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ㅋㅋㅋ” 초등생 유머집, 알고 보니 성인용

이유진·유수빈 기자
“ㅋㅋㅋ” 초등생 유머집, 알고 보니 성인용

“어떤 모녀가 영화관에 갔다. 한창 영화에 빠져 있는 엄마에게 딸이 소근거렸다. ‘엄마, 옆에 있는 남자가 자꾸 내 허벅지를 만져.’ 그러자 발끈한 엄마 왈, ‘나랑 자리 바꿔.’”

학부모 ㄱ씨는 얼마 전 초등학교 3학년 딸이 들고 온 유머집 내용을 보고 당황했다. 손바닥만 한 유머집에 왜곡된 성의식이 담긴 내용과 원색적인 욕설이 적나라하게 쓰여 있었기 때문이다. ㄱ씨는 “성인들만 이해할 수 있는 내용에 저속한 말과 욕설까지 버젓이 담긴 유머집이 애들이 매일같이 들락거리는 문구점에서 유통되고 있어 놀랐다”고 말했다. ㄱ씨 자녀는 이 유머집을 서울 강북구 한 초등학교 앞 문구점에서 구입했다. <유머인생 40년>이란 제목의 유머집은 총 72쪽 분량이다. 가로 6.5㎝, 세로 9㎝로 아이들의 손바닥에 딱 맞는 크기다. 가격은 500원. 유머집에 제작사는 표기돼 있지 않다.

성인용 유머집이 요즘 초등학생들 사이에서 유행이다.

경향신문이 8일 서울시내 초등학교 앞 10군데 문구점을 살펴본 결과 7개 문구점에서 이런 유머집을 팔고 있었다.

서울 동대문구 한 문구점은 유머집을 가장 눈에 잘 띄는 출입문 앞쪽에 배치하고 판매 중이었다. 원색 표지에 카카오톡 프렌즈 캐릭터가 그려진 유머집 <크게 웃어봐>(사진)도 포켓형이고 가격은 500원이었다.

문구점 주인 반모씨(77)는 “포켓유머집을 사가는 것은 주로 초등 3~4학년 남학생들”이라며 “한 명이 사면 주변 친구들이 따라서 사는 식”이라고 말했다. 그는 “유머집이라고 해서 문구 납품업자한테 주문해서 받는데 누가 만드는지는 모르겠다”고 말했다.

유머집에는 성차별적이거나 여성비하적인 내용이 다수 담겨 있다. <크게 웃어봐>에는 골프 게임을 빗대 “얄미운 X시리즈 (1)툭 치는데도 멀리보내는 X (2)아구구구 비명 지르면서 홀 속으로 쏙 집어넣는 X (3)매일 땡볕에서 놀아도 기미 안 낀다고 자랑하면서 씻고 쌩얼로 집에 가는 X (중략) (6)그늘집마다 들어가 처먹고 마시고 회식 땐 미친 듯이 먹는데도 똥배 안 나오는 X’ 등 여성비하적 내용이 있다. <유머인생 40년>에는 ‘부부 가사 분담은 어떻게? 여자=일 전부, 남자=준비와 뒤처리, 시어머니 방문 시=여자가 전부 다!!!’라는 내용도 있다.

초등학교 4학년 이모군(10)은 “한 번 궁금해서 봤는데 웃기고 재미나서 친구들이랑 하나씩 사서 봤다. 재미있어서 2~3개 샀다”고 했다. 초등학교 5학년 박모양(11)은 “친구들이 재밌다고 하면서 많이들 본다”고 했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아직 판단력이 미숙한 어린 학생들은 왜곡된 성의식과 나이에 맞지 않은 내용의 유머를 접하면 이를 유머로 받아들이기보다 무비판적으로 학습하게 된다”며 “이런 책들은 어린 학생에게 유머집이 아니라 유해물”이라고 말했다.

곽 교수는 “제작사들이 이를 만들지 않도록 하는 게 가장 좋은 대책이지만 이와 더불어 주변의 어른들이 어린이들에게 이런 내용이 잘못됐다는 걸 알려주고 인지할 수 있게 도와줘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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