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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혐오에 맞서 싸우는 시민들 "우리는 침묵하지 않는다, 혐오에 동조하지 않기 위해"

침묵과 방관을 넘어서

제3자들의 대응 경험



[창간기획-혐오를 넘어](4)혐오에 맞서 싸우는 시민들 "우리는 침묵하지 않는다, 혐오에 동조하지 않기 위해"

혐오 당사자가 혐오표현에 대응하는 것은 쉽지 않다. 혐오와 차별을 없애기 위해서는 당사자를 넘어서는 제3자, 시민사회의 대응이 중요하다. 4회에서는 ‘제3자’가 소수자와 연대해 혐오에 대응한 사례를 통해 우리 모두가 함께 혐오에 대응해야 하는 이유를 짚어봤다.



■“‘멈추라’ 말하세요, 혐오에 동참 않으려면” - 대학 내 ‘단톡방 성희롱’ 고발한 김수현(가명)씨

“ ‘혐오를 멈추라’고 말하지 않으면 혐오발언을 유희로 다루고, 혐오로 인해 누군가가 공동체로부터 배제되는 일에 동참할 수밖에 없습니다.”

지난해 서울의 한 대학에 붙은 ‘단톡방 성희롱’ 대자보의 모습.

지난해 서울의 한 대학에 붙은 ‘단톡방 성희롱’ 대자보의 모습.

지난해 서울의 한 대학에 ‘단톡방 성희롱’을 고발하는 대자보가 나붙였다. 한 학과의 ‘남톡방’(남성들로만 이뤄진 카카오톡 단체 대화방·사진)에서 “첫 만남에 강간해버려” “여자 주문할게 배달 좀” 등의 대화가 오가고, 실제 여학생들을 품평하며 성희롱한 사실이 알려지며 공론화됐다. 그 무렵 다른 대학에서도 ‘단톡방 성희롱’ 고발이 이어지면서 단체 대화방의 성폭력에 대한 문제 제기가 이뤄졌다.

경향신문은 대자보를 쓴 김수현씨(가명)와 e메일로 인터뷰를 진행했다. ‘내부고발자’가 되기로 한 이유, 고발 이후 공동체 안에서 벌어진 일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 대화방에서 어떤 발언들이 오갔나.

“게임·축구·학과생활과 같은 일상적 대화, 그리고 여성에 대한 이야기가 오갔다. 남성끼리만 있다면 할 수 있는 얘기들이 과시적으로 이뤄지면서 여성을 성적으로 대상화하고 맥락 없이 여자에 대한 얘기가 나오면 ‘섹스하고 싶다’와 같은 말들이 오갔다. 점점 수위가 높아지면서 ‘그만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고발을 결심하게 된 계기는.

“처음엔 침묵하거나 화제를 돌리려고 했다. 대화방에서 반박할 경우 ‘혼자 잘난 척하네’ 같은 반응으로 끝날까봐 주저했다. 내가 없는 단톡방을 만들고 그곳에서 변함없이 성희롱이 오갈 것이라 생각하면 끔찍했다. 학교에서 계속 봐야 할 사람들인데, 더 이상 못 본 척하고 싶지 않았다. 단톡방을 멀리하다가 오랜만에 들어가 봤더니 대화 내용이 생각보다 심각했고, 고발하기로 마음을 굳혔다.”

- 고발 이후 학우들의 반응은 어땠나.

“크게 세 부류였다. ‘사소한 일인데 무슨 문제냐’는 것, ‘문제가 있긴 한데 왜 공개하냐’ ‘우리 남톡방은 잘 숨기자’는 반응이었다. 타인의 아픔을 ‘사소한 일’이라고 간단히 넘겨버릴 수 있다는 사실에 슬프면서도 화가 났고, 한국 사회에 이런 대화들이 일상적으로 넘쳐난다고 생각하니 갑갑했다.”

- 고발 이후 공동체 내부의 변화가 있었나.

“수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현재 시점에서 말하면 ‘지워지고’ 있는 것 같다. 책임져야 할 사람들이 반성하기보단 아무 일 없다는 듯 행동하며, 피해자들이 상처를 감내하는 상황이다. 공론화를 결심했을 때부터 방법을 수없이 고민했지만 ‘더 잘할 수 있지 않았을까’ 돌아보게 된다.”

- 혐오를 당한 당사자가 아닌 ‘제3자’로서 목소리를 낸 이유는.

“혐오발언으로 누군가가 상처받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았다. 목소리를 내지 않으면 타인을 향한 혐오에 동참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타인에게 아무 죄책감 없이 상처를 주는 일이 없으려면, 스스로 예민하게 살피고 목소리를 내는 것이 중요하다.”

- 대다수가 침묵과 방관을 선택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남성의 경우 ‘남성성’을 과시하는 행동에 동참하지 않으면 남성 공동체에서 소외되기 쉽다. 우리는 개인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존중하지 않고 ‘보편적인 남성상’에 욱여넣어 행동하길 강요하는 문화 속에 살고 있다. ‘남성문화’ 안에서 자신이 겪는 억압을 돌아보고 이야기하는 것이 중요하다.”

-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타인의 생각을 바꾸는 것은 쉽지 않다. 혐오발언에 대해 ‘쓴소리’를 하는 게 효과적이라고 생각한다. 혐오발언을 하는 사람이 오히려 눈치를 봐야 하는 분위기를 만들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선 지치지 않고 끝없이 문제 제기를 해야 한다. 단호하게 ‘싫다’고 말하고 행동해야 사소하게 여겼던 문제를 직시할 수 있다.”

- 한국 사회가 어떻게 변화해야 할까.

“한국 사회에선 차별을 이해하기보다는 ‘역차별’을 주장하고, 평등한 관계보다는 수직적인 관계에 적응하는 것이 익숙하다. 평등한 관계를 만들기 위해 타인과 대화하고 이해하려 하기보다 자신의 권력우위를 누리면서 타인에 대해 사유하지 않는 게으름에 익숙하다. 그 ‘익숙함’을 견디기 힘들어하는 사람들에게 의지가 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다.”

■“침묵하는 다수가 연대하면 제도도 바꿀 수 있어” - ‘헤이트스피치’에 대항하는 일본인 야마다 다카오씨

“조선인은 죽어라!” “바퀴벌레 조선인을 일본에서 쫓아내라!”

일본에서 재특회(재일한국인의 특권을 허용하지 않는 시민모임)를 중심으로 한 혐한 세력이 내뱉은 ‘헤이트스피치’다. 헤이트스피치는 소수자에 대한 증오·차별을 부추기는 언동을 뜻한다. 도쿄·오사카를 시작으로 일본 전역에서 헤이트스피치가 이어지자 이에 맞서는 일본 시민들의 대항 시위도 확산됐다.

[창간기획-혐오를 넘어](4)혐오에 맞서 싸우는 시민들 "우리는 침묵하지 않는다, 혐오에 동조하지 않기 위해"

재일조선인이 많이 살고 있는 가와사키(川崎)시의 사쿠라모토(櫻本)에서도 2015년 11월 헤이트스피치가 예정돼 있었다. 하지만 이날 혐한 세력은 사쿠라모토로 갈 수 없었다. 시민 500여명이 모여 길을 막았기 때문이다. 이듬해 1월에는 시민 1000명이 모였다. 헤이트스피치에 맞선 일본 시민들의 행동은 지난해 5월 ‘헤이트스피치 해소법’ 제정으로 이어지는 성과를 낳았다.

지난 18일 ‘2017 서울인권컨퍼런스’ 참석을 위해 방한한 야마다 다카오(山田貴夫·68·사진) ‘헤이트스피치를 용서하지 않는 가와사키 시민네트워크’ 사무국장을 만났다. 그는 “차별이나 혐오표현을 듣고 가만 있으면 나 역시 가해자가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 시민들의 연대 동력은 무엇인가.

“박해받는 소수를 외면하면 우리도 가해자라는 인식을 공유했다. 가와사키시는 40년 이상 재일조선인 차별 반대운동을 해서 ‘일본인·조선인은 모두 같다’는 인식이 있다.”

- 사회 구성원이 연대해 헤이트스피치에 대항해야 하는 이유는.

“차별을 만드는 사회는 차별의 대상을 너무 쉽게 바꿀 수 있다. 지금 재일조선인을 향한 헤이트스피치가 이뤄지지만, 언젠가는 여성, 장애인에 대한 혐오로 변할 수 있다. 혐오는 나쁜 방향으로 확대되어 가는 성질이 있다.”

-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왜 가해자가 되는가.

“헤이트스피치를 하는 사람은 소수고 대부분은 침묵하는 다수다. 다수가 침묵하면 피해자를 못 본 척하는 것일 뿐 아니라 가해자의 등을 밀어주는 것이다.”

- 헤이트스피치 현장에서 어떻게 활동했나.

“그 사람들도 삶 속에 불만들이 쌓여서 폭발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회의 모순이 만들어낸 또 다른 피해자이기에 비난 대신 ‘함께하자’ ‘같이 살자’는 말을 건넨다.”

- 시민들의 연대가 제도적 개선으로 이어졌다.

“ ‘헤이트스피치 해소법’ 제정을 위한 활동에 동참했고 현재는 가와사키시에 ‘인종차별 철폐조례’를 제정하라는 요구를 하고 있다. 일반 시민들을 대상으로는 ‘헤이트스피치 해소법’과 관해 여러 가지 테마로 학습회를 열고 있다.”

■“소수자들을 만나 편견을 깨면, 함께 성장합니다” - 성소수자 지지 ‘앨라이’로 활동 중인 김지혜씨

두 아이의 엄마인 김지혜씨(41·사진)는 성소수자를 지지하는 이들을 일컫는 ‘앨라이(ally)’로 활동하고 있다. 성소수자 인권단체 비온뒤무지개재단의 ‘나는 앨라이입니다’ 캠페인의 첫 번째 모델이다. 중증 아토피 피부염을 앓았던 둘째 아이에게 쏟아졌던 차가운 시선을 경험했던 김씨는 “아이의 흉터를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여줄 수 있는 사회를 꿈꾸며 참여했다”고 말했다.

[창간기획-혐오를 넘어](4)혐오에 맞서 싸우는 시민들 "우리는 침묵하지 않는다, 혐오에 동조하지 않기 위해"

- 혐오를 받아 본 경험이 있나.

“어린 시절 뜨거운 물에 빠져 가슴 아래부터 무릎 위까지 3도 화상을 입었다. 겉으로 드러나진 않았지만 목욕탕만 가면 ‘여자애가 그 몸으로 어떻게 살지’라고 말하는 듯한 따가운 시선이 쏟아졌다. 흑인·백인종 이야기를 들었을 때도 피부색으로 사람을 판단한다는 게 이상하게 느껴졌다. 아직 차별이라는 단어를 몰랐을 때였지만 직관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 아이도 혐오를 겪었나.

“둘째가 아토피 피부염을 심하게 앓았다. 한 번은 어떤 아이가 ‘더러워’라고 말하기도 했다. 아이가 아픈 건 그냥 일어난 일인데 다 내 죄 같았다. 내 화상 흉터와 내 아이의 아토피 흉터를 숨기지 않아도 되는 사회가 됐으면 좋겠다.”

- 성소수자를 지지하는 활동을 하게 된 계기는.

“마을 공동체 활동을 하다 자연스럽게 성소수자 친구를 사귀게 됐다. 다양한 사람들이 모인 곳에서 내가 성장하는 걸 경험했기 때문에 그 친구들을 만나게 된 걸 감사하게 생각했다. 비온뒤무지개재단에서 일하는 친구가 ‘앨라이 모델’ 제안을 해왔다. 난 너무 평범한 것 같아 고민이 됐지만, 유명인이 아닌 평범한 사람들이 지지하는 게 더 의미 있다고 생각했다.”

- 성소수자를 비롯한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혐오가 심각한데.

“사람들이 점점 자신의 ‘박스’에 갇히는 것이 눈에 보인다. 장애인을 만나고 싶어도 못 만난다. 사회가 장애인에게 이동할 자유를 주지 않았으니까. 이렇게 차별적인 구조에 갇혀 있다 보면 내가 혐오를 하고 있는지도 모르게 된다. 혐오조차 ‘다양성’으로 포장되는 걸 보면서 안타까움을 느낀다. 혐오할 자유라는 말은 무지에서 나온 말이다.”

- 혐오를 없애기 위해 무엇이 필요할까.

“여행할 때 짧은 시간 내에 다양한 경험을 얻기 위해 노력하지 않나. 그런 마음으로 일상을 여행하면 좋겠다. 문을 열고 나가면 장애인, 이주민, 성소수자 등 다양한 소수자들이 있다. 내 편견을 깨고 경계를 흔드는 사람들을 통해 내가 성장할 수 있다.”

■전문가의 말

“제3자 대응, 혐오 문제 공론화 기여”

홍성수 교수 | 숙명여대 법과대학

홍성수 교수 | 숙명여대 법과대학


혐오표현은 기본적으로 ‘선동’의 성격을 갖고 있다. 소수자들을 공격하는 동시에 제3자에게 혐오와 차별에 동참하도록 호소하기 때문이다. 제3자들이 혐오에 가세하면 소수자들은 더욱 고립되고 배제된다. 혐오표현에 대한 제3자의 대응은 혐오주의자들의 공격에 맞서면서 문제의 구도를 바꾸는 것이다. 일본 혐한시위는 재일조선인들을 바퀴벌레 취급하며 일본인에서 배제시키려 하는 것이지만, 재일조선인과 일본 시민의 카운터(counter)운동은 거꾸로 인종주의자들을 고립시켰다. 한국의 반동성애 세력들은 동성애자를 에이즈의 주범으로 낙인찍고 사회에서 배제하려 하지만, 성소수자를 지지하는 앨라이운동은 성소수자와 제3자인 시민들이 연대하고 반동성애세력들을 고립시킨다. 제3자의 대응은 즉각적으로 혐오표현의 피해를 최소화하고 혐오표현의 문제를 공론화하는 데에도 기여한다.


“혐오와 차별, 너와 내가 분리 안돼”

류민희 변호사 |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 만드는 법

류민희 변호사 |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 만드는 법


혐오표현과 차별에서 당사자와 제3자를 완전히 구분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모든 면에서 주류에 속하는 사람은 없다.

우리는 소수자 집단에 대한 혐오와 차별을 목격하며 공동체의 권력관계와 지배질서를 확인하게 된다. 폭력적인 공동체에 대한 실망감을 느끼는 동시에 지배질서를 내재화하고 나아가서 자신의 소수자성을 은폐한다. 차별의 공포를 목격하였고 무기력하게 겪었기 때문이다.

‘연계차별’이라는 것이 있다. 소수자 집단에 속하는 사람과의 관계 때문에 자신도 차별과 혐오표현을 겪는 것이다. 장애를 가진 자녀를 둔 어머니가 차별을 함께 겪는 일들이 그러하다. 혐오표현과 차별은 너와 내가 쉽게 분리되지 않는다. ‘나의 일이 아니다’가 아니라 그냥 넘어갈 수 없는 ‘내 일’이자 ‘모두의 일’이 되는 순간을 느낄 것이다. 혐오표현과 차별에 대한 대항은 우리 모두가 온전한 자아로서 살고자 하는 노력이다.



■특별취재팀

이영경·김지원·이효상·최미랑·김찬호·배동미·유설희·유수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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