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정된 일자리를 얻어 가정을 꾸리고 싶은 청년들, 한 푼이라도 월급을 더 받고 싶은 가장들, 대기업이 납품단가를 올려주길 고대하는 중소기업인들, 일에 지쳐 좀 더 쉬고 싶은 대기업 사원들….
새해를 맞아 저마다 자신만의 꿈을 한가지쯤 품고 출발했을 것이다. 우리가 꿈꾸는 행복한 삶, 행복한 경제는 이렇게 소박하고 단순한 것일지 모른다. 정부는 보통 사람들의 마음을 읽었는지 새해 경제의 중심축을 삶의 질 개선, 사람중심 경제에 놓겠다고 말한다.
한편에서는 문재인 정부 2년차를 맞아 새로운 사회 분열과 계층 갈등이 폭발하는 건 아닌지 불안하다는 사람들도 쉽게 접할 수 있다. 예컨대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국가적으로 대비해도 시원치 않을 텐데 이렇게 복지예산을 퍼주다가 나라 살림이 거덜나는 건 아닌가” “열심히 살아 돈 많이 버는 게 무슨 죄라고 왜 이리 세금만 올리려는 건지” 등등의 불만 내지 우려들이다.
빈부격차, 양극화가 사회통합을 저해하면서 한국 사회 공동체를 균열시키고 성장을 위협하는 위험요인이 된 지 오래다. 역대 정부는 무엇이 문제인지 알고 있었고,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하는지도 알고 있었을 것이다. 다만 선거에서 질까 봐, 시민 저항에 직면할까 봐, 임기 중 성장률이 떨어질까 봐 등등의 이유로 책임을 회피했고 정교한 방법을 마련해 난관을 돌파하지 못했을 뿐이다. 올해야말로 지긋지긋한 양극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전기가 마련되길 기대해 본다.
그러려면 정부가 중심을 잡고 가계와 기업들에 한국 경제가 제 갈 길을 가고 있다는 믿음과 신뢰를 심어줘야 한다. 일자리·소득주도 성장을 내건 문재인 정부는 여전히 실험적 모델이란 공격에 시달리고 있다. 시장중심, 성장우선을 외치는 사람들은 ‘경제가 어렵다는데 최저임금을 이렇게 올려도 되는지’ ‘남이 낸 세금으로 내가 복지 혜택을 입어도 되는 건지’ ‘노조들의 임금 인상 투쟁은 지나친 게 아닌지’ 걱정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파고든다.
그렇다면 정부는 시민들에게 사람에 대한 투자가 바로 한국 경제가 사는 길이란 점을 끈질기게 설파해야 한다. 사실 과거에도 분배 쪽으로 지나치게 옮겨갔다느니, 성장정책이 실종됐다느니 하는 주장이 난무했지만 역대 정부가 제대로 된 분배정책이나 경제민주화 조치를 시행한 적이 있었는지도 의문이다. ‘복지 함정론’ ‘노조 함정론’이 틈만 나면 발호해 한국 경제 위기론을 증폭시키고, 정부 정책을 무력화시킨 사례들도 있었다.
정부가 제대로 방향을 잡았다고 확신한 뒤 흔들리지 말아야 하는 이유는 바로 경제는 심리이기 때문이다. 경제를 구성하는 가계와 기업의 심리를 움직이지 않으면 경제는 원활하게 굴러가지 않는다. ‘자기실현적 예언’은 경제에서도 곧잘 나타나 ‘안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을수록 어려움에 빠진다.
올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있어 경제정책을 둘러싼 갈등은 더욱 첨예해질 수 있다. 그렇다고 정부가 표를 의식해 경제주체들에게 착시를 일으킬 정도로 오락가락해선 안된다. 보유세 현실화 등 증세 문제도 마찬가지다. 증세를 불안한 마음으로 지켜보는 계층을 상대로 경제적 불평등을 개선하는 것이 국가공동체 구성원의 상호 유대를 높여 공동 번영으로 이어진다는 점을 끈질기게 설득해야 할 것이다.
재정학자인 오연천 울산대 총장은 <국가재정의 정치경제학>에서 “경제적 여유계층의 공동책임의식이 견고할수록 원만한 증세 노력→복지 확산→국가공동체의 존재가치 증대라는 선순환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한다. 여유계층의 진정한 공감대가 수반되지 않으면 정부의 증세 노력은 선순환의 경제활동을 위축시키거나 반발에 직면할 수 있다는 경고이기도 하다.
한국 사회에서 재벌뿐 아니라 임대사업자, 고소득 전문직, 관료 등 여러 집단이 경제성장의 과실을 과도하게 가져가고 있다는 우려가 높다. 특히 국내 고용의 80% 이상을 담당하는 중소기업들은 공정성이 무너졌다는 좌절감을 많이 토로한다. 공정경제는 정부가 내거는 혁신성장을 위한 토대이기도 하다. 대기업을 비롯한 여유계층의 공동체를 위한 선의를 기대해 본다.
문재인 정부는 국민통합과 양극화 해소를 원하는 촛불 민심을 잊어선 안된다. 올해 한국 사회가 약자를 먼저 생각하고 성장의 과실이 골고루 돌아가도록 하는 데 최우선 순위를 둬야 한다. 한국 경제의 패러다임 전환을 내걸고 있는 J노믹스의 운명은 올 한 해에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국가는 전지전능하지 않지만 그래도 시장에서 소외된 시민들이 의지할 마지막 보루가 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