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봉춘. 한때는 정겨웠던 이름이다. 하지만 지금은 잊혀진, 과거형의 이름이다. MBC 구성원들은 마봉춘을 그리워하고 있다. 거리에서, 광장에서, 방송국에서 “돌아오라 마봉춘!”을 외치고 있다. 올해로 10년째다. 2006년 나경은 아나운서가 <무한도전>에 신분을 밝히지 않은 채 목소리만 출연했다. 누구냐고 묻자 그는 “MBC”라고 했다. 그러자 유재석이 “MBC가 이니셜이면 혹시 이름이 마봉춘?”이라고 되물었다. 그때부터 누리꾼들은 MBC에 마봉춘이란 애칭을 붙여줬다. 당시만 해도 MBC는 로고송대로 ‘만나면 좋은 친구’였다. 지금처럼 뉴스·시사·교양 프로그램 시청률이 낮지 않았다. ‘정권의 나팔수’라는 오명을 뒤집어쓰지도 않았다. 돌이켜보면 마봉춘으로 불렸던 때가 MBC의 전성기였다.
MBC의 날개 없는 추락은 한순간에 찾아왔다. 2010년 2월 ‘이명박(MB) 낙하산’이었던 김재철 사장이 취임하면서 MBC는 마봉춘에서 ‘MB씨’가 됐다. 당시 MBC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 김우룡 이사장의 말처럼 김 사장은 “큰집(청와대) 가서 조인트 까이고, 좌파척결을 위한 청소부 역할”을 했다. 김 사장은 MB 정부가 눈엣가시처럼 여긴 <후 플러스> <김혜수의 W> 등 시사프로그램을 폐지했고, <PD수첩> <시사매거진 2580> 제작진을 다른 부서로 발령내거나 중징계했다. <PD수첩>의 ‘4대강 수심 6m의 비밀’편 방송을 보류하고, 미국산 소고기의 광우병 위험성을 경고한 보도에 대해선 일간지에 사과광고까지 내게 했다. MBC노조는 2012년 ‘공정방송 쟁취’를 내걸며 170일간 파업을 벌였고, 이듬해 3월 김 사장은 퇴임했다.
하지만 마봉춘은 돌아오지 못했다. 2014년 2월 취임한 안광한 사장 체제의 MBC는 박근혜 정부에 유리한 편파·왜곡 방송을 지속했다. 세월호 참사를 축소 보도하고, 유가족들이 광화문 광장에 천막을 설치하자 ‘불법 농성’으로 규정했다. 지난해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불거졌을 때는 검찰이 증거로 채택한 최씨의 태블릿 PC에 의문을 제기하는 보도를 잇달아 내보냈다. 국회가 MBC 노조탄압 청문회 개최에 합의하자 <뉴스데스크>를 통해 야당을 비난하는 보도를 나흘에 걸쳐 16꼭지나 방송하기도 했다. 지난 겨울 촛불시민에게 “엠빙신”이란 힐난을 들을 만했다. MBC 경영진은 공영방송의 기본 가치를 짓밟는 한편 저널리즘 원칙에 충실했던 기자·PD를 탄압했다. ‘해고 10명, 중징계 110명, 유배 157명’이란 숫자는 MBC가 고용노동부의 특별근로감독을 받을 수밖에 없는 ‘최악의 노동탄압 사업장’이란 것을 말해준다.
봄을 이기는 겨울은 없는 법이다. 하지만 MBC는 여전히 ‘동토의 왕국’으로 남아 있다. ‘박근혜 정권 언론장악 부역자’ 명단에 오른 김장겸 사장이 지난 3월 취임한 이후에는 보도통제와 검열이 일상화됐다. ‘박근혜 없는 박근혜 방송’을 지속하고 있는 것이다. <PD수첩> <시사매거진 2580> 등의 시사 프로그램에서 ‘세월호’ ‘4대강’ ‘국정원’ ‘백남기’ 등은 언급불가의 금기어다. 지난주 시사제작국 기자·PD들이 제작 중단에 돌입했다가 대기발령을 통보받은 것은 보도통제와 사전검열에 저항했기 때문이다.
지난 8일에는 ‘MBC판 블랙리스트’의 존재가 뒤늦게 알려졌다. 노조가 공개한 ‘카메라기자 성향 분석표’ ‘요주의 인물 성향’ 등 2건의 문건에는 ‘게으른 인물’ ‘영향력 제로’ ‘무능과 태만’ ‘존재감 없음’ 등의 모욕적인 표현과 함께 카메라기자 65명을 소고기처럼 4개 등급으로 분류한 도표까지 실려 있다. 사측은 블랙리스트를 인사평가와 인력배치에 활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공영방송에서 블랙리스트라는 야만적 발상이 구체화되고 실행에 옮겨진 것이다. 사측은 “정체불명의 유령문건”이란 입장문을 냈지만 노조는 “소문으로만 떠돌던 노조파괴 공작의 음모가 빙산의 일각을 드러낸 것”이라고 했다. 문재인 대통령의 말대로 MBC는 지난 10년간 다른 공영방송과 함께 “참담하게 무너졌다”.
YTN 노사는 지난주 이명박 정부 때 해직된 노종면·조승호·현덕수 기자의 복직안에 합의했다. 9년 만이다. 이제 공정방송 실천 과 경영진 퇴진을 요구하다 해직된 6명의 MBC 언론인이 복귀할 차례다. 언론노조 홈페이지에는 이들의 해직 누적일수가 매일 업데이트되고 있다. ‘이용마(1985일째), 정영하·강지웅(1956일째), 박성호(1899일째), 최승호·박성제(1878일째).’ 해직 이후 이들이 겪는 고통은 그 어떤 숫자로도 계량하기 어렵다. 촛불시민의 명령을 거부하고 MBC를 망가뜨린 경영진이 주역을 맡은 ‘비극적인 드라마’는 당장 끝내야 한다. 그래야 지난 10년간 실종됐던 마봉춘이 돌아올 수 있다. MBC 개혁 드라마의 주역은 마봉춘이 맡아야 한다. 그게 정의이고, MBC를 살리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