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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룬 것과 이뤄야 할 것

입력 2017.10.25 11:33

수정 2017.10.25 2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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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고 ㅣ 신진욱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

한 사회의 역사에 견고한 질서가 지속되는 긴 시간이 있다면, 그 질서가 잉태한 변화에의 열망이 분출되는 격동의 순간이 있다. 지난 가을과 겨울, 수백만 시민의 촛불집회가 바로 그런 순간이었다. 변화를 되돌리려는 역진의 힘과 그것을 완성하려는 전진의 힘의 경합은 계속된다. 그 변화가 무엇을 이뤘는지에 대한 역사적 자의식을 가진 집단이 미래를 규정하는 힘을 가질 것이다.

촛불시민들이 한국 현대사에 남긴 업적은 무엇보다 1987년 이후 시작된 한국의 민주주의를 질적으로 한 단계 끌어올렸다는 것이다. 87년 항쟁에서 ‘대통령 직선제’라는 구호의 정신은 선거·경쟁 민주주의였다. 국민의 손으로 대표자를 뽑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대표자가 좋은 정치를 한다는 보장은 없다. 그것을 보완하는 정신으로 등장한 것이 참여민주주의다. 시민이 정치의 감시자가 되어 대의정치를 완전하게 만들려는 노력이 참여정부 시기까지 계속됐다.

이명박, 박근혜 정권은 이 모든 민주주의의 성취를 퇴행시켰다. 그러나 촛불시민들은 놀랍게도 단지 민주주의를 이전 단계로 복구하는 데 멈추지 않고 큰 한 걸음을 더 내디뎠다. 그것의 정신은 바로 헌법민주주의, 즉 다수가 선출한 권력일지라도 법 위에 있을 수 없으며 국민의 기본권을 비롯한 헌법적 가치를 훼손해선 안된다는 것이다. 한국 민주주의는 일보후퇴 후 이보전진을 내디디며 점진적으로 민주적 경쟁의 원리를 시민사회와 헌법질서에 착근시켜가고 있다.

이번 촛불집회의 또 하나의 역사적 의미는 대한민국 역사에 ‘피플 파워’의 전통을 재확인했다는 데 있다. 한국의 시민들은 높은 이상과 용기 있는 행동으로 여러 차례 부패하고 독재적인 통치자를 권좌에서 끌어내렸다. 1960년의 4·19혁명과 1987년의 6·10항쟁의 집단적 기억을 가진 시민들은 2016년 촛불집회를 통해 다시 한번 민주적 시민사회의 위력을 과시했다. 약 30년 주기로 일어난 이 시민승리의 경험은 앞으로 시민들과 권력자들의 역사적 상상력에 긴 흔적을 남길 것이다.

나아가 2000년대에 반복해서 일어나고 있는 촛불집회는 대의민주주의, 정당민주주의 발전에 강력한 동력을 제공했다. 촛불집회는 일차적으로 직접민주주의의 열망을 반영했다. 그것은 시민들이 정기적인 선거만으로 만족하지 않으며 정부와 의회에 직접 영향을 미치고 싶어 한다는 것, 또한 제도정치가 나쁜 권력을 견제하고 처벌하지 못할 땐 시민들이 행동에 나설 것임을 보여줬다.

하지만 이런 직접민주주의적 욕구가 정당정치와 대립된다는 관점은 타당하지 않다. 촛불집회 참여자들은 정당정치에 적대적이거나 무관심하지 않다. 그들은 비참여자들보다 투표에 더 활발히 참여했고 정치에 관한 정보를 풍부히 갖고 있다. 또한 시민들은 대의정치를 대신하려 한 적이 없다. 촛불집회는 시민들이 국가와 정당에 모든 걸 맡기지 않고 직접 행동으로 ‘영향의 정치’를 행사하는 효과적 방법으로 등장했다. 나아가 촛불집회는 정당정치를 약화시킨 것이 아니라 나쁜 정치를 징벌하고 더 나은 정치를 요구했다. 한국 정당정치의 발전은 시민의 힘 덕분이다.

그러한 시민행동이 민주주의를 생기 있게 만든다는 것을 보지 못하고, 다만 정당정치의 불완전성을 반증할 뿐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정당정치에 대한 환상의 산물이다. 유럽에서도 이미 1970년대부터 활동적 시민사회를 통한 ‘민주주의의 민주화’가 핵심 과제로 대두했다. 그 이유는 정부와 정당이 사회의 문제와 욕구를 감지하고 반영하는 데에 큰 한계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늘날 서구 민주주의는 위기에 처해 있다. 기성정당에 대한 불신은 깊어 가는데 시민들은 건강한 정치를 위한 행동 대신에 우익 선동가들에게 표를 던지고 있다.

미국, 프랑스, 독일, 스웨덴 등 주요 서구 국가에서 극우의 정치적 성공이 이어지고 있는 세계적 흐름 속에서, 촛불집회 이후 정권교체를 이룬 한국은 시민사회의 민주적 활기가 살아있는 드문 예외 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미국의 뉴욕타임스와 워싱턴포스트, 독일의 디 차이트, 프랑스의 르몽드 등의 매체는 한국을 ‘민주주의의 모범’으로 명명하며 상세히 보도해왔는데, 이처럼 서구의 주류 언론이 비서구사회를 민주주의의 모범으로 삼아 학습하려 하는 것은 드문 일이다.

그렇다면 한국은 이제 영구한 민주주의의 모범이 되었는가? 불행히도 역사의 진보는 그렇게 직선적으로 이뤄지지 않는다. 사회가 궁극적으로 더 많은 민주주의와 자유, 인권으로 진보해가리라는 거대서사는 전혀 역사의 현실에 부합하지 않는다. 영원할 것같이 암울한 시간에도 그 끝이 있듯이, 역으로 모든 진보는 언제나 붕괴와 퇴행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그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약한 고리를 인지하고 행동할 때에만 이미 성취한 진보를 지킬 수 있다.

참여정부 후반기만 하더라도 한국은 성공적으로 민주주의를 공고화한 사례로 꼽혀왔다. 그러나 그것은 정권교체 후 불과 몇 년 만에 무너져 내렸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지난 10년 동안 한국의 민주주의가 얼마나 취약한지가 분명해졌다. 돈과 권력으로 군림해 온 독재적이고 부패한 세력이 아직까지 한국 사회의 도처에 힘을 갖고 있다. 촛불로 새 정권을 창출했지만 5년의 임기는 어쩌면 수면 위에 솟은 빙산의 일각에 잠시 햇살이 머물러 빛나는 시간일 수 있다. 정치, 경제, 언론, 교육, 종교 등 모든 부문에서 전방위적인 변화의 노력이 계속되어야 한다.

[촛불, 그후 1년]이룬 것과 이뤄야 할 것

그러한 변화를 위해, 역진 불가능한 진보를 위해, ‘사람이 먼저다’라는 철학으로 세운 문재인 정부가 해야 할 중요한 일은 바로 사람을 세우는 일이다. 사람들이 일단 한 번 경험하면 정권이 바뀌어도 되돌리기 힘든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자유, 존엄, 권리다. 타인을 지배하려는 자가 두려워하는 것은 타인이 자유로워지는 것, 자신을 귀하게 여기는 것, 인간다운 삶을 주장하는 것이다. 자유를 향유하고, 존엄을 인정받고, 권리를 보장받는 경험을 한 사람들은 훗날 다른 권력자가 그것을 빼앗으려 할 때 거기에 맞서 행동할 줄 안다. 그리고 행동하는 인간을, 권력은 두려워한다. 그것이 촛불집회가 남긴 소중한 교훈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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