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정 헌법재판관 후보자에 대해 정치적인 인물이라는 이유로 야당들이 반대하고 있다. 자유한국당은 “이 후보자는 노무현 대통령 후보, 민주노동당, 박원순 서울시장, 문재인 대통령 후보를 노골적으로 지지한 극단적인 정파적 인물”이라고 했다. 국민의당도 “이 후보자에게는 헌법재판관 지명이 아니라 차라리 민주당의 후보 공천을 주는 게 맞지 않겠나”라고 밝혔다. 바른정당도 비슷한 이유로 반대하고 있다. 이러한 야당의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것이 학계와 법조계의 공통된 지적이다. 그 이유를 하나씩 확인한다
■ 팩트 1. 헌법재판은 본질적으로 정치적이다
‘헌법재판=정치재판’이라는 것은 헌법학의 상식이다. 현재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헌법교과서로 꼽히는 한수웅 중앙대 교수의 <헌법학>에서도 같은 얘기가 나온다. 한수웅 교수는 독일 프라이부르크대학 박사로, 지난 1월 양승태 대법원장이 지명해 취임한 국가인권위원이기도 하다. <헌법학>에는 전세계 헌법교과서와 마찬가지로 “헌법재판은 정치재판”이라고 설명한다. 사법적 성격이 있지만 정치적 성격이 주요하다는 것이다.
“헌법재판의 정치적 성격은 일차적으로 그의 심사기준인 ‘헌법의 정치적 성격’으로부터 나온다. 헌법은 정치적 국가기관을 창설하고 국가권력의 행사와 정치적 과정을 규율하는 정치적인 성격을 가진 법규범이다. 헌법재판은 정치적인 규범인 헌법을 심사기준으로 삼기 때문에, 헌법의 해석과 적용의 결과인 헌법재판소의 결정은 사건마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본질적으로 정치적이다.” <헌법학> (제6판, 2016) 1363쪽.

지난 3월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심판 사건 선고를 앞둔 헌법재판소의 모습. / 김기남 기자 kknphoto@kyunghyang.com
■ 팩트 2. 국회는 정치인 재판관을 뽑아왔다
이러한 헌법재판의 본질에 맞춰 우리 국회는 정치인 출신의 헌법재판관을 선출해왔다. 1988년 헌법재판소 개소 직후 민주정의당은 4선 국회의원 출신 한병채 변호사를 추천했고 국회가 선출했다. 2기 재판소가 시작된 1994년에는 민주당이 김대중 총재의 비서실장이던 국회의원 출신 조승형 실장을 재판관에 추천하고 국회가 선출했다. 하지만 이후 정치인 재판관의 맥이 끊어졌고, 헌법학계와 헌법재판관들은 다양성이 훼손됐다고 오랫동안 지적해왔다.
헌법재판소의 대표적인 원로인 김문희 전 재판관도 정치인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했다. 그는 1988년 이일규 대법원장 지명의 대법원장 몫으로, 1994년 민주자유당의 추천의 국회 몫으로 12년간 헌법재판관을 지냈다. “최근 재판소 구성은 잘못된 것이다. 법학자·정치인·외교관 한 사람 정도씩 필요하다. 법관으로 오랫동안 일한 사람은 헌법재판을 민·형사재판처럼 하려는 경우가 있다.” <헌법재판소, 한국현대사를 말하다> (제4쇄, 2009) 279쪽
■ 팩트 3. 선진국 재판관들은 정치적이다
미국의 헌법재판소인 연방대법원의 대법관은 대부분 정당의 당원이다. 미국 사법사상 가장 존경받는 그리고 진보적인 대법원을 만든 것으로 평가받는 얼 워렌 대법원장은 공화당원이었다. 현직 연방대법관들도 마찬가지다. 지난 4월 임명된 닐 고서치 대법관은 공화당원, 이에 앞서 2010년 임명된 엘레나 케이건은 민주당원이다. 그에 앞서 2009년 취임한 소니아 소토마요르는 민주당원이었다가 대법관이 되면서 민주당에서 탈당했다.
일본 최고재판소도 크게 다르지 않다. 일본에서는 전통적으로 최고재판소 재판관 15명의 출신 비율이 일정하게 유지된다. 최근에는 재판관(6), 변호사(4), 검찰관(2), 법학자(1), 행정관(2)이다. 이 가운데 행정관 몫은 외무성, 후생노동성, 내무법제국의 관료들이다. 관료이기 때문에 자유민주당 등 특정 정권에서 일한 경력을 보유한다. 독일도 재판관의 정당가입을 인정하며, 칼 슈미트의 제자로서 공법학의 대가인 에른스트볼프강 뵈켄푀르데 전 연방헌법재판소 재판관의 경우 사회민주당의 법정책 이론가였다.
법조계 관계자들은 “우리 재판소의 역대 정치인 출신 재판관도 그렇고, 외국의 예도 그렇고 정치인 재판관이 정치적 중립을 위반한 적 없다”면서 “정치인도 아니고 정치성향을 가졌다는 이유로 재판관에 부적합하다는 것은 헌법의 본질도 세계의 흐름도 모르는 얘기”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