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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 투표

입력 2017.12.05 21:26

수정 2017.12.05 2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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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이 주주총회를 개최하려면 의사정족수를 채워야 한다. 하지만 쉬운 일이 아니다. 상장기업의 발행주식 총수가 많게는 수천만주 또는 수억주에 달하기 때문이다. 의사정족수 규정은 나라마다 다르다. 미국·독일·스위스 등에선 주주 한 명만 참석해도 주총을 열 수 있다. 영국은 2인 이상을 의사정족수로 규정하고 있다. 프랑스에선 발행주식 총수의 20% 이상이 참석해야 주총 개최가 가능하다. 한국은 주총을 열어 의결하기 위한 요건으로 상법에 ‘출석 주주의 과반 찬성, 발행주식 총수의 25% 찬성’이란 규정을 두고 있다. 감사 선임 땐 발행주식 총수의 3분의 1 이상 찬성이 필요하다.

주총 개최가 무산돼 기업이 의사결정을 하지 못하는 것을 막기 위해 도입된 제도가 ‘섀도 보팅(Shadow Voting·그림자 투표)’이다. 1991년부터 시행돼온 섀도 보팅은 주총에 참석하지 못한 주주의 의결권을 한국예탁결제원이 주총 참여 주주의 찬반 비율에 따라 행사하도록 하는 제도다. 국내 기업들은 섀도 보팅을 적극 활용해왔다. 올해 3월 정기주총을 개최한 상장기업 1924곳 중 641곳이 한국예탁결제원에 섀도 보팅을 요청했다. 하지만 섀도 보팅은 부작용이 많은 제도다. 주총에 참석하지 않는 주주를 출석한 주주와 동일한 의견을 갖고 있다고 간주하는 것 자체가 모순이다. 의결권 행사가 왜곡되고 주주권이 훼손될 가능성도 크다. 게다가 경영진이나 대주주의 경영권 강화 수단으로 악용될 소지가 다분하다. 이런 연유로 2013년 자본시장법이 개정돼 2015년 1월부터 폐지가 예정됐다. 하지만 상장기업들이 ‘주총 대란’을 겪을 수 있다는 점이 고려돼 3년간의 유예기간을 거쳐 올 연말 폐지를 앞두고 있다.

재계가 또다시 섀도 보팅 폐지를 미뤄달라고 아우성이다. 3년 전과 똑같이 “폐지 땐 주총 대란이 불가피하다”는 엄포성 논리를 펴고 있다. 소액주주들이 주총에 참석하지 않아도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는 ‘전자투표제’ 도입에 소극적이던 기업들이 섀도 보팅 폐지를 유예해달라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다. 주주권을 보호할 대책을 마련하지 않은 채 3년을 허송세월했다는 자기 고백이나 다름없다. 이젠 ‘그림자 투표’에 의존하는 경영에서 탈피할 때도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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