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도 가족입니다

아이들 ‘성’이 달라도, 아빠가 없어도…“행복하면 되잖아요”

글·사진 이재덕 기자
미혼인 김미애 변호사는 입양한 딸 연아(가명)와 조카 준서(가명)를 키우고 있다.

미혼인 김미애 변호사는 입양한 딸 연아(가명)와 조카 준서(가명)를 키우고 있다.

■미혼에 아이 입양한 김미애씨

부산에 사는 김미애 변호사(49)는 지난주 법원 동계 휴정을 앞두고 ‘몸 만들기’에 들어갔다. 휴정기간에 맞춰 아이 셋을 데리고 2박3일 스키장에 다녀오기로 했는데 무리 없이 다녀오려면 운동도 좀 하고 쉬기도 해야 한다. 김씨가 웃으며 말했다. “재작년에 홍콩에 다녀왔을 때는 한 아이는 뛰고, 누구는 풍선 터뜨리고, 갑자기 사라지기도 하고…. 이제는 머리가 다 커서 제가 항복해야 할 지경이 됐어요”

김씨는 주말이나 휴가 때마다 이들을 데리고 가족여행을 다닌다. 아이들 성이 다 다르다. 박준서(17·가명), 안채연(11·가명), 김연아(7·가명). 여행용 가방에 큼지막하게 달려 있는 네임태그를 본 사람들은 김씨에게 “어떤 관계예요?” “아이들 엄마예요?” “가족 맞아요?”라며 묻는다. 김씨는 “애 셋 데리고 패키지 여행이라도 가면 사람들이 고개를 갸웃거려서 귀찮을 지경”이라고 말했다.

김씨는 결혼해본 적이 없다. 그렇다고 비혼주의자도 아니다. 큰언니 딸인 채연이는 주말마다 김씨 집에서 지낸다. 이를테면 ‘주말모녀’다. 채연이가 생후 19개월 때 형부가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언니는 망연자실했다. 김씨는 이때부터 채연이를 키웠다. 밤마다 채연이를 안고 재우다가 그대로 잠이 들었다. 그는 “큰언니와 채연이 사이에서 양손으로 두 사람을 잡고 살았다”고 했다.

“채연이가 스펀지처럼 사랑을 흡수했어요. 그 아이가 주는 행복이 너무 큰 거예요. 돌봄을 받는 아이뿐 아니라 돌봐주는 제게도 축복이구나 싶었어요.” 독실한 기독교인으로서 언젠가 입양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던 김씨는 2011년 알고 지내던 입양기관에 연락했다. 거기서 연아를 만났다. 연아는 태어났을 때 몸무게 2㎏ 남짓의 저체중아였다. 김씨가 생후 50일 된 연아를 처음 만났을 때는 너무 작아 신생아 옷에 폭 싸여 있었다. 손가락은 제대로 있나 싶어 소매를 들춰보다가 아이가 김씨의 새끼손가락을 꼭 잡았다. 눈물이 핑 돌았다. “이 아이 엄마가 돼서 키워야겠다.” 부랴부랴 아기 이불과 옷, 아기 용품을 사고 차량에 아기 카시트를 달았다. 연아 예방접종도 시켰다. 그해 11월 연아가 집으로 왔다.

그즈음 준서를 혼자 키우고 있던 둘째 언니가 급성백혈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김씨는 당시 초등학생이던 조카 준서도 맡아 기르기 시작했다. 김씨는 그의 ‘미성년 후견인’이다. 아이가 성년이 되기 전까지 김씨가 법적인 보호자가 된다. “형제가 서로 의지할 수 있어서 좋아요. 준서는 말이 없는 아이인데 연아가 여우라서 오빠를 웃게 하고 말도 트게 해요. 동생도 오빠를 좋아하고 따르죠.”

연아는 4세 때 김씨에게 물었다. “엄마 왜 나는 아빠가 없어? 아빠가 있었으면 좋겠다.” 김씨는 연아에게 이렇게 가르쳤다. “연아야. 다양한 가족들이 있단다. 연아처럼 엄마만 있는 집이 있고, 아빠만 있는 집도 있어. 뭐가 좋고 나쁘다고 말을 못해. 가족의 모습이 다를 수 있다는 거야. 그 안에서 행복하게 사는 게 중요해. 연아는 엄마도 있고, 오빠도 있고, 언니도 있지? 우리 가족은 행복하게 살고 있지?” 연아는 항상 “응”이라고 답한다.

연아가 영어유치원에 입학했을 때 아빠 이름을 쓰는 입학원서 항목에 김씨는 자신의 친오빠 이름을 적었다. 가장 후회스러운 일이다. 김씨는 “단지 사람들이 선입견을 갖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그냥 아무렇지도 않게 아이를 봐줬으면 하는 마음이 컸다”고 했다. 이어 “우리 딸이 자존감이 낮을까봐 염려했다. 사랑을 충분히 받아서 나누는 아이가 돼달라고 항상 기도했는데 정말 그렇게 됐다. 지금은 자신이 스스로 아빠 없다고 떠벌리고 다닌다. 누가 봐도 저 아이는 자신감이 넘치는 아이구나 할 정도”라고 말했다.

지금은 고등학생 2학년이 되는 준서가 걱정이다. “공부 방법을 가르쳐줘도 아이가 공부를 안 하고 게임만 하려고 해요. ‘나는 아이들 울타리만 되자’ 이러는데도 다른 아이들을 보면 ‘내가 이렇게 하는 게 맞나. 좀 더 다그치면서 해야 하나’ 이런 생각이 들어요. 방학에 수학학원을 보내려고 전화하니까 학원에서는 ‘아이 진도가 어디까지 나갔냐’고 오히려 되물어요. 학교 진도를 다 꿰고 있어야 하고 엄마가 하나하나 안내를 하고 매니저가 돼야 한다는데…. 제가 이상한 엄마일까요?” 김씨는 저녁마다 연아를 데리고 같은 동네 사는 노부부 집에 간다. 일흔이 넘은 이 집 할아버지 정모씨는 최근 연아에게 줄 스파게티 요리 장난감을 구하기 위해 인근 대형마트를 수없이 돌았다. 요즘 연아는 저녁마다 할아버지에게 스파게티 요리를 해주겠다며 앞에서 소꿉장난을 한다. 정씨가 연아를 봐주는 동안 김씨는 정씨의 아내와 이야기를 나누며 차를 마신다. 준서도 노부부를 잘 따른다. 김씨는 “혈연과 관계없는 사람들이 모여 완벽한 하모니를 이룬다. 이런 게 가족 아니겠냐”고 말했다.

한부모 가정인 최소미씨가 지난달 29일 서울 강북구 자택 앞에서 아들 한결군이 타는 킥보드를 밀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김창길 기자 cut@kyunghyang.com

한부모 가정인 최소미씨가 지난달 29일 서울 강북구 자택 앞에서 아들 한결군이 타는 킥보드를 밀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김창길 기자 cut@kyunghyang.com

■아빠 없이 아이 키우는 최소미씨

최소미씨(28)는 퇴근 후 아들 한결이(7)가 있는 어린이집을 찾았다. 킥보드를 타고 엄마를 한참 앞서서 가던 아이가 잠시 서서 뒤돌아본다. “엄마, 빨리 와.” 최씨의 손에는 장바구니가 들려 있었다.

지난달 29일 최씨 모자가 사는 서울 강북구의 한 임대주택을 찾았다. 방문마다 한글공부, 한자공부, 숫자공부 카드가 걸려 있다. 한결이가 산수 문제집을 풀기 시작했다. 사과 여덟개가 그려진 그림을 보고 “일, 이, 삼, 사…” 숫자를 세더니 “팔”이라고 외치고 ‘8’자를 그렸다. 8자라기보다는 6자에 가까웠다. 최씨가 “한결아, 8은 동그라미 두 개를 그리면 돼”라고 고쳐줬다. 아이는 크게 개의치 않고 엄마를 보며 ‘헤헤’ 웃었다.

최씨는 ‘미혼모’다. 8년 전 군복무 중이던 남자친구를 만났다. 애 아빠는 출산 직전 갑자기 연락을 끊었다. 20대 초반이던 최씨는 아빠 없이 한결이를 키우기로 했다. “꿈속에서 돌아가신 엄마가 나왔는데 엄마가 웃으면서 한결같이 잘 키우라고 했어요. 그래서 아이 이름을 한결이라고 했죠.”

아이에게는 “아빠가 일하다가 돌아가셨어”라고 말해줬지만, 언젠가는 아이에게 진실을 알려줄 참이다. 기특하게도 한결이는 아빠를 찾지 않는다. 어린이집에서 동요를 배워와서는 바꿔부르기도 한다. ‘아빠 힘내세요’는 ‘엄마 힘내세요’로, ‘어젯밤에 우리 아빠가’는 ‘어젯밤에 우리 엄마가’로 가사가 바뀐다. ‘곰 세 마리’를 부를 때는 ‘아빠 곰은 뚱뚱해’ 대신 ‘이모 곰은 뚱뚱해’를 넣는다. 최씨와 한결이는 지난해까지 최씨 언니와 한집에서 살았다.

한결이가 태어난 뒤 5~6년 동안 최씨는 수없이 회사를 옮겼다. 그때마다 “어쩌다 애부터 낳았냐” “애는 어디에 맡길 거냐”는 말을 들었다. 한결이를 키우면서 주변에서 “아이를 그렇게 키우면 안돼”라는 말도 숱하게 들었다.

그러는 동안 최씨는 그래픽아트 관련 자격증을 따고 웹디자인을 공부했다. 웹디자이너로 입사한 회사에서 부장은 최씨 면전에서 “미혼모에 대학도 안 나온 애 월급이 뭐 이렇게 많냐”며 투덜댔다. 대리는 회식 자리에서 술에 취한 채 “소미씨는 내 취향”이라며 최씨를 붙잡았다. “아이에게는 아빠 노릇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며 최씨의 집까지 따라오려고 했다. 이 사건 후 최씨는 회사를 그만두고 대리와 연락을 끊었다. 대리는 최씨에게 전화해 욕을 하고 “아이가 불쌍하다”며 막말을 해댔다.

최씨는 “미혼모라는 말은 너무 많이 들어서 어느 정도 참을 수 있었지만, 대학 안 나왔다는 말은 계속 귀에 맴돌았다”고 했다. 최씨는 사이버대학교에 ‘16학번’으로 입학했다. 등록금은 ‘한부모연합회’ 등 시민단체에서 지원해줬다. 온라인으로 신발을 판매하는 작은 쇼핑몰 업체에도 취업했다. 최씨는 이 업체의 웹페이지, 광고 등을 제작하는 업무를 맡았다. 출퇴근 시간이 비교적 자유로워 한결이를 키우는 데도 부담이 줄었다.

최씨는 “이 일을 처음 시작하면서 제가 회사 로고도 만들고 하나하나 디자인을 했다. 직원이지만 내 사업이라는 생각으로 하고 있다. 장사도 잘되게 해서 꼭 성공시키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미혼모에 대한 편견을 바꾸고 이들을 지원하기 위한 ‘미혼모 협회 인트리’ 활동도 시작했다. 이곳에서 친구도 사귀고 여성학 강의도 듣는다.

지난해에는 인트리에서 진행한 뮤지컬의 주연을 맡아 국립극장에서 공연도 벌였다. 첫 공연 때는 문재인 대통령의 부인 김정숙 여사가 와서 꽃다발을 안겼다. 최씨는 “새해에는 극본, 대본 등을 공부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우리는 평범한 가족이에요. 저는 제 나름대로 인생을 열심히 살고 있고, 아들과 행복하게 살고 있어요. 사람들은 왜 그런 우리 가족을 무시하고 이상하게 보는 걸까요. 아빠가 있다고 해서 다 행복하진 않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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