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바 청년들 “취미생활·자기계발로 취업 준비에 투자”
비정규직은 “고용 안정 우선…임금 상승분 전가 우려”
지난 15일 밤 내년도 최저임금이 7530원으로 결정됐다는 소식을 들은 정미화씨(56)는 동료들이 있는 카카오톡 단체 채팅방에 들어갔다. 이 단톡방에서는 아쉽지만 ‘이 정도면 어디야’라는 반응이 주를 이뤘다. 정씨는 근속수당을 제외하고는 위험 도구(칼 등)를 사용하는 수산 담당이라 최저임금보다 240원을 더 받으며 홈플러스 영등포점에서 무기계약직으로 10년째 일하고 있다. 그는 16일 “‘내가 맥주 한잔 살게’ 하는 마음의 여유가 생겼다”고 했다. 정씨는 그간 미뤄왔던 중3 아들의 학원 수강을 알아볼 생각이다.
내년도 최저임금이 올해보다 16.4% 인상된 7530원으로 결정되자 최저임금을 받고 일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기대감을 내비쳤다. 롯데마트 서울역점에서 3년째 무기계약직으로 일하고 있는 이현숙씨(43)는 “한동안 소식이 없어 걱정했다. 시급이 1000원 이상 오른 것은 처음”이라며 “팍팍한 임금 때문에 부모님이나 가족들 챙기는 데 돈을 쓰기 여의치 않았는데 이젠 조금 나아질 것 같다”고 했다. 명지대 청소노동자 고인희씨(58)도 “하루에 7시간 일하기 때문에 한 달로 치면 10만~20만원 정도 오른다”며 “가족들과 외식을 한두 번 더 하거나 놀러갈 수는 있게 됐지만 저축을 하거나 적금을 붓기는 어려울 것 같다”고 했다.

노동자 손 들어준 공익위원 최저임금위원회 노동자위원들이 지난 15일 정부세종청사 고용노동부에서 열린 전원회의에서 내년도 최저임금을 확정한 뒤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20대 청년 아르바이트 노동자들은 최저임금 인상으로 시간을 더 벌 수 있게 됐다며 반겼다. 최저임금이 인상되는 만큼 일하는 시간을 줄여 취업을 위한 자기계발이나 취미생활을 하겠다는 것이다. 서울 서초구 한 프랜차이즈 카페에서 8개월째 아르바이트를 하는 대학생 박지우씨(20)는 “경제적 여유를 넘어 시간적 여유를 주는 것이 최저임금 인상”이라고 말했다. 그는 “취업을 위해 대외활동이나 공모전에 시간을 투자할 계획”이라며 “조금 더 경제적 여유가 생긴다면 3~4개월에 한 번씩 보던 뮤지컬도 자주 보고 싶다”고 말했다. 서울 광진구 대학가 카페에서 9개월째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대학생 임호빈씨(27)도 “생활비를 벌고 남는 시간에는 자격증을 따거나 다른 취업준비를 위한 공부를 할 것”이라고 했다.
지난해 11월 한국노동사회연구소에서 발간한 ‘비정규직 규모와 실태’ 보고서를 보면 최저임금 인상의 수혜자는 여성·학생·저학력층, 청년과 고령자, 숙박음식점업·서비스·단순노무직 종사자다. 비정규직 중에선 시간제 노동자, 임시직·일용직, 비노동조합원 등이 최저임금 인상 혜택을 받는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생활 안정을 기대하면서도 고용 불안에 대한 걱정을 놓지 못했다. 한 중소기업의 사내하청 회사에서 일하는 김미애씨(33·경기 안산시)는 “매달 대출받은 전세자금을 더 갚을 수 있는 여력이 생길 것 같다”면서도 “매년 재계약을 해야 하는 구조여서 최저임금 상승 부담을 사내하청 노동자들에게 전가할까봐 걱정”이라고 했다. 한국지엠 창원공장 비정규직 노동자인 배성도씨(36)는 “가족들이 최저임금 인상 발표에 모두 기뻐했다”면서도 “지금까지 최저임금으로 살며 빚을 졌기 때문에 최저인금 인상분으로 새로운 계획을 짤 여력은 없다”고 했다. 그는 “최저임금 인상이 만병통치약은 아니다”라며 “고용 안정이 돼야 미래를 계획하든 뭐든 여력이 생길 것 같다. 고용 안정 없는 최저임금 인상은 의미가 없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