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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폐청산, 그 다의성과 필요성

입력 2018.01.02 20:51

수정 2018.01.02 2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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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우리 사회에서 가장 큰 관심을 모았던 말의 하나는 적폐청산이다. 적폐청산은 대선 과정에서 뜨거운 쟁점을 이뤘다. 5월10일 출범한 문재인 정부는 이를 100대 국정과제의 첫 번째로 삼았다. 적폐청산에 담긴 사전적 의미는 누적된 폐단을 깨끗이 씻어버리겠다는 것이다. 적폐의 동의어는 앙시앵 레짐, 즉 낡은 체제다. 낡은 체제를 청산하라는 것은 박근혜 정부를 조기 퇴진시킨 촛불시민혁명의 가장 중요한 요구의 하나였다. 문재인 정부가 촛불 시민들의 지지를 바탕으로 출범한 정부인 만큼 낡은 질서를 혁파하는 적폐청산은 새 정부의 당연한 과제였다.

[김호기 칼럼]적폐청산, 그 다의성과 필요성

정부의 적폐청산에 국민 다수는 호응했다. 그 이유는 크게 두 가지였던 것으로 보인다. 첫째, 적폐에 담긴 다의성(多義性)이다. 국민들이 파악하는 적폐의 대상은 제도·관행·가치·문화·인물 등 다양하다. 예컨대, 천민자본주의(제도), 갑질(관행), 권위주의(가치), 가부장주의(문화), 최순실(인물) 등이 그 목록을 이뤘다. 좀 더 넓게 보면 청소년에겐 가혹한 입시경쟁이, 청년세대에겐 씁쓸한 열정페이가, 중년세대에겐 무자비한 구조조정이 적폐로 지목됐다. 이렇듯 적폐에 담긴 의미가 다양하기에 이를 청산하려는 정부의 정책에 국민 다수는 공감했던 것으로 보인다.

둘째, 역사가 주는 교훈이다. 역사를 돌아보면 낡은 체제를 해체하지 않고 새로운 체제를 구축하기 어렵다. 개혁의 출발점은 과거 폐단을 바로잡는 데 있다. 구습을 쇄신해야 새로운 제도와 관행을 도입할 수 있다. 보수적 개혁이든 진보적 개혁이든 역사는 이러한 청산과 개혁의 과정에서 기성 제도를 옹호하는 세력과 새 제도를 지지하는 세력 간의 갈등이 일어났음을 보여준다. 분명한 것은, 헌 부대에 새 술을 담을 수 없듯, 낡은 질서를 놓아둔 채 새로운 질서를 일구긴 어렵다는 점이다.

정부의 적폐청산이 절대적 지지를 얻은 것은 아니었다. 일각에선 적폐청산을 정치 보복으로 파악하고 비판했다. 이들의 논리는 크게 두 가지였다. 첫째, 진행되는 적폐청산이 인적 청산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주장이다. 앞서 말했듯 적폐의 대상은 다양하다. 그 가운데 가장 중요한 대상은 제도와 인물이다. 문제는 제도와 인물을 구분하기 쉽지 않다는 점이다. 제도를 잘못 운영했거나 범죄를 저지른 이들에게 법적 책임을 물을 수밖에 없고, 이 과정에서 적폐청산이냐 정치 보복이냐의 논쟁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중요한 것은 일련의 적폐청산 과정에 대한 국민의 동의 여부다. 이제까지 정치 보복 논리보다는 적폐청산 논리에 대한 국민 지지가 높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둘째, 적폐청산이 국민통합을 약화시킨다는 주장이다. 적폐청산이 적과 동지의 이분법에 입각해 추진되는 것이라면, 이러한 시도는 국민통합을 점점 고갈시킬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그 청산이 옳음과 그름의 이분법에 기반을 두고 추진되는 것이라면, 그러한 시도는 외려 국민통합에 적잖게 기여할 수 있다. 분명한 것은 국민통합이 단순한 봉합 이상을 의미한다는 점이다. 국민통합이란 자기 나라에 대한 구성원들의 소속감과 타인에 대한 개인의 연대의식이 높아지는 것을 말한다. 드러난 범죄를 벌하고 그릇된 제도를 바꾸고 잘못된 관행을 바로잡아 정의로운 국가가 될 때 국민통합은 더욱 제고될 수 있을 것이다.

한 걸음 물러서 볼 때 적폐청산은 고색창연한 개념이다. 내가 주목하고 싶은 것은, 일각의 비판과 개념의 진부함에도 불구하고 적폐청산에 대한 국민의 지지가 왜 높은지에 대한 성찰이다. 적폐청산에 대한 적극적 지지의 원인은 앞서 말한 적폐의 다의성에 있다. 구조화된 불평등은 물론이거니와 불공정과 각종 차별, 인권과 민주주의의 후퇴 등은 적폐의 포괄적 목록을 이루고 있다. 이러한 다의성은 우리 사회에 부여된 전반적 개혁의 필요성을 역설한다. 낡은 제도·관행·문화에 대한 포괄적 구조개혁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적폐청산은 유효한 개혁 담론으로 생명력을 지속할 것으로 보인다.

자, 결론을 맺자. 적폐청산이 낡은 질서를 해체하는 과정이라면, 이는 새로운 국가와 사회로 나아가는 출발점을 이룬다. 적폐청산의 궁극적 목표는 정의가 올바로 구현되는 새로운 질서 구축에 있다. 이 목표를 실현하기 위해 적폐청산은 3단계 과정을 요구한다. 첫째 정확한 원인 규명, 둘째 그에 따른 책임 부과, 셋째 새로운 제도·관행·문화의 정착이 그것이다. 이 가운데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새로운 제도의 설계다. 적폐가 반복하지 않도록 제도를 정밀하게 설계하고 이를 온전하게 정착시킬 때 적폐청산은 완성될 수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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