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나무밭 달님
권정생 지음·윤미숙 그림 | 창비 | 44쪽 | 1만2000원
나이 마흔이 넘은 노총각 필준이는 어머니 안강댁과 함께 산다. 어머니는 남의 말을 빌리자면 ‘얼빠진’ 사람이다. 엉덩이가 다 해진 바지를 예사로 입고 다니는 필준이는 어머니를 모시느라 학교도 마치지 못하고 이 집 저 집 머슴살이를 하다가 지금은 과수원 지기를 하고 있다. 아버지는 필준이가 첫돌 되는 해에 사라졌다. 나이가 들수록 어린아이가 되어가는 어머니는 고기 사달라, 장에 데려가달라, 업어 달라, 요구 사항도 많다.
‘지지리 궁상’의 삶일 터인데 필준이는 누구도 원망하지 않는다. 아픈 어머니도, 돌아오지 않는 아버지도, 자신과 어머니를 놀리는 이웃도, 하다못해 가혹한 운명을 내린 하늘을 향해서도 화를 내지 않는다. 고된 노동과 외로움도 필준이를 불행하게 만들지 못한다. 실성한 어머니가 가끔 정신이 돌아와 그렁그렁한 눈으로 ‘내가 나쁜 어미야…’라고 말할 때면 필준이는 목이 메어 버린다. 그리고 어느새 주름투성이가 된 안강댁의 얼굴을 보며 생각한다. ‘불쌍한 어머니….’
그림은 뭉툭하다. 두 식구의 40년 세월을 단색 면 위에 굵고 거친 선으로 표현했는데 그 담담함에서 온기가 느껴진다. 이 책에서 노랑은 ‘순수’를 상징한다. 달, 사과나무꽃, 은행잎과 안강댁의 저고리 등에만 노란색을 입혔다. 한 페이지는 글이 없다. 빽빽한 피란민 사이 보따리를 이고 아기 필준이를 업은 젊은 안강댁의 모습만 담았다. 삽화를 그린 서양화가 윤미숙은 안강댁의 못다 한 이야기를 들어주고 그녀를 다독이고 싶어 이 장면을 추가했다고 한다.
‘너무나 동화 같은 동화’인 이 책은 효를 의무나 도리로 강요하지 않고 나보다 먼저 늙을 수밖에 없는 사람들에 대한 측은지심이라고 전하고 있다. 필준이의 효심은 누가 가르친 것도, 강요한 것도 아닌 어머니를 가엾게 여기는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다. 왜 효도를 해야 하냐는 자녀의 질문에 ‘나를 낳은 부모니까 공경해야 하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보다는이 책 한 권을 읽게 하는 것이 백 배는 더 설득력 있을 것 같다.
‘강아지똥’ ‘몽실언니’ ‘빼떼기’ 등을 쓴 아동문학가 권정생이 1978년에 출간한 동명의 동화집 표제작을 재출간했다. 올해는 권정생 작가의 타계 10주기다. 평생 질병에 시달리며 그 자신은 불우한 삶을 살았지만 어린이와 자연, 특히 작고 보잘것없는 생명들에 각별한 애정을 쏟으며 글과 그림으로 완성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