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명’은 어디까지 왔나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이 촉발한 ‘촛불혁명’은 불의·부정한 정권 퇴진과 책임자 처벌 요구에만 머물지 않았다. 수십년 누적된 정치·경제·사회적 모순을 해결하라는 목소리가 광장에서 쏟아졌다. 촛불혁명은 박근혜 전 대통령을 권좌에서 끌어내린 정치혁명이자 경제·사회적 폐해를 바로잡을 사회혁명의 출발점에 가까웠다. 그래서 촛불혁명은 1년이 지난 오늘도 진행형이다.
촛불혁명 의제 중 가장 빠른 진전을 보이는 것은 적폐청산이다. 박근혜·최순실·김기춘·안종범 등 국정농단 주범들이 줄줄이 법의 단죄를 받고 있다. 박근혜 정권 때 묻혔던 ‘MB(이명박 전 대통령) 적폐’가 속속 드러나면서 이 전 대통령에 대한 검찰 수사도 눈앞으로 다가왔다.
국정원·검찰 등 권력기관 개혁도 비교적 속도를 내고 있다. 권력기관 개혁은 인적청산과 과거사 바로잡기, 제도개혁 등 세 갈래로 진행 중이다.
국정원은 자체 개혁발전위원회 소속 ‘적폐청산TF’ 주도로 과거사 진상규명 작업이 한창이다. ‘MB 국정원’의 정치개입 등 지난 10년간 국정원의 온갖 비리가 드러나고 인적청산으로 이어지고 있다.
검찰에선 문무일 검찰총장이 ‘강기훈 유서대필 사건’ 등 과거사에 대해 처음으로 사과하고, 검찰은 과거사 재심 사건에 대한 항소를 포기하는 등 자체 개혁을 단행했다.
검찰개혁의 최대 쟁점인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치, 검경 수사권 조정은 법 개정이 필요한 사안인데, 여야 입장이 갈리고 검경의 이해가 첨예하게 맞서고 있다.
정치개혁은 아직 논의 단계다. 내년 6월 지방선거를 목표로 한 개헌은 기본권·평등권·자치분권 확대 등이 기본 방향이다.
선거제도 개혁은 정당 득표율에 비례한 의석 배분, 지역주의 완화 등이 쟁점인데, 국회 정개특위 논의는 이제 첫발을 뗀 상태다.
촛불광장의 주된 요구 중 하나는 경제민주화, 재벌개혁, 양극화 해소 등 경제개혁이었다. 최저임금의 큰 폭 상승,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등 양극화 해소 조치는 일부 단행됐다. 하지만 다중대표소송제 도입, 공정위 전속고발권 폐지, 대·중소기업 협력이익배분제 실시, 소득세 최고세율 인상 등 굵직한 과제는 모두 국회 문턱을 넘어야 하는 사안이다.
촛불시민의 요구를 반영한 것 중 인적청산, 과거사 진상규명, 책임자 처벌 등 행정부 재량으로 가능한 것은 진도가 빠른 편이다. 반면 사회의 제도적 개혁을 위한 방안은 거의 법 개정이 필요하고, 대부분 논의가 아직 진행 중이거나 답보 상태다.
지난겨울 수백만 촛불은 한국 대의민주주의에 보내는 강력한 경고장이기도 했다. 그런 점에서 국회의 직무유기와 개혁입법 불발로 인한 촛불혁명 좌초는 한국 민주주의의 실패로 기록될 공산이 크다는 지적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