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소녀담론’ - 미디어 속 소녀들의 이중적인 자화상/ 제작 김유진
‘소녀’하면 어떤 생각들이 떠오를까. 교복 입은 여학생들, 칼군무를 추는 인기 정상의 걸그룹, 촛불 집회를 주도한 청소년의 무리, 질병에 가장 취약한 집단…
흘러간 대중가요의 한 소절, 질병에 가장 취약한 집단…소녀에 관한 연상 작용의 목록은 끝도 없이 이어질 수 있다.
분명한 한 가지는, 오늘 날의 대중문화를 논하면서 소녀들을 빼놓기는 어렵다는 사실이다. 소녀들은 가요·예능·드라마를 섭렵하고 있고, 대중은 이들의 일거수일투족에 열광한다.
“소녀는 스펙터클이다(조혜영 서울여성영화제 프로그래머)” 소녀들은 늘상 정신적 불안, 나쁜 평판, 식이장애, 연애와 섹스 등으로 인한 ‘스캔들’에 휘말린다.
아이유의 미니앨범을 둘러싼 ‘롤리타’ 논란부터, 걸그룹 트와이스의 대만 출신 멤버 쯔위가 방송에서 대만 국기를 들었다는 이유로 사과했던 사건까지.
책 <소녀들>은 동시대 대중문화 속 소녀들을 둘러싸고 벌어진 논쟁들을 해부한다.
이 책의 주된 관심 대상은 미디어를 통해 소녀들이 재현되는 방식. 그 과정에서 21세기 ‘소녀성(girlhood)’이 얼마나 양가적인 모습을 띠고 있는지를 드러내는 것이 저자들의 목표다
아이유와 설리는 대표적인 “분열적 존재”들이다. 완벽히 상품화된 피해자도 그렇다고 온전한 선택권을 지닌 자율적 주체도 아닌, 그 사이 어딘가에 서 있는 셈.
문화평론가 손희정 “그동안 삼촌팬으로 대변되는 대중에게 은근한 성애의 대상이 되어 온 아이유가 제제를 성적 존재로 해석하는 ‘도발’을 행한다”
“설리는 ‘로리콤’을 적극 수용하며 좀더 직접적으로 “불온한 섹슈얼리티”를 드러낸다...가부장제에 순치되지 않는 동시에 도전이 되는 ‘여성괴물성’과 맞닿아있다“
자국의 국기를 들었다는 이유만으로 겁에 질린 표정으로 사과해야만 했던 쯔위.
페미니즘 연구자 류진희 “‘K-엔터테인먼트’ 산업은 민족국가의 틀에 갇힌 상상력과 철저히 한국적인 기획시스템에 의존하고 있으며, 언제라도 쯔위 사건과 같은 초국적인 위기에 휘말릴 수 있다”
큰 인기를 끌었던 아이돌 서바이벌 프로그램 <프로듀스 101>. 소녀들은 스타가 되고자 노력하는 주체이자 ‘꿈을 이루려면 남자 성인 어른으로 통칭되는 다수의 선택권을 받아야만 하는 수동적 존재’로 재현된다.
이외에도 스크린 속 ‘문제적’인 존재로서 소녀, 역사·외교적 네트워크의 의미망에서 재현되는 소녀성까지. 책은 21세기 소녀담론을 날카롭게 파헤친다.
“소녀에 관한 연구는 여성성이 가장 첨예하고 뜨겁게 재구성되고 협상되는 최전선”
한 손으로 매니큐어를 바르며, 다른 손으로는 가운데 손가락을 들어보이는 표지속의 소녀의 모습은 소녀가 어느 한 쪽으로 쉽사리 규정될 수 없는 존재라는 점을 보여주는 듯 하다.
소녀들 저자 조혜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