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노동자 백영란씨
7년간 사업장 투쟁…탄핵 국면 시작되자 촛불집회 참가
정권 바뀌자 대학 측 적극적 변화, 드디어 임금협상 타결
“싸우고 또 싸워도 벽은 깨지지 않을 것처럼 보였습니다. 목이 터져라 외쳐도 정부와 대학 측은 꿈쩍도 하지 않았습니다. 2016년 광장에서 촛불이 타오르기 전까지 그렇게 느꼈습니다.”
청소노동자인 공공운수노조 경희대 부분회장인 백영란씨(59)는 말했다. 경희대 청소노동자들이 처음으로 노조를 만든 2011년 백씨는 청소일을 시작했다. 80만원도 안되는 월급과 용역회사 직원들의 일상적 폭언은 이곳이 진짜 대한민국인지 의심이 들게 했다. 그즈음 각 대학 청소노동자들이 속속 노조를 결성하기 시작했다. 백씨는 당시 경희대 분회장을 맡아 타 대학 청소노동자들을 밤낮으로 도왔다. 7년간 가정은 돌보지 못했고, 가족들은 백씨 활동을 탐탁지 않게 여겼다.
지난해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터지기 시작할 무렵 경희대 청소노동자들은 학교와 밀고 당기는 싸움을 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탄핵 국면이 시작됐고 노조원들은 사업장 투쟁은 뒷전으로 놓고 열정적으로 집회에 나갔다. 대선에서 박근혜 후보를 지지했던 노동자들까지 나섰다. 조합원들에겐 “탄핵이 되면”이란 말이 일상이 됐다. “얼굴에 잡티 좀 빼러 가야 하는데”라고 누군가 말했더니 “박근혜 탄핵되면 가”라는 답이 왔다.
“그 판단이 옳았습니다. 죽어라 싸웠던 성과연봉제가 폐지됐고, 세월호 기간제 교사들의 순직이 인정되고…. 이렇게 순식간에 바뀌는구나. 그런 희망에 기대 경희대 교섭도 최대한 합의를 이끌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드디어 지난 7월 경희대는 자회사를 설립해 용역회사 청소노동자 전원을 채용하고 정년은 70세까지 보장한다고 했다. 지난달 말 타결된 임금협상에서는 노조 측 요구대로 시급 830원 인상이 결정됐다. 동덕여대, 덕성여대, 이화여대, 연세대, 서강대, 고려대, 한성대, 홍익대 등도 다른 대학의 청소노동자들도 시급 830원이 인상됐다.
촛불은 가정도 바꿨다. 백씨는 지난겨울 처음으로 남편, 막내딸과 함께 집회에 나갔던 날을 잊지 못한다. “초를 두 개씩인가 썼는데 촛농이 다 떨어져서 끼고 간 장갑은 결국 버렸지만 굉장히 즐거웠어요. 촛불집회에 같이 나가 보니 가족들도 시위를 이해하게 됐죠. 지금은 딸도 사위도 저를 보고 ‘멋지다’고 해요.” 백씨는 “현 정부가 앞 정권에서 잘못했던 것들은 반복하지 않고 국민들에게 상처를 안 줬으면 좋겠다”며 “그래야 진짜 촛불의 의미가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