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선 “이미지 높인다” 반강제 동원…직장인들 “원하면 자율참여가 바람직”
한 증권회사에서 근무하고 있는 ㄱ씨는 회사 사회공헌위원회에 매달 5000원씩 기부금을 내고 있다. 회사는 임직원이 낸 기부금의 액수만큼 회사도 추가 출연하는 매칭그랜트 제도를 시행 중이다. 기부금은 매달 ㄱ씨의 월급에서 자동으로 빠져나간다. ㄱ씨는 회사 차원의 일률적인 기부에는 참여 의사가 없다고 사회공헌 부서에 밝혔지만 직속 상사로부터 불호령이 떨어졌다. ㄱ씨는 “상사는 부서원들의 기부 참여율이 부서장의 인사고과에 반영되므로 다시 기부 프로그램을 신청하라고 강요했다”며 “직원들 사이에 기부 참여를 강요받는 문화가 사내에 만연해 있다”고 말했다.
최근들어 민간 회사들과 공공기관 차원의 기부·봉사활동이 늘고 있지만 월급에서 기부금 공제가 사실상 반강제적으로 이뤄지면서 일부 구성원의 불만도 높아지고 있다. 회사 차원에서 기부·봉사를 하겠다는 취지는 좋지만 기부의 자기결정권이 침해된다는 시각이다.
한 제약회사에 다니던 ㄴ씨는 매년 연말이면 회사가 주최하는 저소득 가구 밀집 지역의 연탄 배달·김장 봉사활동에 의무적으로 참여해야 했다. ㄴ씨는 “전 직원이 의무적으로 참여해야 한다는 사내 분위기와 상사의 압력 때문에 주말에 봉사 일정이 잡히면 개인적인 사정을 들어 참여를 거부하기 힘들었다”며 “어려운 이웃을 돕는 봉사라고는 하지만 회사의 기업 이미지 제고를 위해 직원을 반강제적으로 동원하는 것이 진정한 의미의 봉사는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서울대학교의 한 단과대학에는 매년 연말마다 국군 장병 위문 성금을 소속 교수들 월급에서 제하는 관행이 있다. 최근 소속 일부 교수들 사이에서는 이 제도가 반강제적인 준조세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이 같은 회사나 기관 차원의 반강제적 기부가 오히려 기부문화 확산에 역효과를 가져온다는 시각도 있다. 통계청이 지난달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13년 기부에 참여한 국민은 34.6%였으나 2015년에는 29.9%, 2017년에는 26.7%로 계속 줄어드는 추세다. 반면 기부문화 확산을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묻는 올해 설문에서는 응답자의 68.3%가 기부단체의 자금운영 투명성 강화를 들었다. 직장인 이한솔씨(28)는 “연말연시 회사 차원에서 기부를 하면 기부금 사용의 불투명성에 대한 의심도 들고 기부에 따른 효능감도 느낄 수 없다”면서 “내가 관심 있는 여성단체에 꾸준히 후원금을 내는 게 진짜 기부라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20~30대 직장인들 사이에서는 조직 차원의 ‘묻지마 기부’보다는 각자의 가치관에 맞는 자율적인 기부문화로 가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ㄱ씨는 평소 길고양이에 관심이 많아 동물권 옹호 단체에 기부할 예정이다. 패션에 관심이 많은 ㄴ씨는 연말마다 의류 전문 비영리단체에 헌 옷을 기부하고 있는데 이를 좀 더 확대할 생각이라고 한다
강철희 연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기부의 참여도와 지속성을 높이기 위해 조직 주도의 기부 문화보다는 개인이 자율적으로 기부하는 문화의 정착이 필요하다”며 “자신이 관심 있는 분야를 찾아 기부하는 관행이 정착되면 기부 참여자는 평소 관심을 둔 분야인 만큼 기부가 가져온 효과를 쉽게 체감할 수 있고 기부의 지속성도 높아진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