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혐오를 유포하나
‘조선족 인신매매단과 실제 대화.’ 국내 유튜브에서 조회수 53만회를 올린 인기 동영상이다. 인육과 장기적출의 범인으로 조선족을 지목한다. 선정성으로 ‘클릭수 몰이’에 성공했지만 출처는 불분명하다. 규제를 받지 않는 ‘패드립’ 인터넷 BJ들은 혐오를 팔아 돈을 번다. ‘엠생’(네 에미 창녀인 인생) 같은 상대를 비하하는 표현들이 경쟁적으로 등장하고 게임 채팅창 등을 거쳐 확산된다. 국내 이용자 1600만명인 페이스북에도 이른바 유머페이지들이 이주민, 성소수자, 여성 등을 웃음거리로 도마에 올려 ‘좋아요’를 유도하며 광고수익을 올린다. 이처럼 국민 10명 중 9명이 이용하는 온라인에서 번식한 혐오는 TV 방송을 비롯한 기성 미디어가 자정하지 못하고 재생산하면서 우리 사회에 광범위하게 퍼져나간다. 혐오의 농도는 점점 높아지고 약자가 숨쉬기 힘든 사회가 된다.
■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혐오는 싹튼다
혐오는 하늘에서 뚝 떨어지지 않는다. 아이들은 어린 시절부터 어른들이 만든 만화와 동화를 통해 비뚤어진 세계관에 노출되고 고정관념을 형성한다. <뽀롱뽀롱 뽀로로> <로보카 폴리> 등 아이들에게 인기 있는 애니메이션 캐릭터를 분석했더니 사건 해결을 주도하는 것은 남성이고 여성 캐릭터는 소수에다 보조적 역할에 그친다는 비판이 제기된 바 있다. 미취학 아동들에게 인기 있는 유튜브 동영상에도 “‘둥둥둥’ 살이 찐다” 등 외모비하적인 진행자의 발언이 여과 없이 나온다. 장애아동도 “독립적인 주체가 아니라 부끄럽지만 사랑하는 존재이자 슈퍼맨처럼 지켜줘야 하는 대상으로 묘사하는 경우가 많다”고 김수연 경인교대 교수는 지적한다.
정민자 울산대 아동가정복지학과 교수는 “편파적 고정관념에 매여 무비판적으로 자란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동성애자 등 특정 소수자 집단에 대한 혐오감을 갖게 된다”고 말한다. ‘다름’을 ‘다름’으로 인정하는 법을 배우지 못하는 것이다. 차별적 사고가 굳어지면 바로잡기가 쉽지 않다. 김지은 아동문학평론가는 “소수자를 대상화하고 폄훼하면서 낡은 가치를 미풍양속으로 포장하는 아동서적들이 범람하고 있다”며 “본래 편견, 고정관념이 있으면 책을 통해 재조명해야 하는데 아이들은 오히려 차별적인 매체를 통해 고정관념이 강화되는 경험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교육 현장에서 인권 교육이 필요한 이유다.
■ 비판 없이 굴러가는 혐오의 쳇바퀴
시민이 일상적으로 노출되는 각종 문화상품들도 종종 혐오를 확산한다. ‘김치녀’라는 온라인상의 혐오는 오프라인의 광고에서 “지루했던 남친 군대로, 나는 어장관리 홍대로”(KB국민카드), 남성에게 모든 짐을 다 떠맡기면서 “다 맡겨도 피임까지 맡기진 마세요”(보건복지부)라고 말하는 여성의 모습으로 나타났다.
지상파·종편의 TV 프로그램 문제도 가볍지 않다. 2016년 서울YWCA 조사를 보면 22개 드라마를 모니터링한 결과 성차별적 내용은 108건이었고, 성평등적 내용은 42건에 그쳤다. <남남북녀>는 탈북 여성을 성적 대상화해 논란이 됐고, <아는 형님>은 남성 진행자가 여성 출연자를 성희롱하고 성적 대상화하는 내용을 웃음으로 포장해 논란이 됐다. 이주민을 다룬 <러브인아시아> <글로벌 아빠 찾아 삼만리>는 이주민들을 시혜의 대상이자 수동적인 대상으로 그릴 뿐 ‘나와 동등한 시민’으로 대하지 않는다는 비판을 받았다. <웃찾사>는 지난 4월 흑인을 비하한 개그코너로 해외 누리꾼들에게까지 논란이 됐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 ‘방송심의에 관한 규정’이 있고 방송사 자체 인권 가이드라인도 있지만 온전히 기능하지 못하고 있다.
이 같은 방송 속 차별과 혐오는 온라인에서 ‘짤방’이나 동영상으로 적극적으로 공유되면서 기존 혐오 프레임을 강화한다. 확산성·지속성 측면에서 말과 출판물로 하는 혐오보다 훨씬 강력하다. 지난달 한 종편에서 여성에게 편중된 명절노동의 대가로 290만원을 매긴 여성들의 이야기가 방송된 직후,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뻔뻔한 여자들’이라는 비난과 함께 화면 캡처 사진이 급속도로 퍼져나갔다. “결혼할 때 남자가 최소 3억 집은 해와야 한다” 등의 내용을 담은 방송 화면 캡처 ‘짤방’은 여성혐오를 부추기는 선전물로 장기간 반복적으로 유통된다. 김수아 서울대 기초교육원 교수는 “혐오의 담론은 주로 TV 토크쇼 캡처 등의 시각자료를 통해 ‘이런 여자들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구체적인 증거를 얻고 정당화된다”고 분석했다.
혐오 콘텐츠가 늘어나고, 더 많이 공유되고, 더 많이 접하게 되면 혐오는 어느새 ‘해도 되는 것’으로 합리화된다. ‘맘충’을 혐오하는 이유는 “파렴치하고 안하무인이기 때문”이고, ‘파퀴’(파키스탄인을 비하하는 말)를 혐오하는 이유는 “그들이 우리의 일자리를 빼앗고 강력범죄를 저지르기 때문”이라는 식이다. “임신 5개월인데 지난달까지 생리휴가를 쓴 여직원”처럼 출처나 진위를 가릴 수 없는 각종 ‘썰’도 혐오의 땔감이 된다. “온라인 커뮤니티 활동을 통해 혐오를 정상적인 것으로 생각하고 더 극단적인 생각에 이끌리는 경우가 많다”고 국가인권위원회는 분석한다. 이 같은 현실은 약자들을 배제한다. 인권위가 여성·성적소수자·장애인·이주민 1014명에게 물은 2016년 연구에서 오프라인 혐오 경험 이후 ‘자유롭게 글을 쓰거나 말을 하기 어려워졌다’는 응답이 여성 66.8%를 비롯해 절반 이상이었다. 성적소수자 10명 중 9명은 증오범죄의 대상이 될까 두려워하고 있었다.
홍성일 서강대 언론문화연구소 연구원은 “제도권 미디어가 혐오, 배제에 대한 최소한의 사회적 기준을 준수했다면 이렇게 인터넷 공간에서 혐오와 배제가 넘쳐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비판한다.
인터넷 공간은 사용자들의 선의와 자율성에 기대며 별다른 규제 없이 성장해온 터라 오늘날 ‘혐오의 물결’ 앞에 무방비 상태다. 방송통신위원회는 인터넷 방송에 대해서는 제재권이 없고 유튜브에서도 1회 경고 시 3개월 정지, 3회 시 채널 폐쇄 등 자체적 규제를 하고 있지만, 채널이 폐쇄돼도 새 계정을 만들어 그대로 활동하는 경우가 많아 실효성이 없다. 페이스북, 텀블러처럼 해외에 본사를 둔 소셜미디어 기업에 대한 대응도 미약하다. 독일 정부가 페이스북과 트위터에 혐오 게시물이나 가짜뉴스를 24시간 내 삭제하지 않으면 5000만유로(약 675억원) 벌금을 부과하는 계획을 추진 중인 것과 대조된다.
오히려 정부는 인터넷상 혐오 표현을 제재하기는커녕 정치적으로 악용해 부추기기도 했다. MB 정부 시절 국가정보원이 극우사이트 ‘일간베스트’를 지원하며 특정 지역과 인물을 비하하면서 정치인과 시민들을 폄훼하고 분열시킨 정황이 국정원 개혁위 조사 결과 밝혀지고 있다.
■특별취재팀
이영경·김지원·이효상·최미랑·김찬호·배동미·유설희·유수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