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좇아 들어가, 뜬 눈 지새우는 청춘들. 방송계 노동환경 개선될까.
“심려를 끼쳐드려 진심으로 사과 말씀 드린다. 저희는 유능한 동료를 잃었고 유가족과 시청자 여러분에게는 상처와 아픔을 드렸다. ” - CJ E&M 공식 홈페이지
지난 7월 2일 CJ E&M은 자사의 홈페이지를 통해 사과문을 게재했다. 한류의 중심이라고 자부하던 문화콘텐츠 기업 1위인 CJ E&M이 공식사과문을 게재한 이유는 무엇일까.
작년 10월 26일, CJ E&M의 케이블 채널인 tvN 드라마 ‘혼술남녀’ 신입 조연출 이한빛 PD가 숨진 채 발견됐다. CJ는 사건 8개월 만에 해당 사건에 대한 책임을 인정한 것.
사건 발생 당시 CJ E&M측은 이한빛 PD의 죽음에 대해 “이 PD에 대한 학대나 모욕은 없었다”, “이 PD의 근태 불량으로 인해 오히려 사측에 피해가 발생했다”고 반박했다.
그러나 시민사회단체들과 유가족들은 기자회견과 시위를 통해 지속적으로 문제를 제기했고,
결국 사건 8개월 만인 지난달 14일 CJ측은 대책위와 만나 사과의 글을 공식 전달하고 재정적 후원을 약속했다. 이후 위와 같은 내용을 사과문을 게재한 것.
이한빛 PD가 남긴 유서 속 ‘하루 20시간 이상을 일한 후 두세 시간을 자고 다시 출근해야 하는 노동 착취’, ‘상명하복식의 군대문화와 폭언’
‘프리랜서 비정규직들을 해고하고 선지급금을 환수하는 일’와 같은 문장들은 그를 죽음으로 몰아넣은 참담한 방송계의 민낯을 보여주고 있었다.
누군가는 이한빛 PD의 죽음을 두고 ‘원래 그런 곳’에서 적응하지 못한 ‘유별난 죽음’이라 말했다.
그러나 자신의 첫 인턴 월급을 ‘세월호 4·16연대, 빈곤사회연대, KTX 해고 승무원 대책위’에 후원하던, 사회의 가장 어두운 곳을 조명하고자 했던 꿈 많은 청년을 좌절 시킨 것은
단순한 ‘노동강도’가 아니라 ‘돈의 논리’로 사람을 착취하던 노동환경과 구조 그 자체였을지 모른다.
“드라마 현장에선 누구 하나 죽지 않고서는 안 바뀔 거라는 험악한 얘기가 계속 나왔어요. 힘들어서 정말 죽을 것 같을 때 스태프끼리 반 농담조로 ‘네가 총대 메라’고들 했죠….”, “하루 24시간에 21~22시간 일해야 하는 곳”
“하루에 카메라, 크레인 등 장비 대여비도 엄청나기 때문에 제작사 입장에선 촬영 기간을 어떻게 해서든 단축하려고 한다” “제작인원 보충 등은 상상할 수도 없고 무조건 최소 인원으로 ‘빨리빨리’ 만드는 시스템이 당연시돼 있다” - 드라마 촬영 현장에서 8년 동안 계약직, 독립제작사 소속 촬영 스태프로 일한 한상현씨(29·가명)
1990년대 초중반 민영방송이 출범하고 외주제작제도가 도입되면서 방송 생태계는 급속히 시장경제화됐다. 지극히 ‘저비용 고효율’의 논리에 따라 움직이는 곳이 된 것.
이한빛 PD의 죽음도 이러한 상황에서 빚어진 비극이었다. CJ측은 적정 근로시간·휴식시간 등 포괄적 원칙 수립, 외주사와 스탭 간 계약 시 합리적 표준 근로계약서 마련·권고 등 방송 제작 환경 개선을 위한 과제를 이행해 나가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여전히 많은 과제가 남아 있다. 많은 방송사 중 이제 겨우 한 곳이 각성했을 뿐이며 제작 환경 개선이 약속대로 이행될지도 지켜봐야하기 때문.
아직도 24시간 돌아가는 화려한 카메라의 풍경 너머에선 수많은 청춘들이 뜬 눈으로 밤을 지새고 있다.
‘그들이 원했던 것은 닳지 않는 톱니바퀴였고, 그들이 만드는 것은 드라마라는 허울 좋은 포장지에 싸인 영혼 없는 공산품이었으며, 그곳은 무리하게 돌려 한시라도 빨리 무언가를 뽑아내는 효율적인 생산라인이었다.’ -정동칼럼 ‘제작의 죽음에 부쳐’ 발췌. 제작 김유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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