 했다. 그러더니 플린을 가리켜 “좋은 사람”이라며 “그를 놔주길 바란다”고 했다. FBI 국장을 상대로 사법방해를 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코미는 “대통령이 우리에게 플린 수사를 멈추라고 요구한 것으로 이해했다”고 적었다. 한달 뒤 트럼프는 코미에게 전화해 러시아 스캔들 수사를 “구름”이라고 표현했고, 코미는 가능한 한 빨리 수사를 마무리하겠다고 답했다.
![[트럼프 ‘사법방해’ 논란]‘놔두라, 충성심, 구름’ 트럼프의 세 마디…미, 풍파에 빠지다](https://img.khan.co.kr/news/2017/06/08/l_2017060901001024000084472.jpg)
코미는 지난해 대선에서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대선후보의 e메일 스캔들을 재수사한다고 발표함으로써 결과적으로 트럼프에게 도움을 줬고, 트럼프는 한때 코미를 극찬했다. 하지만 취임 뒤 트럼프가 코미에게 ‘충성’을 요구하면서 관계에 금이 가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는 취임 일주일 뒤인 1월27일 코미를 백악관으로 불러 저녁을 함께하면서 FBI 국장을 계속 하고 싶은지 물었고, 코미는 임기를 채우고 싶다고 답했다. 몇분 후 트럼프는 “나는 충성심이 필요하다. 충성심을 기대한다”고 말했다. 침묵이 흘렀고 코미는 “움직이지도, 말하지도, 표정을 바꾸지도 않았다”고 밝혔다. 식사를 끝내고 트럼프가 다시 충성심을 요구하자 코미는 “언제나 정직하게 할 것”이라고 했다. 트럼프의 대답은 “그게 내가 원하는 것이다. 정직한 충성심”이라는 것이었다.
■ 탄핵으로 갈지는 불투명
공화당 소속의 리처드 버 상원 정보위원장은 청문회 모두발언에서 이번 사건 조사가 미국의 민주주의를 위해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하면서 “청문회를 통해 국민들이 평가할 수 있게 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민주당 소속인 마크 워너 부위원장은 코미의 서면증언을 읽고 “충격을 받았다”면서, 트럼프가 코미를 해임한 바로 다음날 러시아 외교장관과 백악관에서 만난 사실 등을 거론하며 사태의 심각성을 강조했다.
법무부 관료 출신인 마이클 젤딘은 CNN에서 “트럼프가 코미와 독대를 요구했다는 사실은 문제”라며 “점점 기소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고 평가했다.
반면 조너선 털리 조지워싱턴대 교수는 AP에 “코미의 서면증언 중 어떤 것도 트럼프가 수사를 방해해 법을 위반했다는 확신을 주지 못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트럼프 정권에 정치적 타격이 될 것은 분명하다. 민주당 흑인 의원 모임 ‘블랙코커스’의 알 그린 하원의원은 트럼프 탄핵 소추안 준비에 들어간 상태다.
미국 법은 수사개입, 증거인멸, 수사기관 조력 거부, 허위 진술, 증인·배심원 협박 등 사법제도의 집행을 방해하는 광범위한 행동을 모두 ‘사법방해’로 규정하고 있다. 사법방해는 탄핵의 사유가 되는 ‘중대 범죄’에 해당한다. 리처드 닉슨 대통령이 1972년 일어난 ‘워터게이트 사건’을 은폐하려다 이 혐의로 수사를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