혐오 확산의 한 축 ‘정치인’
혐오를 확산시키는 한 축에는 ‘혐오의 정치’를 이용하는 정치인들이 있다. 과거 색깔론·지역주의를 이용했던 보수 정치권은 최근 ‘동성애’를 주 먹잇감으로 삼고 있다. 정치인의 혐오 표현은 평범한 개인의 말보다 훨씬 큰 사회적 영향력을 끼치며 소수자의 인권을 후퇴시킨다.
지난달 김이수 헌법재판소장 후보자와 김명수 대법원장 후보자의 인사청문회는 ‘동성애 혐오’ 발언으로 얼룩졌다. “성소수자를 인정하면 동성애뿐만 아니라 근친상간, 소아성애자, 수간까지 비화될 것”(이채익 자유한국당 의원)이라는 발언까지 나왔다.
정치권의 ‘동성애 혐오’는 진보와 보수를 가리지 않는다. 지난 대선에 출마한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는 ‘동성애 반대’를 이슈로 내세우며 보수세력 표를 결집하려 했고 대부분의 후보가 “반대한다”고 대답했다.
선거철만 되면 정치권은 보수 기독교 표를 의식해 성소수자 혐오 발언을 반복했다. 지난해 총선을 앞두고 당시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위원은 “동성애법은 자연과 하나님의 섭리에 어긋나는 법”이라고 말했고,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동성애는 인륜을 배반하는 일”이라고 발언했다. 한채윤 비온뒤무지개재단 이사는 “보수 개신교가 정치세력화와 힘 과시를 위해 동성애를 도구로 활용하고 있다”며 “ ‘빨갱이 혐오’와 ‘동성애 혐오’를 하나로 묶어 ‘종북 게이’라는 말까지 만들었다”고 말했다.
여성 혐오, 이주민 혐오 발언도 공공연히 이뤄진다. 홍준표 후보는 지난 4월 대선 토론에서 설거지 등 가사노동에 대해 “하늘이 정해놓은 것인데 여자가 하는 일을 남자에게 시키면 안된다”고 발언했고, 같은 당 류석춘 혁신위원장은 지난달 “우리 사회는 성평등을 넘어 여성 우위”라며 ‘역차별’론을 주장했다. 지난해 1월 이혜훈 바른정당 의원은 “이슬람이 들어오면 범죄율이 늘어나고, 우리도 이슬람 국가가 될지 모른다”며 노골적인 이주민 혐오 발언을 했다.
‘혐오의 정치’는 세계적 현상이기도 하다. 극우세력은 사람들의 빈곤과 경제 불평등의 책임을 소수자에게 돌리면서 표를 획득하려 한다. 노골적 이민자 배제 정책을 내세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당선, 유럽 선거에서 극우파의 선전이 이를 보여준다.
공적 존재인 정치인이 행하는 혐오는 파급력이 크다.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이 청소년 성소수자를 지지하는 캠페인 ‘잇 겟츠 베터’(It gets better)에서 “여러분의 다름은 긍지와 힘의 원천이 될 것”이라고 격려하는 사회에 사는 것과, 정치인이 “동성애에 반대한다”는 발언을 일삼는 사회에 사는 성소수자가 마주하는 현실은 무척 다를 것이다.
류민희 변호사는 “정치인은 차별을 조장하고 평등을 저해할 수 있는 발언을 지양해야 한다”고 말했다.
‘혐오의 정치’를 넘어 ‘인권의 정치’로 나가기 위해서는 인권과 평등을 요구하는 시민의 목소리가 필요하다. 이나영 중앙대 교수는 “공평하고 평등한 민주주의 사회를 지향하는 시민이라면 이 문제를 어떻게 봐야 하는지 너무 명확하다고 생각한다. 시민들은 그런 태도를 보이는 정치인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을 가지고 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특별취재팀
이영경·김지원·이효상·최미랑·김찬호·배동미·유설희·유수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