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에 영화관이 10개인 나라가 영화로 주목받는 이유
최근 세계 영화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나라 중 하나는 조지아다. ‘조지아 뉴웨이브’ 라는 용어까지 생겼다.
2010년 이후 거의 매년 굵직한 국제 영화제에 작품이 소개되고 상을 받는다.
조지아의 연간 영화제작편수는 고작 20여 편, 인구 400만 명에 전국의 영화관은 10개, 영화관객은 100만 뿐, 조지아 영화의 힘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캅카스(코카서스) 산맥에 자리 잡은 조지아는 문명발달사를 이끈 주도세력의 각축장이었고 이 땅을 지켜낸 사람들의 열정은 뜨거운 예술혼으로 표출됐다. 독창적인 문화를 발달시켰던 이들의 예술혼이 19세기 말에 이르러 가닿은 곳이 영화다.
최초의 영화가 탄생한 바로 이듬해인 1986년, 조지아에서도 최초의 영화 상영이 이뤄졌다. 1916년에는 최초의 장편 극영화가 제작·, 상영됐다. 영하대국 미국이 최초의 장편영화 국가의 탄생을 제작한 것이 1915년이었다.
무엇보다 조지아가 겪은 시련의 역사는 아이러니하게도 영화의 토양이 됐다. 소련의 합병은 축복이면서 시련이었다.
영화 제작은 활성화됐지만, 체제 선전에 동원돼야 했다. 정권의 검열을 은유와 상징으로 돌파했다. 구소련의 영화 거장으로 알려진 파라자노프, 이오셀리아니 등이 모두 조지아 출신이다
1991년 소련에서 독립한 뒤 전쟁이 이어졌다. 많은 남성들이 죽고 다친 빈 자리를 여성들이 채워야 했다.
많은 여성들이 해외에 나가 일하며 고국의 가족을 먹여 살렸다.
주목받는 영화 감독 중에서도 여성이 많다. 2014년 부산국제영화제는‘조지아 여성감독의 힘’이라는 제목의 특별전을 열기도 했다
“새로운 일에 빠르게 적응하는 것도 여자들이었어요. 다들 일도, 공부도 악착같이 했지요. 유학시절 교수가 ‘불행한 사람이 더 좋은 영화를 만든다’고 했는데, 전쟁이라는 드라마틱한 경험을 했다는 것은 불행인 동시에 예술인으로서 특권이 될 수도 있었던 것 같아요.”
- 티나틴 구르치아니 감독(2013년 선댄스영화제 다큐멘터리 대상)
조지아에서도 예술은 고달픈 일이다. 조지아 뉴웨이브 대표주자의 하나인 오바슈빌리 감독은 레스토랑을 운영한다.
영화가 성공하고 이름이 알려져도 영화감독 수입만으로는 가족을 먹여 살릴 수 없다.
영화제작비를 마련하는 것도 하늘의 별따기다.조지아 국립영화센터(GNFC) 외에는 제작비를 지원하는 곳이 없다.
원로부터 갓 데뷔를 준비하는 신인까지 모두 자신의 시나리오를 들고 공모 경쟁에 뛰어든다.
“작년에 가장 성공한 조지아 영화 수익이 20만달러밖에 안돼요. 산업으로 크기 힘든 구조인 거죠. 해외영화제에서 상 받는 것도 좋지만 조지아 영화계 전체로 보면 국내에서 흥행하는 영화가 나오는 게 훨씬 중요하다고 봅니다.”
- 쇼타 루스타벨리 국립연극·영화대학교 영화학과장 오타르 리타니슈빌리 교수
그럼에도 쇼타 루스타벨리 국립 연극·영화학교에서는 오늘도 젊은이들이 영화에 대한 열정을 불태운다.
“조지아는 무에서 유를 만든 나라죠. 이곳에서 영화를 만든다는 것, 그리고 지금까지 조지아 영화가 성취했던 것은 기적 같은 일입니다.” 석사과정에 재학 중인 미란다 나미셰슈빌리(24)
“조지아에서 예술인은 정말 배고픈 직업이에요. 어릴 때부터 보아왔는데도 그걸 계속 이어가겠다는 마음이 드는 건 거부할 수 없는 남다른 매력이 있기 때문이죠. 우리가 처한 문제, 우리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더 많이, 효과적으로 알리는 데도 영화만 한 게 없다고 생각해요.” 이리나 겔라슈빌리(25)
▶[바로가기] [문화, 더 나은 세상을 상상하다](3)돈 없어 반지 팔고, 굶으며 촬영해도 “영화는…그냥 공기 같은 것”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code=960100&artid=201710152227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