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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직설] ‘보이지 않는 것’이 보여주는 것

입력 2017.12.25 23:45

수정 2017.12.25 2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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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S의 <까칠남녀>에 출연 중이다. 대한민국 최초의 젠더토크쇼를 표방하는 <까칠남녀>는 지난 37회 동안 피임, 졸혼, 맘충, 군대, 데이트폭력, 낙태죄, 10대 성적 자기결정권, 성희롱, 꽃뱀, 냉동난자, 페미니스트 교사 등 다양하고 논쟁적인 주제들을 다루어 왔다.

손희정 문화평론가

손희정 문화평론가

덕분에 프로그램 자체는 심심찮게 폐쇄 요청에 시달렸고, 심지어 홈페이지가 해킹당해 ‘노알라(고 노무현 대통령의 얼굴과 코알라의 얼굴을 합성한 일베발(發) 이미지)’로 홍보 사진이 변경된 적도 있었다. 물론 출연진에 대한 공격과 신상털기는 일상에 가까워서, 한 출연자의 경우에는 직장에까지 항의와 민원이 들어가기도 했다.

하지만 어떤 회보다도 38회(12월25일 방송)와 39회(내년 1월1일 방송)가 ‘뜨거운 반응’을 불러일으킬 것 같다. 성소수자 특집이기 때문이다. 초대 게스트는 2015년 서울대 총학생회장 선거에서 레즈비언임을 커밍아웃하며 87%의 지지를 받은 김보미씨, 퀴어문화축제 조직위원장인 강명진씨, 섹스 칼럼니스트 은하선씨, 국내 최초 커밍아웃 트랜스젠더 변호사 박한희씨다. 이들은 각자 LGBT, 즉 레즈비언, 게이, 바이섹슈얼, 트랜스젠더에 대해 이야기하기 위해 출연했다.

이미 보수 기독교 쪽에서는 방영을 막기 위해 훼방을 놓기 시작했다. 신자들 사이에는 “<까칠남녀>가 음란한 정체성을 드러냈습니다. 성소수자 특집에 하나님의 거룩에 대적하는 음란의 영으로 충만한 최고 제사장급들 4인방이 출연합니다. EBS에 항의 전화 부탁드립니다” 등의 내용을 담은 단체 메시지가 공유되고 있다고 한다.

그들의 염려와 달리 이번 특집은 아주 ‘건전하고 유익’했다. 방송은 JTBC <아는 형님>을 패러디하여 ‘모르는 형님’ 콘셉트로 기획되었는데, 새로운 친구들인 LGBT가 ‘까칠학교’에 전학을 와서 재학생들의 편견과 궁금증에 응답한다는 내용이다. 이는 한국 사회가 얼마나 성소수자에 대해서 무지한가에 대한 은유이기도 하다. 실제로 함께 출연 중인 황현희씨는 현실에서 LGBT를 처음 보았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한국인들은 때로 “성소수자가 도대체 무슨 차별을 당하느냐”고 묻는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 것’이야말로 성소수자의 현실을 정확하게 보여준다. 성소수자는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낼 수 없기 때문에 비가시화되고, 그토록 보이지 않기 때문에 자극적이고 단편적인 이미지로 정형화되어 사회적 편견 아래 놓이게 된다. 그리고 다수의 편견은 차별을 정당화한다.

만약 당신이 스스로 성소수자가 아니라고 생각한다면, 한번 생각해 보시라. 레즈비언, 게이, 바이섹슈얼, 트랜스젠더라고 하면 어떤 이미지가 그려지는가. 그 어떤 것을 떠올려도 그것이 모든 LGBT를 설명할 수는 없다. 그리고 이런 편견은 LGBT를 문화적으로 배제하고, 법적으로 차별하며, 때때로 물리적 폭력에 노출시킨다.

<까칠남녀>는 우리가 보여주는 LGBT의 이미지가 또 다른 편견을 만들 수도 있다는 위험을 감수하고 이 방송을 기획했다. 출연자들 역시 그것을 염려했을 것이다. ‘김보미’는 레즈비언을, ‘강명진’은 게이를, ‘은하선’은 바이섹슈얼을, ‘박한희’는 트랜스젠더 여성을 대표하지 않는다. 그들이 LGBT의 ‘표준’이 아님은 물론이다. 하지만 더 많은 목소리를 위해서는 더 많은 재현, 더 많은 가시성의 확보가 필요하다.

조심스러움 속에서, 그리고 공중파에 얼굴이 공개된 이후 받게 될 수많은 공격을 감수하고서, 이 네 명의 ‘제사장’들이 용기를 낸 것은 이 세계의 굳은 머리를 말랑말랑하게 만들고, 더 다채롭게 칠하기 위해서다. 열린 마음으로 우리의 게스트들을 만나주시기 부탁드린다. 판단은 시청 후로 미뤄도 늦지 않다.

보수 기독교 쪽에서 돌렸다는 단체 메시지의 내용을 보다가 또 다른 깊은 한숨이 나왔다. 얼마 전 그들의 요구에 떠밀려 여성가족부에서 ‘성평등’과 ‘양성평등’을 혼용하겠다고 밝힌 것이 떠올라서다. 2017년 대한민국에서 “음란의 영” 운운하는 자들의 강압 때문에 정부 부처의 정책운영 철학이 흔들린다니, 이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정부가 무능할 때, 개인이 하드캐리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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