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부 때부터 떠들썩했던 기업의 사내유보금을 통신요금 인하, 최저임금 인상, 일자리 창출 등의 관련 재원으로 사용하자는 주장이 제기되면서 다시 이슈화되고 있다. 지난 정부에서 만들었던 사내유보금 과세제도인 기업소득환류세제 또한 연말까지 시행될 예정이라 사내유보금은 계속 논쟁거리가 될 것으로 보인다.
포털사이트의 지식백과에서 찾아보면 사내유보금은 기업이 벌어들인 이익에서 배당 등을 지급하고 남은 이익잉여금과 액면가액을 초과해 주식을 발행할 때 생기는 자본잉여금을 합친 것으로 정의돼 있다. 회계상 개념일 뿐 기업이 쌓아둔 현금은 아니라는 자세한 설명까지 곁들여놨다. 개념설명이 확 와닿지 않는다면 다음과 같은 예를 살펴보자.
연봉 4000만원을 받는 직장인 김알뜰씨는 소득의 50%인 2000만원만 생활비로 지출했다. 이를 기업의 손익계산서 모양으로 바꾸면 수익 4000만원, 비용 2000만원이고, 수익과 비용의 차이인 2000만원은 순이익으로 표현할 수 있다. 만약 김알뜰씨가 이런 생활을 30년 동안 계속하고 은퇴했다면 김알뜰씨의 순이익 누적액은 2000만원×30년인 6억원이 될 것이다. 과연 30년 후 김알뜰씨의 통장에는 6억원이 있을까? 이자까지 계산하면 6억원 이상은 당연히 있어야 할 것 같은데 막상 통장을 보면 없을 가능성이 크다. 생활비를 2000만원밖에 안 썼지만, 김알뜰씨는 결혼해서 집도 장만하고 차도 구입했을 것이며 중간에 주식투자를 했다가 손실을 냈을 수도 있다. 우리는 집이나 차를 장만하거나 재테크를 할 때 가계부에 생활비로 기록하지 않고 자산으로 인식하는 게 일반적이다.
오랜 세월 동안 집과 차를 장만하는 데 총 6억원이 들었다면 김알뜰씨의 통장에는 돈이 거의 없을 것이다. 이런 사정도 모르고 하나밖에 없는 장성한 아들이 사업자금을 대달라고 철없이 조른다면 김알뜰씨는 살던 집을 팔든지 빚을 내든지 해야 할 것이다.
김알뜰씨의 30년간 가계부를 기업의 재무제표 모양으로 바꿔보자. 집을 사고 차를 구입하는 것은 비용으로 처리하지 않고 자산으로 인식한다. 이 자산 6억원은 이익누적액인 자본 6억원으로 구성된다. 현금성 자산은 재무제표에 아예 없다. 그렇기 때문에 이익누적액인 사내유보금 6억원은 돈으로 여길 수 없을 것이다.
이번에는 기업의 사례를 살펴보자. 창사 34주년을 맞은 SK텔레콤의 재무제표에는 자본잉여금 약 3조원과 이익잉여금 약 16조원이 있다. 사내유보금 용어정의에 맞게 계산해보면 약 19조원인데 과연 SK텔레콤은 그 정도의 돈을 갖고 있을까?
2016년도 말 기준으로 작성된 재무제표를 전자공시시스템(DART)에서 찾아보면 보유현금은 2조원인데, 갚아야 할 차입금만 7조원이 넘는다. 즉 2조원에 달하는 현금보유액은 회삿돈이 아닌 은행돈이나 다름없다. 사내유보금은 19조원으로 계산되는데 왜 회사는 돈이 없을까?
재무제표 주석에서 유형자산과 무형자산의 내역을 살펴보면 2016년까지 44조원 정도의 유무형자산을 취득했고 이 중 30조원어치가 감가상각되어 재무제표에는 약 14조원이 남아 있다. 34년 동안 영업을 하면서 유형자산을 중간에 매각한 것도 많이 있을 테니 총취득가액은 44조원보다 훨씬 클 것이다. 회사는 그동안 창출했던 이익에 차입금까지 얹어 시설투자에 쓰느라 실질적으로 돈이 없는 상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내유보금이 많다는 근거로 돈을 풀라고 요구한다면 회사는 당장 은행에 가서 돈을 빌려오거나 통신장비를 팔아야 할 것이다. 누구나 이런 그림을 원하지는 않을 것이다.
사내유보금을 돈으로 간주해서 논리를 펴는 것은 회계상 바람직한 방법이 아니다. 일자리 창출, 최저임금 인상, 통신요금 인하 등은 사회적으로 매우 중요한 과제이므로 반드시 최선의 해결책이 나와야 한다. 그러려면 대다수가 수긍할 수 있는 논리적 근거가 반드시 뒷받침되어야 할 것이다.
사내유보금은 돈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금(金)으로 끝나는 용어다 보니 자주 돈으로 오해를 받는다. 이참에 학계에서 국민 대다수가 공감할 수 있는 쌈박한 용어를 고안해주시길 당부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