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0일 오후 7시쯤 서울대병원 장례 식장 3층 야외에서 진행된 고 박종필 감독 ‘추모의밤’ 행사에서 고인과 가까웠던 이들이 박 감독과의 추억을 이야기하고 있다. 이날 행사의 전 식순에 수화통역사가 함께 했다. (사진 오른쪽부터) 김덕진 천주교인권위원회 사무국장, 김도현 노들장애인야학 활동가, 문종택 세월호 유가족( 단원고 1반 고 문지성 부친). 유수빈 기자.
“종필이가 제 귀에 대고 얘기했습니다. ‘형, 우리는 뭐 하는 사람이지? 내가 목포에 있을 때 형한테 물었는데, 우리는 뭐하는 사람이지?’ 가족들이 신신당부하며 ‘종필이 앞에서 울지 말라’고 해서 저는 허벅지를 찌르면서 눈물을 참았습니다. 종필이는 마지막으로 제게 ‘우리는 감동을 주어야하는 사람이다’라고 했습니다. 정의, 인권을 먼저 얘기하지 않았지만 ‘감동을 줘야 인권이 따라오고 감동이 지속돼야 촛불이 타오른다’고 했습니다.”
고 박종필 감독(향년 49)과 세월호 영상 기록 작업을 함께해 온 단원고 고 문지성 학생 아버지 문종택씨(55)가 투병 중이던 고인과의 마지막 만남을 회상하며 이같이 말했다. 박 감독은 간암으로 지난 28일 세상을 떠났다.
발인을 하루 앞둔 30일 오후 7시, 빈소가 차려진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3층 야외에서 ‘차별에 저항한 영상활동가, 고 박종필 감독 추모의 밤’ 행사가 열렸다. 장애·빈민 활동가와 4·16연대 소속 활동가, 독립 영화 제작자들이 공동으로 꾸린 박종필 감독 시민장례위원회가 마련한 자리다.
사회를 본 김덕진 천주교인권위원회 사무국장은 노숙자와 장애인 등 사회적 소수자들과 함께 생활하며 다큐멘터리를 찍은 박 감독의 이력을 소개한 뒤 “오늘 조문에는 힘 없고 돈 없고 ‘백’ 없는 사람들이 다 온 것 같다”고 말했다.
이날 빈소에는 휠체어를 탄 장애인들이 줄을 이어 조문을 했다. 추모제에서 장애인 인권운동매체인 ‘비마이너’의 김도현 발행인은 “장애인 활동가들도 종필이형에게 스스럼 없이 부탁을 하고, 종필이 형이 늘 옆에 있었다”고 했다. 그는 “장애 현장 투쟁이 1990년대 중반 거의 단절까지 간 시기에 에바다 투쟁(장애인권 운동가들이 1996년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에바다복지회가 운영하는 사회복지시설에서 벌어진 비리와 인권유린에 맞서 벌인 투쟁)이 있었고, 다시 장애인 투쟁이 타오를 때 종필이 형이 있었다”며 “당시 종필이 형이 없었으면 (장애 운동이) 이렇게 될 수 있었을까 생각한다”고 했다. 그는 ‘버스를 타자’ ‘노들바람’ 등 박 감독이 만든 ‘장애인권 3부작’ 다큐멘터리 테이프와 디브이디(DVD)를 준비해와 가방에서 꺼내 들어 보이기도 했다.

30일 저녁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서 열린 고 박종필 감독 추모의 밤 행사에서 박경석 노들장애인야학 교장(뒷줄 왼쪽 첫번째)등 참석자들이 고인의 추모영상을 보고 있다. 고인은 생전에 박 교장의 삶을 영화로 만드는 것이 꿈이라고 했다. 유수빈 기자.
4·16연대 미디어위원회가 만든 박 감독 추모 영상이 상영되자 참석자들은 곳곳에서 코를 훌쩍였다. 추모제에서 고인의 큰형은 “동생이 주변 분들에게 자기 상태를 알리지 말라고 했다. 주변 분들을 배려하느라 자기 병에 대해 슬퍼할 틈도 없었다”고 말했다. 박 감독은 특히 2014년 4월16일 참사 발생 이래 오랜 시간 동고동락한 세월호 유족들이 자신의 투병 소식에 충격을 받을까봐 걱정했다고 한다.

30일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서 열린 고 박종필 감독 추모의밤 행사에서 4.16합창단이 공연하고 있다. 4.16합창단은 ‘아름다운 사람’, ‘잊지 않을게’ , ‘내 가는 이 길 험난하여도’를 부르며 고인을 추모했다. 유수빈 기자.
여성듀오 ‘다름아름’과 4·16합창단이 ‘아름다운 사람’, ‘잊지 않을게’ 등 노래로 고인을 추모했다. 추모제의 전 식순은 수화로 통역됐다.
고 박종필 감독은 세월호 참사 이후 유가족과 연대해 관련 현장을 영상으로 기록해 왔고, 지난해에는 4·16연대 미디어위원회 실무 책임자를 맡았다. 간암 진단을 받고 투병 생활을 시작하기 직전까지 목포신항에서 세월호 선체조사 작업을 촬영했다.
발인은 31일 오전 8시 서울대병원에서 진행되며, 영결식은 같은날 오전 10시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시민장례위원회가 주관하는 ‘인권사회장’으로 열린다. 시민 누구나 참여해 헌화할수 있다.
한편 시민장례위원회는 박 감독의 주요 다큐멘터리 작품을 무료로 볼 수 있도록 다음달 8일까지 고인의 작품들을 유튜브에 공개한다. 유튜브에서 ‘박종필’로 검색하면 ‘IMF 한국, 그 1년의 기록 실직노숙자’(1999)부터 ‘장애인 이동권 투쟁보고서 : 버스를 타자!’(2002), ‘노들바람’(2003), ‘416프로젝트 망각과 기억 - 인양’(2016), ‘망각과 기억 2 : 돌아봄 - 잠수사’(2017)를 감상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