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에 떠는 여성 1인 사업장
“일부러 많이 놔둔 거예요. 사람 많아 보이려고.” 서울 서대문구에서 피부관리실을 운영하는 강혜정씨(53·가명)는 가게 신발장에 놓인 신발들을 가리키며 이렇게 말했다. 14년간 혼자 피부관리실을 꾸려가고 있는 강씨는 “손님이 많은 것처럼 해놓아야 나쁜 사람이 들어와 해코지를 하지 않을 것 같다”며 “건전업소라 소개하고 있는데도 찾아온 남자 손님들이 ‘얼굴 아래도 마사지해달라’거나 ‘특정 신체부위를 경락해달라’고 요구해 일절 남자 고객은 상대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부산에서 혼자 미용실을 운영하는 임모씨(30)는 “최근 왁싱숍 살인사건 이후 서너 시간마다 남편에게 전화로 ‘생존신고’를 하고 있다”며 “원래 진상 고객이 많았는데 이제는 그게 살인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두려움에 고민이 많다”고 말했다.
지난달 5일 배모씨(31)가 여성 혼자 일하는 왁싱숍을 찾아가 성폭행하려 한 뒤 살해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혼자 사업장을 운영하는 여성들의 불안이 커지고 있다. 소셜미디어에는 ‘왁싱숍 여혐 살인사건’ 등의 해시태그와 함께 1인 여성 사업장에서 일어나는 성희롱이나 범죄 피해 경험담이 공유되고 있다.
국세청 국세통계연보에 따르면 2015년 말 기준 총사업자 670만2000여명 중 여성 사업자 비율은 37.5%다. 개인사업자 중 여성 비율은 40.2%로 5년 전인 2011년 38.7%보다 1.5%포인트 증가했다. 여성 혼자 가게를 운영하는 1인 사업장이 늘면서 이를 노린 범죄도 잇따르고 있다. 지난달 경기 안산시에서 50대 여성이 운영하는 마사지 업소에 강도가 침입해 주인을 폭행하고 휴대전화와 체크카드를 훔쳐 달아난 일이 발생했다. 지난 2월엔 여성이 혼자 운영하는 식당만 노려 현금·가방 등을 훔친 혐의로 이모씨(48)가 서울 동작경찰서에 구속됐다. 이나영 중앙대 교수(사회학)는 “사업장에 폐쇄회로(CC)TV를 단다고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라며 “꾸준한 성평등 교육, 인권교육 등 다각적이고 장기적 관점의 접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휴일인 6일 낮 12시 서울 지하철 강남역 10번 출구 앞에서는 ‘이번에도 여자라서 죽었다’는 표어 아래 ‘왁싱숍 살인사건 규탄 집회’가 열릴 예정이다. 강남역 10번 출구는 지난해 5월 강남역 인근 한 건물 화장실에서 한 남성이 일면식도 없는 여성을 살해한 사건 이후 피해자를 추모하는 쪽지 수천장이 붙었던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