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긴 올 것 같다. ‘마의 벽’으로 일컬어지던 1인당 국민소득(GNI) 3만달러 시대 얘기다. 3%대 성장 등을 전제로 달긴 했으나 내년에 돌파가 무난하다는 게 한국은행 예측이고, 경제연구기관들도 비슷한 전망을 내놓고 있다. 한국은 1994년 1만달러, 2006년 2만달러를 돌파했고 3만달러 앞에서 여러 차례 미끄러졌지만 결국 내년에는 깔딱고개를 넘을 것으로 보인다. 1인당 GNI에는 가계소득 외에 정부, 기업소득이 포함돼 계산되며 환율 영향을 받는다는 한계가 있지만 선진국 진입의 지표로 평가받는다.
이 같은 소식을 접한 시민들의 반응은 예상대로 “서민들은 월 150만원 받고 일하는데 재벌들이 평균을 올리고 있다” “빚 좋은 개살구일 뿐”이란 냉소적 분위기 일색이다. 대다수 시민들이 체감하는 현실이 수치와 동떨어져 있기 때문일 것이다. 3만달러 시대가 도래한다고 하나 민생경제 상황에 비춰보면 그저 수치놀음이며 평균의 착시현상일 뿐이다.
연간 3만달러라면 달러당 1000원으로 잡아도 우리 돈으로 3000만원이다. 3인가구 기준으로 치면 연 소득이 9000만원이란 얘긴데 과연 이 정도 소득을 벌어들이는 가구가 얼마나 될까. 9000만원이면 유명 공기업이나 재벌 대기업 평균 연봉 수준에 해당한다.
3만달러 시대 도래보다는 얼마나 많은 사람이 3만달러에 걸맞은 삶을 누릴 수 있느냐가 더 중요하다. 고달픈 민생에 온기를 불어넣지 못하는 한 5만달러 시대가 와도 서민 가계엔 그저 남의 나라 얘기일 뿐이다. 3만달러 시대는 축제의 대상이 아니라 우리가 수치상 평균소득 중심의 사고에서 벗어나야 하며, 한국경제가 과거의 성장 경로에 대한 의존성에서 벗어나 혁신해야 할 때라는 점을 보여주는 지표로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다.
제조업 중심의 수출 대기업 위주 경제구조로는 평균소득을 끌어올릴 수 있을지 모르나 중하위층 소득을 높이긴 어렵다. 제조업과 수출은 경제의 중요 축이나 그것만이 전부라는 사고의 구조조정이 시급하다. ‘수출로 먹고사는 나라가…’ ‘기업이 잘되어야 나라가 잘된다’는 식의 사고는 노동자들의 몫, 특히 중소기업 노동자들의 삶을 피폐하게 만드는 논리로 작동해 왔다. 재벌을 키우고 제조업 중심의 수출경제를 육성하는 모델은 신자유주의와 결합하며 한국 사회의 많은 모순을 잉태시켰다.
흔히 기업은 분배의 최전선으로 불린다. 현대경제연구원 분석을 보면 1인당 GNI 3만달러 시기 선진 7개국(G7)의 평균 시간당 실질 법정 최저임금은 7.1달러였다. 하지만 한국은 2016년 기준 5.8달러였다. 외형적 경제성장에도 우리나라 노동자들의 실질임금 상승폭은 상대적으로 낮고 생활여건이 정체되고 있다는 지표는 수두룩하다. 그럼에도 내년 최저임금 사상 최대폭 인상안 시행을 앞두고 일부 재계와 야당을 중심으로 헐뜯기와 불만의 목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중소기업과 소상공인 등의 인건비 부담을 해소할 세심한 제도 설계는 외면하면서 부작용만 부각시키는 건 기득권 지키기의 한 단면일 뿐이다. 단가 후려치기 등 갑질을 막고 중소기업과 소상공인들이 최저임금 지급 능력을 갖출 수 있도록 튼튼하게 만들어줘야 할 방안에 머리를 맞대는 것이 옳은 일이다. 무엇보다 취약한 임금배분은 대기업에 의한 중소기업 약탈에 의해 더욱 증폭돼 온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최근 정부 인사들은 자주 ‘혁신 성장’을 입에 올린다. 혁신은 흔히 창조적 파괴의 과정이라 한다. 단순히 규제 완화와 노동시장 개혁 등 공급 측면의 혁신만 강조되어서는 곤란하다. 시장만능주의가 결코 답이 될 수 없음은 과거 정부들이 보여주고 있다. 대런 애스모글루와 제임스 로빈슨이 쓴 <왜 국가는 실패하는가>에는 포용적 정치의 기초 위에 포용적 경제정책을 실현한 나라는 번영하고 반대의 길로 간 나라는 실패한다고 적혀 있다. 대·중소기업 협력, 비정규직 축소, 노동생산성과 연계한 임금상승 등이 포용적 정책의 특징이다.
올해와 내년 한국경제 성장률이 3.0%를 넘을 것이란 예측이 대세다. 김대중·노무현·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 임기 첫해 3% 이상 성장률을 기록한 적은 없었다. 여기에 1인당 GNI가 3만달러를 넘는다면 실체가 불분명한 실험적 모델이란 공격을 받아온 ‘J노믹스’는 선방한 셈이 된다. 소득주도성장론도 탄력을 받을 수 있다.
그럴 리 없겠지만 도취감에 빠져선 안된다. 3만달러 시대 문턱에서 주저앉아도 좋으니 내년에는 노동자들의 임금이 높아지고 서민 살림살이가 나아지도록 정부 역량이 모아졌으면 한다. 모든 사람을 만족시키는 정책은 있을 수 없으며 집중과 선택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