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임기 2년 로클럭들에 “임신 계획 써내라”

이혜리 기자

서울고법, 여성에게만 e메일…“출산 예정 파악하려다 실수”

핵심 부서 배제 우려에 “임신·출산 자제 압박인 듯” 지적도

법원이 여성 재판연구원(로클럭)들을 상대로 ‘임신 계획’을 조사해 논란이 일고 있다. 저출산이 국가적 중대 문제로 떠오르는 상황에서 중요 국가기관이 출산을 장려하고 지원하기는커녕 방해하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논란이 되자 법원은 임신 계획이라는 단어를 쓴 것은 단순 실수이고 업무 조정을 위해 이미 임신한 여성을 파악하려던 조사였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조사 당시 재판연구원들 사이에서는 섣불리 임신 계획을 밝혔다가 본인 의사와 관계없이 인사조치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기도 했다.

15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고등법원 총무과는 지난 4월 말쯤 소속 여성 재판연구원들에게 “임신 계획이 있는 분과 출산을 예정하고 있는 분들을 파악하고 있다”며 “해당하는 분들은 대략적인 기간을 적어달라”는 내용의 e메일을 보냈다. 총무과는 e메일에 “추후 사무분담 조정과 관련해 현황 파악을 위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서울고법은 해당 재판연구원들로부터 지난달 2일까지 답변을 받았다.

재판연구원은 판사들의 재판업무를 보조하면서 법리와 판례 연구, 문헌 조사를 한다. 재판연구원으로 일하며 좋은 평가를 받으면 나중에 판사 임용에도 유리하다.

법원 안팎에서는 이 같은 조사가 적절했는지 등에 대한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임신 계획이 있는 경우 어떻게 사무분담 조정을 하겠다는 것인지에 대한 별다른 설명없이 조사가 이뤄지자 임신 계획이 있는 재판연구원은 본인 의사와 관계없이 핵심 부서에서 배제되는 등의 불이익을 당하는 것 아니냐고 걱정한 것이다.

일각에선 모든 가임 여성이 언제나 임신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에서 조사의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한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임신 계획이 있다고 꼭 임신을 하는 것도 아니고, 임신 계획이 없다고 임신을 안 하는 것도 아닌데 왜 이런 조사를 하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여성이 스스로 임신 여부를 확인한 뒤 회사에 알려 업무전환이나 휴직을 하기까지 길게는 10개월의 기간이 있는데, 굳이 임신 전의 계획을 알려야 할 필요성이 있느냐는 것이다.

현행법 어디에도 임신 계획을 회사에 고지해야 한다는 규정은 없다. 간호사들의 경우 인력 부족을 이유로 임신 계획이 있으면 순번을 정해 임신하도록 하는 관행이 문제가 돼 정부가 대책 마련에 나선 적도 있다.

이번 조사가 사실상 임신을 하지 말라는 압박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특히 재판연구원은 임기가 2년으로 짧은데도 임신 계획이 있는지를 묻는 것은 2년 안에는 임신하지 말라는 취지가 아니냐는 것이다. 다른 법조계 관계자는 “2년 계약기간 동안 임신과 출산을 자제하라는 압력으로 받아들여진다”고 말했다.

서울고법 관계자는 “법원의 업무강도가 세고 업무공백이 생기면 안되기 때문에 재판부에 배속된 재판연구원이 출산휴가나 육아휴직 등으로 빠질 때 그 자리를 채우는 ‘공동조’를 만들기 위해 현재 임신했거나 향후 출산할 예정인 사람을 조사한 것”이라며 “임신 계획이라는 표현은 실수였다”고 해명했다.

다른 관계자도 “해당 조사는 출산 등의 사유가 있는 재판연구원을 지원해주기 위해 공동연구원 제도를 운영하면서 실시한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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