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실 존 로즈 동상을 철거하라고 요구하는 케이프타운대학교 학생들. 사우스아프리카투데이
남아프리카공화국 남쪽의 케이프타운대학교(UCT)에서 재작년 세실 로즈의 동상이 철거됐습니다. 학생들이 오랜 세월 요구해온 겁니다.
세실 로즈(1853~1902년). 금 파고 다이아 파내어 자기 이름을 딴 제국을 만든 영국 출신의 식민주의자이지요(여담이지만 이태 전 밀렵꾼들에게 죽음을 당한 사자 세실도 이 사람의 이름을 딴 겁니다. 그의 이름을 따서 출발한 로디지아는 지금의 짐바브웨라는 나라이고요).
그래서 이 동상을 철거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았고, 학생들의 시위가 거셌습니다. 결국 UCT의 동상은 사라졌지만, 영국 옥스퍼드대에 있는 동상은 살아남았습니다.
미국에서는 지난 8월에 남북전쟁 당시 ‘남부의 영웅’이었던 로버트 리 남부군 총사령관과 그 심복 스톤월 잭슨의 동상이 논란거리가 됐습니다. 인종주의 노예제를 지키려던 남부군의 장군들을 지금껏 기리는 것에 반대하는 이들은 거세게 철거를 요구했고, 반대편에선 폭력시위까지 벌이며 동상 지키기에 나섰습니다.
![[구정은의 세상]동상이 문제다](https://img.khan.co.kr/news/2017/11/19/l_2017111901002434800198222.jpg)
결론은? 이 동상이 있는 버지니아주 샬러츠빌 시의회는 두 동상을 검은 천을 덮어 가리기로 결정했습니다. 도널드 트럼프 시대, 점점 보수화하면서 인종주의가 노골화하는 미국의 모습을 보여준 논쟁이었습니다.
▶" target=_blank>[뉴스 깊이보기]로버트 리와 남북전쟁을 기억하는 방식, 미국의 역사전쟁
곧이어 러시아에서도 동상이 이슈가 됐습니다. 지난 9월 AK-47 소총을 만든 미하일 칼라슈니코프의 동상이 모스크바 도심 한복판에 세워졌습니다. 정부 인사들은 “러시아의 문화 브랜드”라고 주장했지만, 세계를 죽음으로 몰아넣은 총기 개발자의 동상이 적절하냐는 비판이 적지 않았습니다.
▶모스크바에 칼라슈니코프 개발자 동상...“‘죽음의 창조자’에 동상이라니”
세계의 분쟁이 이 총 때문이겠냐마는, AK-47이라는 ‘싸고 효율적인 무기’가 세계의 분쟁지역에서 널리 쓰이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의 동상을 모스크바에 세운 이들은, 2013년 세상을 떠난 칼라슈니코프가 “그들이 내 발명품을 쥐고 있는 것을 보면 인생의 회의가 든다”며 생전에 안타까워했던 사실을 알고 있을까요.

자기 이름을 딴 보드카를 들고 있는 생전의 칼라슈니코프. |게티이미지
지구 위에는 70억명, 아니 이제는 80억명 가까운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지요. 세계 곳곳에 세워져 있는 동상은 대체 몇 개나 될까요. 누가 알겠습니까마는, 분명한 건 동상들은 끊임없이 세워지고 또한 시비를 부른다는 점입니다. 너무도 당연합니다. 동상은 누군가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세워집니다. 하지만 역사는 언제나 새롭게 해석되는 법, 세상이 바뀌고 새로운 해석이 나올 때마다 과거사가 들춰지고 그 인물의 공과에 대한 평가도 바뀝니다.
국내에서도 동상 논란, 아니 ‘역사 해석 싸움’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다들 아시겠지만, 박정희 전 대통령이 주인공입니다. 한쪽에선 “친일파”라 비난하며 동상에 반대하고, 한쪽에선 박정희 동상에 반대하는 이들을 “빨갱이”라 비난합니다. 이 동상이 아니더라도, 전국에서 벌어지는 ‘박정희 기념사업’과 동상 세우기는 차고도 넘칩니다.

11월 13일 서울 마포구 박정희대통령기념관에서 열린 박정희 동상 기증식에 참석한 조각가 김영원씨가 자신이 만든 박정희 동상의 축소판 조각상을 바라보고 있다. |김창길 기자
이번 동상을 만든 이는 광화문 세종대왕상을 세운 김영원 전 홍익대 교수라고 합니다. 그런데 동상의 모양을 보니, 어디선가 많이 보던 모습입니다.

사진 모스크바타임스
러시아와 옛소련권 곳곳에 ‘유비쿼터스’로 남아 있는 레닌의 동상입니다. 2014년 초 우크라이나 키예프에서 반러시아 시위가 일어났을 때 거기 있던 레닌 동상 하나가 곤두박질쳐졌죠.

사진 위키피디아
위의 사진은 헝가리 부다페스트에 있는 레닌 동상이랍니다.
그 다음 소개(?)할 동상은, 굉장히 익숙한 장면으로 느껴질 분들이 많을 겁니다.
![[구정은의 세상]동상이 문제다](https://img.khan.co.kr/news/2017/11/19/l_2017111901002434800198227.jpg)
이라크 바그다드의 사람 후세인 동상이 2003년 미군 점령 뒤 철거되는 장면입니다. 한 시민이 끌어내리려 시도했고, 미군이 중장비를 가져다가 결국 제거했습니다.

사진 위키피디아
위의 사진은 설명 안 해도 아시겠지요. 마오쩌둥의 동상입니다. 제 2의 마오가 되려는 시진핑 주석 시대가 됐으니, 당분간 마오의 동상들은 안전할 것 같습니다만. 언젠가는 마오도 땅으로 내려올 날이 올까요.
그 다음 동상 역시, 따로 설명할 필요가 없을 듯합니다.

사진 게티이미지
아무리 봐도 남북은 한 형제가 맞는 것같습니다. 누가 친절히 모아놓기까지 했네요.

사진 quora.com
위정자, 권력자들이 동상을 세우는 건 국가주의 민족주의 뭐 그런저런 ‘주의’들을 선전하기 위한 이데올로기 공세의 일환이기 쉽지요. 바로 그런 이유에서, 두고두고 반발을 부르는 것이고요. 올 봄에는 경제난이 심해진 베네수엘라에서도 우고 차베스 전 대통령의 동상이 수모를 겪었다는 뉴스가 나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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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인지, 근래에는 식민주의나 제노사이드, 분쟁 등의 희생자를 기리는 추모시설들이 많아지는 추세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평화의 소녀상’도 그런 예이겠지요.

사진 www.srebrenica.org.uk
위 사진은 옛 유고연방 내전 때 세르비아계가 저지른 ‘스레브레니차 학살’ 피해자들을 기리는 추모공원입니다. 억지 영웅들의 동상으로 국민을 세뇌하는 시대에서, 피해자들을 기리고 과오를 되새기는 시대로 옮겨가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