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사 논문에서 찾아낸 ‘감독 문소리’의 고민
영화 <여배우는 오늘도>가 개봉 한 달 만에 누적관객 1만6000명을 넘어서며 꾸준한 지지를 얻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에서 여배우로 산다는 것’에 대해 그려낸 영화는 평단에서도 좋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잔잔한 흥행을 몰고 온 요인은 ‘공감’에 있었습니다. 여성이 활약할만한 영화가 많이 제작되지 않은 현실을 안타까워하는 주인공 여배우의 입장은 ‘메이저’가 되지 못하는 수많은 직장인들의 처지와도 공명했습니다.
문소리가 2015년 8월 중앙대 첨단영상대학원 논문으로 제출한 ‘단편영화 <여배우는 오늘도>의 제작보고서’에는 감독 문소리의 고민과 연출 의도가 고스란히 담겨있습니다. 논문의 일부를 발췌해 전해드립니다.
<여배우는 오늘도>는 나 자신을 다각도로 반영했음에도 허구의 이야기이며 픽션이다. 다큐멘터리적인 방법을 통해 나를 ‘객관화’시키고 나와 관련된 사건들을 ‘재구성’하여 이를 통해 반영된 나 자신을 관객과 함께 재인식하는 작업이었다.
엄마이자 딸이자 아내이자 며느리이자 여배우인 나의 삶,일도 가정도 어느 것 하나 소홀할 수 없는 요즘 여성들의 삶과 매우 유사한 듯 또 다른 듯, 특별하기도 또는 매우 평범하기도 한 나의 보통의 시간들을 담아 영화를 만들어본다면 어떨까…
시나리오 작업은 총 9고까지 진행됐습니다. 2고에서 첫씬과 마지막씬이 바뀌었고 원점에서 다시 출발해보자는 심정으로 3고를 수정했습니다. 4고에서는 다시 2고의 형식으로 되돌아가기도 했습니다. 이때 치과 장면을 삽입했다고 합니다.
조금 우스꽝스러운 장면을 통해 ‘삶은 힘들기만 한 것이 아니라, 우습기도 하다’라는 것을 아이러니하게 보여주고자 했다.
촬영감독과 스토리보드 작가는 문소리의 단독 장면에서 미장센적으로 힘을 주거나 그림을 만들어보자고 제안했으나, 감독 문소리는 오히려 자신의 단독숏은 뒷모습을 찍거나, 넓게 잡거나, 아예 삭제하기로 결정했다고 합니다.
우디 앨런은 “감독할 때, 나는 나를 크게 클로즈업하고 싶은 욕망을 잠재워야 했다”고 말한다. 연출자와 배우를 겸해야 하는 본인에게 매우 인상적이었고 작품 안에서 나르시시즘적 요소를 배제하기 위해 노력하게 되었다.
영화 속 배우 문소리는 선글라스를 써야 마음이 놓입니다. 그것은 스타의식이 아니라, 배우라는 기존의 관념들이 만들어내는 부담감으로 주변의 시선을 의식하며 살아가야 하는 그의 상태를 보여주는 것이었습니다
<여배우는 오늘도>의 촬영 콘셉트는 주인공 소리가 느끼는 ‘외로움’에 있다. 여배우로서 화려한 삶을 살 것만 같은 소리는 여느 누구와도 크게 다르지 않은 삶의 무게들을 견디면서 고군분투하고 있다.
큰 움직임 없이 긴 호흡으로 소리를 지켜보는 듯한 느낌의 영상으로 담아내고자 조명을 사용한 과도한 콘트라스트는 배제하고 최대한 자연광을 활용하는 쪽으로 조명을 설계했다.
문소리의 남편으로 출연하는 영화감독 역은 실제 남편인 장준환 감독이 맡았습니다. 원래는 장현성을 일순위에 뒀으나 그의 스케줄 문제로 실패한 ‘덕분’입니다.
(남편) 역할이 갖고 있는 특유의 느릿함과 부드러움, 따뜻함을 소화할 수 있을 것 같은 배우를 찾기가 매우 어려웠다. 결국 촬영에 임박해서야 실제 남편인 장준환 감독에게 부탁을 하였고 어렵사리 확답을 들을 수 있었다.
본인 삶의 여러 부분들을 재료로 삼아 영화를 만들었고, 이 삶은 여배우의 삶이기에 조금은 특별한 소재로 여겨질 수도 있지만, 이 영화는 매우 보편적인 정서를 담아내고자 했다.
그 과정에서 내 삶과 내 감정이지만 그것에 매몰되지 않아야 했고, 좀 더 극적인 이야기로 꾸미는 것도 극도로 경계해야 했다.
많은 관객들이 여배우의 문소리의 실제 삶을 엿보는 듯한 다큐멘터리 느낌으로 감상을 시작했지만, 그들과 특별히 다르지 않은 삶을 살아가는 한 여자의 심정에 동감하며 극장을 나서는 것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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