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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득주도성장론’ 죽이기의 징후들

입력 2017.10.08 14:37

수정 2017.10.08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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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6일 문재인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혁신성장은 소득주도성장 못지않게 중요하다. 소득주도성장이 수요 측면에서 성장을 이끄는 전략이라면, 공급 측면에서 성장을 이끄는 전략이 혁신성장”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이를 두고 분배에만 치중해온 정부가 결국 성장을 중시하기 시작했다는 평가를 내놨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가 “문재인 정부가 이제야 혁신성장의 중요성을 깨달은 것 같다. 뒤늦게 국민의당이 제안한 혁신성장의 길을 따라오는 것 같다”고 논평한 게 대표적이다. 반쪽짜리 성장전략을 펴온 문재인 정부의 변화란 진단도 나왔다.

[아침을 열며]‘소득주도성장론’ 죽이기의 징후들

이런 해석이 객관적인지 따져보기 위해 김현철 청와대 경제보좌관의 언급을 소개한다. 그는 지난 7월26일 종합일간지 경제부장단과 만난 자리에서 “어제(7월25일) 발표된 새 정부의 경제정책 방향을 두고 (일부 언론이) 성장 무시, 분배 위주 식으로 접근한 것은 잘못이다. 60년 만의 경제 패러다임 전환이다보니 의도적으로 소득주도성장과 일자리 창출을 부각시킨 것이다. (9월에) 4차산업혁명위원회가 발족되면 대대적으로 혁신성장 관련 정책을 내놓을 것”이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의 발언은 김 보좌관의 이 같은 말로 미뤄 예고된 수순이었다고 봐야 한다.

그럼에도 문 대통령의 발언을 정부의 정책 방향 변화로 해석한 것은 소득주도성장론에 대한 거부감 때문 아닌가 싶다. 문재인 정부를 분배에만 정신이 팔려 성장은 무시하는 정부로 몰고가려는 의도도 느껴진다.

소득주도성장론을 비판하는 언론 기고문에 종종 낯선 경제학자가 등장한다. 케인스와 동시대 인물인 폴란드 경제학자 미하우 칼레츠키다. 그가 주장했던 임금주도성장론이 소득주도성장론의 바탕이란 것이다. 2010년 한국에서 번역된 칼레츠키의 저서 <자본주의 경제동학 에세이>에는 “임금이 낮아지면 생산은 증가하나, 노동자의 구매력은 상실된다. 재화와 용역은 팔리지 않고 팔리지 않기에 만들지도 않는다. 그리고 경제는 불황에 빠진다. 정부가 고용을 만들어 내지 않으면 경제는 죽는다”는 내용이 있다. 소득주도성장론이 칼레츠키의 생각에 바탕을 두고 있다는 진단에는 그럴 수 있다고 본다.

그러나 칼레츠키를 ‘경제학의 이단’으로 부르며, 비주류 경제학자의 어설픈 이론에 근거해 소득주도성장론을 펴고 있다는 식의 주장은 지나치게 감정적 비판이다. 류동민 충남대 교수는 “일부 보수적 경제학자들이 주장하는 것과는 달리 소득주도성장이 ‘족보 없는’ 이론은 결코 아니다”라고 말한다. 신자유주의에 익숙한 한국의 주류 경제학계에서는 그가 낯선 인물일지 모르나 그의 가르침은 귀 기울일 만한 가치가 충분하다. 칼레츠키를 폄훼하는 분위기는 보유세 강화 반대론자들의 헨리 조지에 대한 평가를 연상시킨다. 현 정부에서 보유세 강화에 찬성하는 인사들이 불로소득에 반대했던 미국 사상가 헨리 조지를 거론하자, 반대하는 쪽에선 “사라진 줄 알았던 헨리 조지의 망령이 다시 등장했다”고 비판했던 것이다.

소득주도성장론은 가계소득을 늘려 소비를 확대하고, 이를 성장으로 연결시키자는 이론이다. 성장의 과실이 골고루 돌아가지 않고 있으며 불평등의 심화가 한국 경제의 가장 큰 구조적 문제라는 데 이견을 제기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불평등의 심화는 성장에도 심각한 걸림돌이 된다. 지난 9년간 보수정부에서 대기업이 잘돼야 국민이 잘산다는 낙수효과는 거짓임이 입증됐다. 지금은 대기업과 중소기업,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 임금격차를 해소하려는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소득주도성장론을 비판하는 쪽에서는 최저임금 인상과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같은 조치가 인건비 상승을 가져오고 수출기업의 경쟁력을 저하한다고 주장한다. 임금이 과도하게 오르면 수출상품의 국제경쟁력 상실로 이어지고 결국 수출 감소, 임금 하락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고 경고한다. 그렇다면 수출주도의 대기업 위주 성장전략을 언제까지 고수하자는 것인지 궁금하다.

기업이 벌어들인 수익에서 가계로 돌아오는 몫이 계속 줄어드는 현실에서 정부가 이를 해결하려 적극 개입하는 건 당연한 책무다. 전직 관료는 “대기업들이 납품업체를 제대로 대우해주고, 중소기업의 임금이 올라가면 일자리 문제도 많이 풀릴 것”이라고 말했다.

성장이나 분배 한쪽만 추구하는 정부는 없다. 시대적 상황에 따라 무게중심이 달라질 뿐이다. 현 단계에서 시급한 과제는 한국 경제의 불평등 구조를 해소하려는 노력이다. 이를 성장 무시로 오인해 소득주도성장론을 죽이려 한다면 한국 경제는 영원히 불균형 성장, 불평등의 늪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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