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사는 언제까지 집장사만 할 텐가

안호기 경제에디터
[편집국에서]건설사는 언제까지 집장사만 할 텐가

지난달 분양한 서울 서초구 잠원동 신반포 센트럴자이 84C형(33평형) 분양가는 15억5660만원이다. 입주자 모집공고문을 보면 대지비 9억9622만원, 건축비 5억6038만원이다. 비슷한 시기 서울 구로구 항동에서 분양한 한양수자인 와이즈파크 84C형 분양가는 4억7300만원이다. 신반포 센트럴자이 건축비보다도 낮다. 건축비는 1억9724만원으로 신반포 센트럴자이의 3분의 1 수준이다.

강남 3구 재건축 아파트 분양가가 천정부지로 치솟는 건 땅값 때문이라고 치더라도, 건축비가 어떻게 이런 격차를 보일 수 있을까. 센트럴자이를 분양한 GS건설 관계자는 “구조와 평면, 마감에 따라 건축비가 달라진다”고 설명했다. 지하 시설을 더 많이 넣거나, 주차장 면적을 늘리는 등 구조를 복잡하게 하면 건축비가 올라간다. 마감재를 값비싼 외국산으로 치장하거나 평면을 곡선으로 시공해도 건축비 상승 요인이 된다. 공사 도중 자재 수급 상황을 일컫는 ‘딜리버리’도 건축비 변동에 영향을 미친다고 했다.

와이즈파크 시공사인 한양건설 관계자도 설계와 마감에 따라 건축비가 달라진다는 주장에 동의했다. 다만 “단순히 그것만으로 설명할 수는 없다. 건축비는 모든 건설사의 영업기밀”이라는 단서를 달았다.

국토교통부가 물가상승을 감안해 매년 두 차례 고시하는 기본형건축비라는 게 있다. 지난달 고시한 건축비는 공급면적 3.3㎡당 610만7000원이다. 하지만 분양가상한제 아파트에 적용하는 참고사항일 뿐이다. 센트럴자이 3.3㎡당 건축비는 1597만원으로 기본형의 3배에 가깝다.

제3의 건설업계 관계자는 “아무리 차별화한다고 해도 건축비가 3배 가까이 차이 난다는 건 수긍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입주자 모집공고문에 나와 있는 건축비는 별 의미가 없다. 건축비를 결정하는 것은 주변 시세이다. 건설사나 재건축조합은 주변 아파트값보다 지나치게 높지 않은 수준에서 분양가를 책정한다. 대지비는 움직일 수 없는 고정비용이다. 건축비를 고무줄처럼 늘려 이미 정한 분양가에 꿰맞추는 식이다.

건축비에는 실제 공사와 자재구매 이외에 다양한 부대비용과 이익이 포함돼 있다. 최근 가구당 이사비 7000만원 현금 무상지원, 최고급 호텔 접대 등으로 논란을 샀던 반포주공 1단지 재건축 아파트가 대표적 사례이다. 일부 재건축조합은 시공사에 레미콘은 ㄱ사, 창호는 ㄴ사 등으로 하청사를 지정하기도 한다. 시공사가 직접 할 때보다 건축비가 늘어나는 게 당연하다. 시공사 선정 전부터 조합과 하청사가 유착했다면 가능한 일이다.

시공권을 따내기 위해 ‘돈 잔치’를 벌여도 건설사는 이익을 남긴다. 건축비를 대거 부풀려 고분양가를 책정한 탓이다. 그래서 건설사는 앞다퉈 주택사업에 뛰어든다. 과거 정부는 부동산경기를 활성화해 경기를 살리겠다고 했다. 규제를 풀어 ‘빚내서 집 사라’며 투기꾼 등을 떠밀었다. 주택시장은 호황을 구가했고 건설사에 막대한 이익을 안겼다.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은 최근 건설업계 대표들과 만난 자리에서 “국내 초호화 아파트 재건축 하는데 쏟는 열정을 갖고 해외시장에서 뛰면 훨씬 많은 국부를 창출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비판했다.

한때 국내 건설사들이 해외건설에 열을 올린 적이 있었다. 그러나 국내 건설사끼리 제살 깎아먹기식 저가입찰 경쟁을 벌였고 결과는 참담했다. 고스란히 눈덩이 손실을 떠안았고 속속 해외에서 철수했다. 이후 건설사의 해외 손실을 메꿔준 것은 ‘땅 짚고 헤엄치기식’ 집장사 기반을 마련해준 정부였다. 대형 건설사의 빌딩·주택사업 매출 비중은 최근 50%를 넘어섰다. 주택사업 적정 비중 20%를 크게 웃돌고 있다.

고분양가를 초래한 주범인 정부는 말로만 해외시장 진출을 주문할 게 아니다. 건설사가 국내 재건축 아파트 수주에만 매달리지 않도록 제도를 정비해야 한다. 고분양가에 낀 건축비 거품을 걷어내는 게 시급하다. 과도한 분양가는 주변 아파트값까지 끌어올려 부동산 시장을 불안하게 만든다. 그 부담은 고스란히 실수요자에게 돌아가 서민에게 박탈감만 준다.

정부가 다음달부터 분양가상한제 적용 대상을 확대하기로 했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기본형건축비 이외에 건축비를 실질적으로 규제할 새 기준을 만들어야 한다. 위반에 대한 지속적이고 강력한 단속과 처벌도 필요하다. 그래야 집장사에만 몰두하는 국내 건설사가 다른 수익원을 찾아 나설 기미라도 보일 것이다. 김현미 장관은 취임사에서 “아파트는 ‘돈’이 아니라 ‘집’”이라고 했다. 건설사와 투기꾼의 돈으로 변질한 아파트를 시민의 집으로 돌려놓을 책임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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