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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나지 않은 재판

입력 2017.10.26 20:53

수정 2017.10.26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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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끝나지 않은 재판

나흘 전 친박계 좌장 서청원 의원이 ‘성완종’을 거명할 때 눈이 TV로 돌아갔다. 대선 후 다섯 달 만에 듣는 성완종 뉴스였다. “홍준표 대표가 내게 협조를 요청한 일이 있다”는 8선의 노정객은 “진실을 얘기하지 않을 때는 진실을 증거로 내놓겠다”고 맺었다. 홍 대표는 바로 반발했다. “2015년 4월18일 서 의원에게 전화해 ‘나에게 돈을 주었다는 윤모씨(윤승모 전 경남기업 부사장)는 서 대표 사람 아니냐. 왜 나를 물고 들어가느냐. 자제시키라’고 요청한 일이 있다”며 “노추의 유치한 협박”이라고 되받았다. 한쪽은 패의 첫 장만 뒤집고, 상대는 다 까보라고 맞선 격이다.

사달은 자유한국당에서 ‘1호당원’ 박근혜 전 대통령과 친박계 거두 서청원·최경환 의원의 출당 논의가 시작된 지 이틀 만에 불거졌다. 이렇게 써 먹을 때가 올 거라고 예감했을까. 연을 끊고 길 떠나겠다는 사람에게 2년6개월 전부터 꾸깃꾸깃 품어온 ‘뭔가’를 빼든 것이다. ‘폐족’의 그림자가 어른거리는 친박의 반격과 “개가 짖어도 기차는 간다”는 대표의 응전, 과거와 현재의 피비린내 나는 보수권력 쟁투가 링 위에 올랐다. 권세 높은 대감 집 사랑방에서 밤새 당파의 구수회의와 염탐이 이어지는 사극 속 풍경과 다를 바 없다.

“다 압니다. 메인에서는….” 2015년 4월9일 아침 6시, 성 회장은 마지막으로 북한산을 걸으며 통화할 때 친박계 핵심들은 저간의 사정을 다 안다고 했다. 손에 쥐고 있던 메모지엔 8명(김기춘·허태열·이병기·홍문종·이완구·홍준표·유정복·부산시장)이 있었지만, 성 회장은 더 많은 권력 실세들에게 구명활동을 했음도 솔직하게 털어놨다. 공교롭게도 친박 실세 서 의원은 그때 시차를 두고 성 회장과 홍 대표의 ‘SOS’ 메시지를 마주했을 수도 있다. 해서, 길을 걷거나 밥 먹다가도 문득 곱씹는 단어가 생겼다. 서 의원이 꺼내보일 듯이 압박한 ‘증거’다.

기실, 홍 대표를 유죄로 볼 정황과 증거는 널려 있다. 지난 2월 1심에서 징역 1년6월을 선고받은 홍 대표에게 무죄를 때린 항소심 재판부도 ‘윤승모가 성완종에게 1억원을 받아 홍준표에게 전달했다는 것은 어느 정도 신빙성이 있는 게 사실’이라고 판시했다. 다섯 달 전 이완구 항소심에서 무죄 판결하며 무시한 성완종 녹취록도 다시 증거로 삼았고, 홍 지사 쪽 사람들이 “돈가방은 비서에게 주고 간 걸로 해달라” “홍 지사는 모르는 돈으로 해달라”며 윤씨에게 ‘거짓 증언’을 회유한 전화 녹음파일도 증거로 인정했다. 그러고는 급반전했다. 판결문은 윤승모 진술을 그대로 믿기 어려운 사정이 있고 검찰 수사도 미흡했다며 무죄의 길을 냈다. 법정에서 채택한 물증보다도, 4년 전 공사 중인 의원회관을 기억 못하고, 어느 길로 여의도에 진입했고, 동승한 부인은 차 옆자리에 앉았는지 뒤에 앉았는지 엇갈린 진술을 톺아서 죄의 토대를 허문 ‘물음표’ 판결이었다.

윤씨는 항소심 판결 며칠 후 통화에서 “허탈하고 화도 난다”고 했다. 처벌을 감수하고, 홍 대표 쪽 지인들과 척지며 전화녹음까지 했던 공든 탑이 무너진 공허감이었다. 그 끝에 윤씨는 “성 회장이 죽기 사흘 전 내 병실에 확인하러 왔을 때 내가 먼저 ‘회장님, 그때 확인하지 않았어요’라고 물었다”며 “바로 ‘그럼. 확인했지’라는 말을 들었고, 며칠 뒤 비보를 접하고는 처벌을 받더라도 증언하겠다는 맘을 먹었다”고 했다. 그는 대법원에서 뒤집힐 가능성은 낮게 봤다. 논란 속이지만 2심까지 사실심이고, 대법원은 큰 상황변화나 새 증거가 제출되지 않으면 법률심의 틀이기 때문이다. 그랬던 홍 대표 재판에 다시 여의도의 변곡점이 생긴 셈이다.

함흥차사다. 항소심 끝난 지 이완구 재판은 13개월, 홍준표 재판은 8개월이 지났다. 대법원 판결은 언제 나올까. 공안통 검사 두 사람에게 물었다. 공통적으로 “적어도 올해 국감은 끝나고”라는 답이 나왔다. 제1야당 대표 재판의 정치적 파장도 염두에 둔 말이었다. 반전이 생길까. 홍 대표 방미로 숨고르는 한국당 대치는 박 전 대통령 출당을 의결하는 30일부터 급류를 탈 게다. 칼을 뺄까, 칼집 속에 둘까. 서청원의 밀당도 시작됐다. 단, 뱉은 말을 주워담을 수는 없다. “대중의 알권리”를 저버리는 끝에는 성완종 리스트를 재차 흥정거리로 삼은 역풍에 맞닥뜨릴 게다.

“맑은 세상을 만들어달라.” 생의 마지막 인터뷰에서 성 회장은 “다들 내 돈은 편하게 믿고 썼다”며 목숨과 ‘진실의 무게’를 바꾸는 선택을 했다. 하나, 해원의 길은 막혔고, 성완종의 진실은 아직 북한산 때죽나무에 매달려 있다. 해외에서 사업하며 가끔씩 카톡을 보내던 성 회장 장남의 연락도 항소심 뒤로 끊겼다. 맘이 쓰리고 태어나 자란 조국이 그리 미웠으리라. 여의도로 서초동으로 눈길 건넬 일이 많은 만추, 재판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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