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으로 생각하기
매튜 B 크로포드·윤영호 옮김 | 사이 | 288쪽 | 1만4500원
쇼핑몰의 테디베어를 만들 수 있는 ‘빌드 어 베어’ 매장. 이곳을 찾는 아이들은 컴퓨터 화면에서 몇 번의 클릭으로 곰인형의 외형과 옷을 고른다. 몇 분 내로 원하는 곰인형이 그대로 상품으로 만들어진다. 아이에겐 얼핏 주체적인 선택권이 주어진 것 같지만 실은 상품 생산과 관리의 편리성으로 준비된 옵션들 중 하나를 택했을 뿐이다. “현대적 개성이라는 것은 결국 수동적 소비의 속성으로 재편성되고 있고, 그런 성향은 삶의 초기부터 시작된다.” 우리 안에 내재돼있는 주체성을 육성할 기회를 박탈당하고 있는 것이다.
<손으로 생각하기>는 갈수록 손작업이 필요없는 사회에 의문을 던진다. 정치철학 박사인 저자 매튜 B 크로포드는 워싱턴의 싱크탱크에서 소장으로 일했다. 그의 업무는 누가 봐도 지적인 것이었지만, 정작 자신은 ‘과연 내가 누군가에게 유용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것일까’ 무익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그는 단지 사무직 업무에 맞지 않았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저자는 평범한 자신의 얘기를 통해 지식노동으로 인정받는 다른 직업들과 비교해 육체노동을 할 때 더 크게 느꼈던 ‘행위주체성’과 ‘능력에 대한 감각’에 대해 고백한다.
이 책은 높은 연봉과 사회적 지위를 던지고 소도시 허름한 정비소의 모터사이클 정비사가 돼 체득한 ‘육체적 몰입’의 깨달음에 관한 지적 보고서이다.
저자는 고장난 낡은 바이크를 고칠 때마다 어려움에 처했다. 고장 원인이 불확실해 분석적 추론을 끌어내기 어려웠던 탓이다. 이때 필요한 것은 오직 ‘경험에서 비롯된 판단’이었다. 직감이 규칙보다 나을 수 있는 것이다. 저자는 바이크숍에서 일하면서 예전 직장인 싱크탱크에서 일할 때보다 ‘생각을 더 많이 한다’는 것을 깨닫는다. 또 잘 수리된 바이크에 흡족해하는 고객을 보며 더 이상 자신의 가치를 자질구레하게 늘어놓지 않아도 된다는 데 만족감을 얻는다. 손노동을 통해 세상에 자신을 구체적으로 표출하며 만족감을 느낄 때 우리는 차분하고 느긋해질 수 있다.
고대의 철학자 아낙사고라스는 ‘손을 사용하기 때문에 인간은 가장 지능적인 동물’이라고 했다. 하이데거는 손재주를 사물이 가장 독창적으로 그 모습을 드러내도록 하는 양식이라고 봤다. 하이데거는 ‘가장 밀접한 교섭의 양식은 단순한 지각적 인식이 아니라 고유한 지식을 지니는 사물을 다루고 사용하고 관리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우리는 흔히 경제적 논리로 ‘손을 사용하지 않는 것이 더 합리적’이라고 말한다. 또 고등적인 것으로 취급한다. 저자는 이 같은 경제학의 영향력에 맞서야 한다고 주장한다. 자신이 직접 손으로 체득한 것, 소위 ‘인간 경험의 특수한 이질성’을 고수해야 한다. 특히 신자본주의 체제에선 오직 특정한 가치들만 인정할 뿐, 정작 중요한 가치들은 인정하지 않는 속성이 강하기 때문이다.
대학에서 물리학을 전공하다 철학에 빠져 그리스어까지 공부하는 등 지적 호기심이 강한 저자는 모터사이클 정비사로서의 풍부한 경험담에 철학과 경제학, 인지심리학을 넘나들며 ‘손노동’으로 얻는 본질적인 삶에 대해 역설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