걱정 말아요 그대, 함께 세금 냅시다

안호기 경제에디터
[편집국에서]걱정 말아요 그대, 함께 세금 냅시다

“근로소득세율을 42%까지 올리면, 연봉이 5억원이라면 내야 할 세금이 2억원이 훨씬 넘겠네. 한국도 부자들이 세금 많다고 탈출하는 거 아냐?”

지인 한 분이 물었다. 1970년대 말 테니스 스타 비외른 보리가 스웨덴의 ‘세금 폭탄’을 피해 모나코로 갔다는 옛날 얘기도 나눴다. 정부가 세법을 개정해 내년부터 소득세 최고세율을 42%로 올린다고 하자 걱정이 되는 모양이다.

과거 국세청을 담당해 취재한 경험이 있는 기자는 “그렇지 않다. 이것저것 공제하고 나면 훨씬 덜 낼 것”이라고 막연하게 대답했다. 하지만 많은 시민은 고액 연봉자가 세금 폭탄을 맞게 됐다고 여긴다.

국세청 원천세과 담당자의 도움을 받아 세법이 개정되면 연봉이 5억4000만원인 가상의 인물 ㄱ씨가 근로소득세를 얼마나 내야 할지 따져봤다. ㄱ씨 가족은 아내와 75세 부친, 대학과 고교에 다니는 자녀 등 5명이다.

지인 말대로 5억4000만원에 42% 세금을 부과하면 2억2680만원이다. 그러나 개정 소득세는 7개 세율 구간으로 나뉘어 있다. 전체 소득 중 1200만원까지는 6%만 적용하고, 최고세율인 42%는 5억원 초과분에만 매기는 식이다. ㄱ씨 소득 5억4000만원 중 최고세율을 적용하는 것은 4000만원뿐이다. 이런 식으로 계산하면 소득세는 1억9140만원으로 낮아진다. 연봉 대비 결정세액 비율인 실효세율은 35.4%이다.

그뿐이 아니다. 소득세율은 소득이 아니라 과세표준(과표)에 적용한다. 과표는 소득에서 각종 공제를 한 뒤 산출한다. 근로소득공제는 노동자의 최저 생활을 배려하기 위한 제도이다. 그러나 한국은 친절하게도 모든 노동자에게 공제 혜택을 준다. 지난해 67억원을 받았고, 올해 상반기에만 139억8000만원을 받은 ‘연봉킹’ 삼성전자 권오현 부회장도 근로소득공제를 받는다.

5개 구간인 근로소득공제는 연봉이 500만원 이하라면 70%, 1억원 초과는 1475만원+1억원 초과금액의 2%를 소득에서 빼준다. ㄱ씨의 근로소득공제는 2355만원이다. 여기에다 인적공제, 연금보험료와 건강보험료, 고용보험료, 개인연금, 신용카드 사용액 등 추가 소득공제로 3312만원을 더 제한 과표는 4억8333만원이다. ㄱ씨 과표는 5억원 이하여서 최고세율 적용 대상 소득이 없다. 이런 식으로 하면 내년 산출세액은 1억6793만원(세율 31.1%)으로 더 떨어진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과세 기준이 되는 소득을 줄여주는 것도 모자라 아예 세금을 깎아주는 세액공제라는 게 있다. 모든 노동자에게 제공하는 근로소득세액공제와 함께 ㄱ씨는 자녀와 보험료, 의료비, 교육비, 기부금 등에 대해 1533만원 세금할인 혜택을 받을 수 있다. ㄱ씨가 내야 할 최종 결정세액은 1억5260만원(세율 28.3%)이다.

기존 세법상 ㄱ씨의 소득세 결정세액은 1억4894만원(세율 27.6%)이다. 개정되면 366만원을 더 내야 한다. 5억원 초과분은 없어도 3억원 초과~5억원 이하 구간 세율을 38%에서 40%로 강화한 탓이다. 그럼에도 기존에 냈던 세금보다 2.5% 늘어날 뿐이다. 소득 대비로는 0.7%에 그친다. 세금을 많이 내게 됐다며 세금 폭탄 운운한다면 민망할 것 같다.

ㄱ씨는 의료비 지출이 2000만원이고 소득의 10%를 기부금으로 지출하는 등 비교적 공제를 많이 받을 수 있는 조건으로 설정했다. ㄱ씨는 특별한 사례이고, 대부분 고액 연봉자는 더 많은 세금을 내게 된다고 반박할 수 있을 것이다.

2016년 국세통계연보를 찾아봤다. 근로소득이 1억원 초과인 사람은 모두 36만725명으로 이들의 소득세 실효세율은 18.9%였다. 물론 소득이 높을수록 실효세율은 높아진다. 3억원 초과는 29.7%이니 ㄱ씨 사례와 비슷하다. 10억원을 초과하는 초고액 연봉자도 3분의 1가량인 33.6%만 세금으로 낸다. 놀라운 사실은 연봉 1억원 이상인 1477명은 한국에서 소득세를 한 푼도 내지 않았다는 점이다.

세법이 개정돼도 고액 연봉자가 실제로 더 내는 세금은 많지 않다. 게다가 연봉 5억원 초과 근로소득자는 전체의 0.06%인 1만명이 채 안된다. 정부와 여당은 고소득층을 겨냥한 ‘핀셋 증세’라고 하지만 핀셋보다 바늘에 더 가깝다.

어떤 형태든 증세는 누구에게도 달갑지 않다. 그러나 세금을 더 걷지 않으면 갈수록 늘어나는 복지 수요를 감당할 수 없다. 누군가 세금을 더 내야 한다면 보다 소득이 많은 계층이 먼저 부담하게 하는 건 바람직하다. 다만 지금의 증세는 대상도 금액도 찔끔 시늉만 내려는 것 같다. 기왕 증세를 시작했다면, 부자에 중산층과 서민층도 참여하는 보편적 증세로 나아가는 방안을 고민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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