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에서]공론 그 이후](https://img.khan.co.kr/news/2017/10/19/l_2017102001001875500159361.jpg)
정치는 철학일 수 있지만, 그 행위는 과학이어야 한다. 철학은 영감을 주지만, 과학은 해법을 추구한다. 국가 정책은 이성과 냉철한 현실 판단 위에 설 수밖에 없다. ‘실사구시’에 기반하지 않은 정치 행위는 주장의 옮김일 뿐이다. 몽상으로 끝난 박근혜 정부의 ‘북한 붕괴론’처럼 말이다. 철학과 과학의 조응은 다양한 이해관계에 포위된 정치가 가치 있게 생존하고 작동할 수 있는 방식이다.
선거 공간에선 주장이 선명해야 한다. 그런 경쟁을 통해 우리 사회 생각들이 부딪치고 모여 길을 만든다.
선거 후 국정은 다르다. 정치적 주장과 가치는 ‘당대 현실의 동의’라는 조건에 맞닥뜨리기 때문이다. 옳고 그름을 떠나 노무현 정부의 행정수도, 이명박 정부의 한반도 대운하가 그랬다. 문제 있는 정책은 당연히 제동이 걸려야 하고, 옳은 길이라도 당대 국민의 동의를 얻지 못하면 할 수가 없다. 다만 후자는 오래지않아 가치를 증명하기 마련이다.
신고리 5·6호기 공론화위원회가 장정(長征)을 마치고 오늘 정부에 결론을 전달한다. 초유의 실험에 나섰던 그들로선 백척간두에 섰던 89일이었다. 이제 어느 한쪽은 질풍노도와 같은 충격과 분노에 휩싸일 것이다. 격노한 감정이 여과 없이 쏟아지고, 정부를 향한 몸짓은 더할 수 없이 거칠어질 것이다.
‘공론’이 생경하지만 가히 ‘촛불정부’의 국정 방법론이라 할 만하다. 국가 중대 정책 결정에 시민들 뜻을 담는 직접민주주의 성격 때문이다. 시민 정치참여의 이상으로 제시한 위르겐 하버마스의 ‘공론장’과 ‘숙의민주주의’를 교과서 밖으로 끌어낸 고상한 의미도 거론된다. 문재인 정부 말처럼 향후 갈등 해결에 모델이 될 것이란 기대감도 있다. 이 경우 현재 불완전한 대의민주주의를 보완하며 작동케 하는 돌파구로서 의미도 생긴다.
문제는 국정의 책임은 그것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선택은 차라리 쉽다. 진짜 책임의 문은 그 이후 열린다. 새로운 민주주의와 정책 방법론의 성패는 공론을 설득해 착근시키는 데 달렸다. 이 혁명적인 실험을 성공시킬 몫은 문재인 정부에 있다는 의미다.
문재인 정부는 앞에 놓인 수많은 지뢰들 중 이제 첫 뇌관을 받아들었다. 물론 우리 사회 갈등 뇌관들 해체 책임이 정부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시민부터 국회, 정부까지 모두 공유한다. 하지만 모든 변화의 제1주체는 권력을 담지한 이들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그들에겐 더 높은 책임과 관용이 요구된다.
건설 중단이면 약속을 지키고 진보 지지층과의 불화는 면할 수 있다. 하지만 나머지 국민의 열패감을 싸안을 책임이 남는다. 보수 진영과 언론은 나라가 결딴난 듯 할 것이다. 신문 1면에 한국 과학의 ‘조문(弔文)’을 띄우며 짐짓 통곡할지도 모른다. 소송도 거론한다. 열패감이 클수록 반발도 그악할 것이다.
건설 재개일 경우 문재인 정부에는 재앙적 상황일 수 있다. 과거 노무현 정부가 이라크 파병으로 겪었던 낭패와 몸살을 되풀이할 공산이 크다. 진보 진영은 맹렬히 비난하고, 지지층은 수군거릴 것이다. ‘원전 마피아와 보수에 굴복했다’는 비난과 ‘사기 정권’이란 격한 반발에 맞닥뜨릴지 모른다.
문재인 정부가 어느 쪽을 선택하든, 설사 그것이 위임한 선택일지라도 실력을 증명할 시점이다. 성의를 다해 설명하고 설득을 얻어내야 한다. 서울대 이준웅 교수는 통화에서 “공약인 만큼 현 정부가 밀어붙여도 되는데, 반대편 의견도 충분히 수렴해 진행하는 건 바람직하다. 공론을 잘해놓고 사후관리를 못해 갈등에 휩싸인다면 골 넣고 망가지는 일이 되는 것”이라고 했다. 공론은 문재인 정부가 자신의 철학을 데이터라는 과학으로 조응시켜 가는 과정인 셈이다.
건설 중단이면 불안을 다독일 방안을 찾아야 한다. 전력수급과 산업을 위한 대안과 ‘탈원전’ 미래에 대한 확신이 뿌리내릴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한국 과학이 또 다른 장을 여는 도전에 나서는 길임도 설득해야 한다.
재개라면 진솔한 사과로 시작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5·6호기 건설이 탈원전 장정에서 결코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는 것이 아님을,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돌 듯’ 역사는 ‘탈원전’으로 전진하고 있음을 믿게 해야 한다.
공론 민주주의 완성이 정부 몫일 수만은 없다. 민주사회 구성원으로 나의 주장은 이성과 과학의 거울 앞에서 당당할 수 있을까. 그것을 확인하려는 시민이 많아질수록 숙의민주주의의 완성은 깊어질 것이다. 정부는 겸손하지만 실력 있는 설득을, 시민은 그들과 같은 시민참여단이 ‘토론과 상식’으로 만들어낸 공론을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이처럼 신고리 원전 공론과 이를 성공시키려는 문재인 정부의 행동은 ‘나라다운 나라’의 정치를 확인해 가는 과정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