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7 전당대회에서 안철수 신임 대표(55)가 선출됨에 따라 국민의당은 지난 대선 패배 이후 110일만에 ‘안철수 체제’로 회귀했다. 당 안팎의 반발을 무릅쓰고 당 대표 출마라는 승부수를 던진 안 대표는 1차 투표에서 과반 득표를 확보하며 당 대주주이자 간판임을 재확인했다. 지난해 6월 당 리베이트 의혹에 책임을 지고 대표직에서 물러난 뒤 1년2개월만에 당 운영의 전면에 나선 것이다.
대선 패배 후 정치적 재기를 노릴 수 있는 모멘텀을 마련했지만 자칫 이번 당 대표 선출이 안 대표에게 독배가 될 수 있다는 관측도 많다. 당 대표 선거 과정에서 격화된 당내 갈등, 고공 지지율을 지속 중인 문재인 정부와의 관계 설정, 내년 지방선거 등 난제가 한 둘이 아니기 때문이다.
■정치전면에 나설 전환점 마련
8·27 전당대회의 관전 포인트는 안 대표의 과반 득표 여부였다. 안 대표가 1차 투표에서 과반을 확보하지 못할 경우 결선투표 결과에 관계없이 정치적 타격을 입을 공산이 컸다. ‘안철수 브랜드’가 더 이상 당내 압도적 대세가 아니라는 얘기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안 대표는 51.09% 득표율로 과반을 확보했다. 득표율(24%)이 당초 기대치(30%)보다 낮아 1차 과반 득표가 힘든 것 아니냐는 관측이 제기됐지만 개표 결과는 달랐다. 적어도 국민의당 내에서는 ‘안철수 대세론’이 여전하다는 사실이 확인된 것이다. 당심이 당 간판이자 창업주인 안 대표 외에 다른 대안을 찾지 못했다는 의미다.
일단 안 대표는 지난 대선 패배와 ‘제보조작’ 사건 책임론을 딛고 정치 전면에 나서는 전환점을 마련했다. 당 안팎에 차기 대권주자로서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면서 ‘안철수 정치’를 펼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한 셈이다. 97년 대선 패배 후 곧바로 당권을 장악해 2002년 대선 출마의 발판을 마련한 ‘이회창 모델’을 따른 셈이다.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의 행보와도 닮았다.
하지만 안 대표를 기다리는 것이 ‘꽃길’은 아니다. 당 안팎 사정이 녹록치 않아 오히려 험로가 예상된다. 당장 당내 갈등을 치유하는 게 급선무다. 안 대표 출마선언 이후 당 안팎에선 반발이 빗발쳤다. 잦아들긴 했지만 호남 원로들을 중심으로 탈당 얘기까지 나왔다. 안 대표 비판 여론은 당 대표 경선 과정에서 상대 후보들의 ‘안철수 불가론’으로 표출됐다.
그 과정에서 안 대표를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수상에 비유하거나 일부 지역위원장들의 안 대표 지지선언을 “당내판 제보조작 사건”으로 규정하는 등 독설이 불을 뿜었다. 선거가 끝난 뒤 당 대표 후보들 모두 “통합”을 말하고 있지만 감정적 앙금을 쉽게 걷어내기 힘들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새 최고위원회 구성도 안 대표에게 유리하지 않다. 박주현·장진영 신임 최고위원은 안 대표 라이벌인 천정배 전 대표 계보로 분류된다.
■개혁 연대냐, 야당 정체성이냐
문재인 정부와 관계 설정도 큰 숙제다. 안 대표는 수락연설에서 “실천적 중도개혁정당”을 표방하고 문재인 정부의 ‘무책임’과 ‘독선’, ‘오만’에 맞서겠다고 했지만, 선택지는 많지 않다. 당장 9월 정기국회에서 ‘개혁 대 반개혁’ 전선이 펼쳐질 경우 ‘여당 편이냐, 한국당 편이냐’로 몰릴 수 있다.
안 후보가 표방한 ‘강한 야당’론에 맞춰 문재인 정부와 거리를 둘 경우 ‘반개혁 세력’ 프레임에 갇혀 특히 지역 기반인 호남의 지지율 이탈이 가속화할 수 있다. 민주당과 개혁 공조를 주장해온 호남 의원 등의 반발도 예상된다. 박지원 전 대표는 트위터에 “충격이 이만저만 아니다”라고 했다. 이번 전대를 계기로 표면화된 ‘안철수 비토론’과 맞물릴 경우 당 내홍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반대로 문재인 정부와 보조를 맞출 경우 ‘여당 2중대론’ 프레임에 갇힐 수 있다. ‘호남과 중도’ ‘개혁과 야당 정체성’이라는 딜레마에서 헤어나지 못한 지난 대선의 전례를 반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 ‘국회의 계절’로 불리는 정기국회는 원내 활동에 당력을 쏟는 시기인데, 안 대표가 원외에 있다는 점도 약점으로 거론된다.
안 대표는 당 대표 출마의 변으로 ‘지방선거’ 승리를 들었다. 그러나 국민의당이 지방선거에서 의미있는 성과를 내지 쉽지 않다. 손학규 상임고문은은 이날 전당대회 찬조연설에서 “문재인 정부가 80% 넘는 지지율이 나오고 있는데 (이 지지율은) 내년 상반기까지 갈 수 있다”며 “누가 오늘 당 대표로 선출된다 해도 국민의당이 지방선거에서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고 말했다.
만약 안 대표가 지난 대선에 이어 내년 지방선거에서도 패배할 경우 정치적 생명 자체를 위협받을 공산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