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동흠의 생활 속 회계이야기]영화 판권, 개봉되자마자 ‘감가상각’](https://img.khan.co.kr/news/2017/09/24/l_2017092501003009800262821.jpg)
스크린 독점과 역사 왜곡 등 많은 논란의 중심에 섰던 영화 <군함도>가 박스오피스를 떠났다. 초특급 배우들의 대거 출연과 화려한 액션 등 엄청난 물량 공세로 큰 기대를 받았지만 당초 알려진 손익분기점 관객수인 800만명을 넘기지는 못했다고 한다. 그 틈에 5·18민주화운동을 주제로 한 영화 <택시운전사>가 잔잔한 감동을 전하며 손익분기점 관객수 450만명을 훌쩍 넘어 1200만명을 돌파하면서 영화 역대 관객수 10위 안에 들어가는 기염을 토했다.
<군함도>와 <택시운전사>의 투자배급사는 각각 CJ E&M과 쇼박스이다. 이 기업들은 영화에 투입한 제작비에 대하여 재무제표에 판권으로 표시하고 무형자산으로 분류한다. 이 판권은 영화가 개봉되어 수익이 발생할 때부터 감가상각으로 비용화한다.
예를 들어 회사가 영화제작에 200억원을 투자했다고 가정해보자. 회사는 200억원을 지급하면서 우선 재무제표에 선급금으로 표시해 놓는다. 영화 제작이 마무리되어 회사가 판권을 확보하면 그때 선급금 200억원은 무형자산으로 대체된다. 선투자금에서 판권으로 형태와 성격이 변경되었으므로 자산의 신분도 바꿔준 것이다.
이렇게 무형자산으로 분류된 판권은 극장 개봉과 동시에 비용화를 시작한다. 극장에 개봉하면서 수익이 발생하기 때문에 수익에 대응되는 비용으로 처리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투자배급사는 이 판권을 몇 년에 거쳐 비용화하는 게 합리적일까?
CJ E&M의 재무제표 주석사항을 보면 계약기간 또는 수익이 실현되는 기간 동안 판권에 대하여 감가상각한다고 되어 있고, 쇼박스의 재무제표 주석사항에는 특별한 언급이 없다. 2016년에 CJ E&M은 1년간 3732억원의 판권을 취득했고, 3724억원의 판권을 상각했다. 취득한 판권 금액과 상응하는 금액이 상각되었는데, 이전부터 이월되는 판권 금액이 큰 관계로 회사의 2016년 말 판권 잔액은 약 3027억원이다.
한편 쇼박스는 502억원의 판권을 취득했는데, 거의 대부분을 상각시켜서 2016년 말에 판권잔액은 불과 155만원만 남았다. 영화 판권으로 수익을 창출하는 기업이 보유한 판권의 가치를 재무제표에 고작 155만원밖에 안 잡았다니 이상하게 보일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나 이는 회계적 관점에서 매우 적절한 처리 방식이다.
쇼박스의 사업보고서를 읽어보면 매출액의 80%는 영화관에서 발생된다고 한다. 수출은 3%에 불과하고, 케이블TV, 공중파, DVD 등에서 나머지 수익을 창출하고 있다. 회사 입장에서는 큰돈을 들여 영화에 투자하고 판권을 취득했지만 매출의 대부분이 극장에서 발생하기 때문에 개봉 기간 동안 판권 비용화도 다 이루어져야 한다고 본 것이다.
앞서 영화에 200억원을 투자하고 취득한 판권을 4년 동안 상각하기로 결정했다면 회사는 매년 판권을 50억원씩 비용화할 것이다. 영화로 4년간 총 250억원의 수익이 발생했는데, 극장에서 개봉한 첫해에 80%인 200억원을 벌어들였고, 다음해부터 3년간 매년 약 17억원씩 벌었다고 가정해보자. 판권은 매년 50억원씩 비용화하는데 2년차부터는 수익이 비용보다 더 작아지는 문제가 발생된다. 극장 개봉이 끝나고 회사의 재무제표에 판권은 50억원 상각 후 150억원이 남아있는데, 그 이후부터 벌어들일 수 있는 돈은 50억원에 불과한 것이다.
자산이란 미래 경제적 효익이 기업에 유입될 것으로 기대되는 경제적 자원이라는 사전적 의미를 생각해볼 때 앞으로 50억원밖에 벌지 못하는 자산의 가치를 150억원씩이나 달아 놓는 것은 문제가 될 수밖에 없다. 쇼박스의 입장에서는 극장에서 대부분의 수익이 창출되고, 이듬해부터는 수익이 소소해서 판권을 큰 금액의 자산으로 인정하기 어려워서 개봉 첫해에 대부분 비용화한 것이다.
이렇게 판권에 대한 투자액 대부분이 개봉 첫해에 비용화되므로 극장에서의 흥행실패는 회사의 손익에 바로 직결될 수밖에 없다. <군함도>라는 대작에 투자했던 CJ E&M도 이로 인해 손익에 대한 우려가 나오고 있다. 그러나 이 기업의 사업보고서를 보면 방송, 음악, 공연, 영화 4개의 사업부문으로 구성되어 있고, 방송사업이 회사 전체 매출액의 75%, 영업이익의 94%를 담당하고 있다. 영화사업은 원래부터 매출과 이익기여도가 작았다.
영화 흥행에 실패했다고 회사가 흔들릴 정도는 아니라는 얘기다. 기대와 다른 결과가 나왔으니 회사 입장에서 받는 충격이야 크겠지만 어서 훌훌 털고 다시 일어나서 더 좋은 영화를 많이 만들어줬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